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기]딸 권지혜가 쓰는 엄마 김영옥 이야기

항상 친구처럼 투닥투닥하는 나 권지혜(23·사회복지사)와 엄마 김영옥(47·주부) 여사. 다른 모녀지간과 다르게 친구처럼 농담도 주고받으며 주말에는 등산을 가거나 영화를 보며 데이트를 즐긴다. 그 누구보다 가장 친한 친구인 엄마는 최근 10년 넘게 다니시던 직장을 그만두고 주부로 또 다른 생활을 하고 계신다. 평소 친하지만 속 깊게 얘기를 해보지 못했던 우리 모녀. 쑥스럽지만 서로의 속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엄마, 일 그만두고 요즘 집에서 쉬는데 어때?

"집에서 쉰다고 해서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십 년 동안 일만 해서 골병이 든 것 같아, 지금 쉬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 그래서 푹 쉬고 있어."

-일하는 거 말고 혹시 쉬는 동안 배우고 싶은 것 없어?

"딱히 배우고 싶은 건 없는 것 같아. 엄마가 예전부터 검정고시 공부하고 싶다고 했잖아.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니 머리에 잘 안 들어오고, 금방금방 까먹어서 엄두가 안 나네. 아직은 배우기보다는 다시 일하러 가야겠단 생각이 많이 들어. 이렇게 미루다 보면 결국 공부를 못할 것 같은데…. 지금 시작하는 게 나으려나?"

   

-응. 난 엄마가 지금이라도 시작했으면 좋겠어! 엄마랑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까 옛날 생각 많이 난다. 엄마는 아빠랑 어떻게 만나서 결혼하게 된 거야? 자세히 말해줘!

"같은 회사에 근무하다가 만났어. 아빠가 평소에 되게 성실하고, 자상해서 엄마가 좋아했는데, 아빠가 먼저 연애하자고 고백했지. 그리고 프러포즈도 아빠가 먼저 했어. 그래서 우리 공주님과 왕자님이 엄마 곁에 있는 거지."

-그렇게 결혼하고 내가 태어났을 때 어땠어? 딸이라서 좋았어? 아님 실망했어?

"실망하기는! 당연히 좋았지. 작고 예쁜 공주님이 태어나서 엄마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커서도 이렇게 누구보다 엄마한테 제일 잘하는 우리 딸이잖아. 엄마는 지혜가 엄마 딸이라서 참 행복해."

-어렸을 때 난 참 많이 아팠던 것 같아. 왜 그렇게 아팠던 거야?

"신경이 예민했잖아. 너는 엄마밖에 모르고, 사람들이 널 쳐다만 봐도 무서워해서 눈도 못 마주치고 '꽥~'하고 울었지. 그러다 보니 잘 먹지도 않아 면역력이 약해져 잔병치레를 많이 했지."

-그때 내가 기억하는 건 초등학교 1학년 때 뇌수막염 걸려서 많이 아팠잖아. 그때 김밥 사달라고 해서 먹었는데 바로 다 토하니까 엄마가 혼냈잖아.

"뇌수막염뿐 아니라 장염에, 철마다 감기에…. 병원을 달고 살았어. 안 그래도 아픈 애가 자꾸 김밥이 먹고 싶다고 해서 결국 사다 줬더니 먹자마자 토하고…. 먹으면 안 되는데 고집 피워서 먹더니 토하니까 엄마는 속상하고 짜증이 났지. 하여튼 어릴 때부터 고집이 셌어."

   

-어렸을 땐 엄마가 날 혼내서 되게 섭섭했는데, 커서 생각해보니 엄마 마음이 이해될 것 같아. 내가 철이 좀 든 건가?

"엄마 마음을 알겠다니, 지혜도 다 컸네. 생전 안부 전화 같은걸 안 하던 네가 하루에 한 번 '밥은 먹었어?' '뭐해?'라고 안부 전화 하는 거 보면 우리 지혜 철들었나 싶더라."

-나 낳고 제일 힘들었을 때랑 제일 기뻤을 때는 언제야?

"처음으로 주먹 만한 게 태어나서 엄마 옆에 있어서 기뻤지. 가장 속상했을 때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잘 안 먹어 키도 안 크고, 성격이 까탈스러웠던 게 속상했어. 그래도 요즘은 많이 먹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

-엄마는 내가 '꼭 이것만큼은 해봤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거 있어?

"남자친구를 좀 많이 사귀어봤으면 좋겠어. 도통 연애를 하지 않으니…. 여러 남자도 만나고 사랑을 해봐야 성장을 하고, 그런 경험을 통해서 좋은 남자를 만날 텐데…. 걱정이다, 걱정."

-아직 엄마한테 남자친구를 소개해본 적이 없네. 만약 어느 날 남자친구 데려와 결혼하고 싶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

"놀랍기도 할 테고, 지혜가 어떤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어하는지 엄마가 신중하게 살펴보겠지. 엄마 마음에 쏙 드는 남자친구를 데려오면 좋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제발 연애 좀 해야 해. 남자친구 좀 사귀어봐. 어서!"

-내가 어떤 신랑감을 만났으면 좋겠어?

"자신이 하는 일에 성실하고, 우리 지혜에게 자상한 남자친구면 좋겠지. 아무래도 우리 딸 성격이 별나니까 우리 딸을 잘 이해해주고 보듬어주는 나무 같은 남자면 좋겠어."

-그렇구나. 근데 난 아직 남자친구 만들 여유는 없는 것 같아. 직장생활을 해서 그런가…. 내가 지금 다른 친구들보다 빨리 직장생활을 하고 있잖아. 엄마는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해?

"기특하고 대견하고 자랑스럽고 좋지. 근데 가끔 네가 이리저리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 혼자서 밤에 우는 걸 봤을 때 참 속상했어. 어린 나이에 벌써 고생하고 있-그래서 엄마가 위로하면서 나한테 그냥 중소기업으로 옮길 생각 없느냐고 했잖아. 그건 진심이야?

"엄마는 중소기업 같은 일반회사에 취업하면 네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덜 힘들어 할 것 같아서 한 말이지. 근데 네가 사회복지사를 하고 싶어 하고 힘들어 하지만 애들(청소년) 생각하는 거 보면 너한테 잘 맞는 직업이구나 싶기도 해. 애들이랑 투닥투닥하면서도 애정을 두고 있잖아.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까 힘들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마지막으로 나한테 덕담 한마디 해줘. 조언이라든지 충고라든지…. 엄마로서 한마디 해주세요.

"엄마 기억에는 언제나 작은 공주님이었는데, 벌써 우리 딸이 성인이 되어서 작은 몸을 이끌고 청소년들을 위해 누구보다 보람된 일을 하고 있네. 안쓰러운 마음이 크지만 기특한 마음도 크다. 앞으로 힘든 일, 속상한 일이 있을지라도 현명하고 슬기롭게 극복할 거라고 엄마는 믿고 있어. 언제나 사랑한다~ 우리 딸~."

/권지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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