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혼자 감당이 안 돼 친정 엄마에게 SOS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살림을 합치게 되었다. 대부분의 워킹맘처럼 육아와 직장 사이에서 힘겨워하던 내가 건강이 나빠지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엄마의 도움을 청하게 된 것이다.

어릴 때부터 엄마와 사이가 좋았던 데다 엄마 역시 아버지와 사별한 뒤 혼자 지내고 계셔 크게 문제될 게 없는 합가였다. 게다가 몇 년 전에도 육아 때문에 2년 정도 함께 지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큰 소리 한 번 나지 않고 서로 잘 지냈던 터라 부담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디에나 복병은 있는 법인가 보다.

문제는 밍키! 엄마로부터 분가한 뒤 아이들의 성화에 마지못해 한 마리 입양해서 키우게 된 강아지 밍키가 걸림돌이 된 것이다. 워낙 깔끔한 성격이기도 하지만 옛날 사람인 엄마의 정서로 밍키와 동거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밍키를 양보할 수 없는 아이들과, 건강이 나빠져 엄마의 도움이 절실한 나, 그리고 개랑은 한집에서 살 수 없다는 엄마 사이에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고, 결국은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엄마의 양보로 그렇게 우리의 동거는 시작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눈치라고는 없는 밍키를 엄마는 온갖 잔소리를 하며 구박을 했고, 그런 할머니가 야속한 아이들은 내 눈치를 보며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중재를 맡은 불쌍한 남편의 입장이 되어 안절부절 못하며 위태로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로 급한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로 거의 울먹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밍키가 없어졌다며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밍키 찾으러 나간다고 전화를 끊는 것이 아닌가.

잠시 얼떨떨하게 있다가 급히 집으로 가는데,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렇지 않아도 둘째 놈은 할머니가 밍키 싫어한다며 섭섭해 하는데, 게다가 이 추운 날씨에 밍키라는 놈은 대체 어디로 갔는지 이런저런 걱정에 운전대를 잡은 손이 떨려왔다.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밍키와 자주 다니던 산책로를 뒤졌지만 찾을 수 없어, 온갖 망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는데, 그 광경이란….

두꺼운 이불에 파묻혀 얼굴만 내밀고 있는 밍키와 그 옆에 엄마가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요는 이랬다. 엄마가 현관문을 열어놓고 쓰레기를 정리하는 동안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늘 그랬듯이 습관적으로 엘리베이터를 탄 밍키는 코를 땅에 박고 냄새 맡느라 엄마가 없다는 것도 모른 채 혼자 1층에 내리게 된 모양이다. 그러고는 저도 당황해서 아파트 앞을 서성이다가 늘 가던 산책로 가로수 밑에서 겁에 질린 채 꼬리를 말고 벌벌 떨고 있었고 마침 이 놈을 찾으러 간 엄마의 눈에 띄어 무사히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추워서 떨었는지 무서워서 떨었는지, 밍키를 찾은 기쁨 때문인지, 불쌍해서인지 엄마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발도 씻기지 않고 이불부터 덮어주고는 진정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 이후로 우리집엔 나름의 평화가 찾아왔다. 애증 섞인 눈빛으로 매일 사료를 챙겨주는 엄마와 그런 엄마에게 완전히 빠져 버린 밍키 덕분에.

/이정주(김해분성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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