[동네사람]제과·제빵사 정세광 씨

STX그룹 경영 악화 피해를 고스란히 받는 (주)예그리나. 이곳은 STX그룹이 운영하는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으로 장애인들이 모여 제빵부터 영업까지 책임지는 곳이다.

예그리나에서 일하는 장애인들은 모두 14명으로, 이중 10명이 빵을 만들어 파는 진해 사업장(STX조선 진해조선소 후문 인근)에서 일한다. 나머지 4명은 서울에서 파견근무를 하며 문서수발과 바리스타를 하고 있다.

지난 2일 진해사업장에서 만난 정세광(42) 씨도 STX로 나가던 빵 매출이 줄어들어 요즘 근심이 적지 않다. 그래도 정 씨는 여전히 꿈을 꾸며 그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정 씨 처지에 놓이면 웬만한 사람은 실의에 빠질 법한데, 그는 마치 '불굴의 의지'를 가진 '조용히 행동하는 초인' 같았다. 그는 교통사고에 의한 후천적인 청각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전문 심해잠수사를 양성하는 해군 해난구조대(SSU, Sea Salvage Unit) 부사관으로 진해에서 5년 6개월 재직하고서 제대한 그는 국내 최초 잠수함 기지 팀장이 될 뻔했다. 하지만 두 차례 교통사고는 그에게 순탄한 인생을 허락하지 않았다.

   

1996년 10월, 26살이던 그해 1월 그는 제대 뒤 까르푸(프랑스계 대형마트) 서울점에 대리로 들어가 연수 중이었다. 그러던 그에게 1순위로 추천할 테니 국내 최초 잠수함 기지(진해) 팀장급(7급 공무원)으로 일하지 않겠느냐는 옛 지휘관의 제안이 있었다. 연수 중이라서 바쁜 나날을 보내던 그는 며칠간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진해로 와서 원서를 제출하고, 고향 진주로 향했다.

진주로 가던 중 피곤이 겹쳐 깜박 졸음운전을 한 그가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 그가 몰던 차가 도로 아래로 추락한 것이다.

사고 19일 만에 눈을 뜬 그는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처참한 몰골이었다고 회상했다.

광대뼈·턱뼈가 다 조각나서 얼굴에만 5개의 핀을 박았다. 오른쪽 대퇴부도 부러졌다. 더 큰 충격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양쪽 달팽이관이 다 파괴돼 청력을 잃은 것이다.

정 씨는 당시 심정을 "정말 절망했다"고 압축했다.

퇴원 뒤 그는 고향인 진주 정촌에서 과수원을 하는 부모님을 돕고 재활치료도 했다. 몸이 회복되고서 작은 공장에 취직해 일했지만 그는 그곳에서 미래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아 그는 새로운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공장을 다니면서 2년간 틈틈이 수화를 배웠고, 운동도 했다.

2004년 8월 2년 과정인 부산 장애인직업전문학교(현 장애인고용공단 부산직업능력개발원) 제과제빵과에 입학했다. 그 과정에서 직업전문학교는 직업능력개발센터로 바뀌면서 졸업이 수료로 변했고, 과정도 1년 6개월로 단축됐다. 2005년 11월 수료하고서 부산에서 가장 큰 제과제빵점인 '겐츠 과자점'에 취직했다.

1년 뒤 양산에 있는 작은 빵공장 부공장장으로 추천받아 설을 쇠고 그곳에 출근하기로 했다. 그런데 또 한 번의 시련이 그에게 닥쳤다.

진주 고향집에서 설 휴가를 지내고 있을 때 한밤중에 건널목을 지나가는데 그를 미처보지 못한 승용차 운전자가 시속 109㎞로 들이받았다. 골반 인대가 찢어지고, 복부 외상에 따른 장기손상까지 있어 8개월간 병원 생활을 해야 했고 퇴원 뒤 1년 반은 통원 치료를 받았다.

통원치료를 하면서 2007년 창원의 한 의원에서 인공 와우(달팽이관) 수술을 하고, 1년간 언어치료를 받았다. 지금은 보청기를 달아 비장애인과도 웬만한 대화에는 문제가 없다.

몸이 회복되면서 2009년에는 케이크 디자이너 학원에 다녔고, 2010년 4월 다시 부산 장애인직업능력개발원에서 바리스타 과정을 수강했다. 수강 과정에서 2010년 6월 경남장애인기능대회에 출전해 제과·제빵 분야 금메달을 땄고, 그해 9월 전국대회에서 4위로 장려상을 탔다. 그해 10월 바리스타 과정을 수료하는 등 그는 자신이 만들 새로운 인생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2010년 11월 부산의 한 제과점에 다시 취직했지만 자동차 사고 후유증이 와서 잠시 쉬다가 2011년 말 진주 탑마트 내 제과점에서 잠시 일했다. 그리고 2012년 2월 예그리나에 입사했다.

   

그는 예그리나가 처한 지금 상황이 많이 안타깝다고 했다. "커피 사업도 하며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해 자체적으로 독립하는 게 우리의 꿈이었다. 도내 최초 독립 장애인 사업장을 개척하고 싶었는데 STX가 갑자기 어려워지고 요즘에는 빵 매출도 많이 줄어 안타깝다. 주위 관심도 많이 준 것 같다. 판로를 새로 만드는 것도 쉽지 않다. 제과제빵 실력은 절대로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데 주변에서 관심을 많이 둬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요즘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우선 내년에 다시 장애인기능대회에 나가 전국대회에서 입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창업을 생각하고 있다.

"단순히 빵과 과자만 파는 제과점이 아니라 제과·제빵 공예를 하면서 제과점이 하나의 전시장이 되는 것 말입니다. 빵도 사고 이곳에서 휴식하며 공예도 즐기는 그런 문화공간을 그려봅니다. 그런 꿈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쉴 수 없습니다."

20대 중반 이후 그가 겪은 시련을 돌아보면 지금 그가 내뱉는 포부는 결코 꿈이 아닐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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