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세계의 화두는 '정보 감시'다.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예견한 '빅 브러더'의 시대. 미국 국가안보국(NSA) 전 직원 스노든이 폭로한 진실은 가공할 만했다. 일반 시민의 개인 정보뿐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 수반들의 휴대전화 통화 내용까지 도·감청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만 주도한 것도 아니었다. 독일·프랑스·영국 등 유럽의 정보기관도 미국과 비슷한 방법으로 서로서로 대규모 정보 수집을 해왔다는 폭로가 쏟아져 나왔다.

피해국의 분노와 항의가 잇따르고 NSA 개혁 등 관련 대책이 공론화되고 있지만 상황이 나아질지는 알 수 없다. "우리만 했나?"라며 미국 측이 당당한 건 확실한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시민들, 아니 우리들이다. 언제 또 9·11테러 같은 끔찍한 사건이 터질지 모른다는 공포, 지금은 같은 편인 듯 보이는 우방국 내지 우호 세력이, 나아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언제 돌변해 우리에게 물질적·신체적·정신적 피해를 끼칠지 모른다는 불안이 세상을 지배한다.

영화 <테이크 쉘터>의 마지막 장면. 바다 너머에서 거대한 폭풍이 몰려오고 있다.

서로에 대한 서로의 감시는 일상이다. 주거지부터 거리, 직장, 학교 곳곳에 무차별적으로 설치되는 CCTV(폐쇄회로TV)들. 시민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다며 인권 침해 도구로 비판받던 CCTV는 이제 '진보 운동'의 무기로까지 활용된다. 한 시민단체는 대선 개입 범죄를 저지른 국가정보원을 '감시'한다며 CCTV를 국정원 앞에 설치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개인 컴퓨터와 휴대전화도 각종 '보안 장치'로 가득차고 있다. 물론 나의 소중한 재산, 개인 정보를 누군가의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 삶은 편안하고 자유로워지고 있을까?

제프 니콜스 감독의 <테이크 쉘터(Take Shelter)>라는 영화가 있다. 성실한 가장이자 노동자인 주인공 커티스는 환영일 수도 있고 예지일 수도 있는 악몽에 시달린다. 조만간 거대한 폭풍이 몰려올 것임을 직감한 그는 빠듯한 살림에 빚까지 내가며 집 앞에 방공호를 파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이런 황당한, 아니 어쩌면 철저하고 완벽한 대비책은 가족·친구·동료 그 누구의 지지도 받지 못한다. 방공호를 파면 팔수록 가정과 직장에서 외면당하며 좌절과 절망만 깊어질 뿐이다. 더욱 참담한 건 영화의 끝이다. 커티스와 아내는 어렵게 화해를 하고 잠시 평온을 되찾지만 저 멀리 바다 너머 지평선에서는 시커먼 먹구름이 몰아쳐오고 있었다.

안전한 삶을 갈구하면 할수록 삶은 더더욱 불안해지고 급기야 공포가 실재가 되는 이 기막힌 현실. 갈수록 지능화되고 잔혹해지는 범죄 수법, 갈수록 고도화되고 교묘해지는 해킹 기술은 끊임없이 보안과 감시를 강화하게 만들고 우리의 불안감 또한 끊임없이 키워간다. 결국 우리가 응시해야 할 것은 불안의 근원적 실체다. 진정 무엇이 우리를 불안케 하고, 서로서로 믿지 못하게 하고, 불특정 다수를 향해 방공호를 쌓아올리게 했을까.

하나의 단초.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에서 비롯된 방사능 공포가 드높다. 소비자들은 의심스러운 농수산물 구매를 회피하고 있고 대형 마트 등에는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까지 등장한 실정이다. 하지만 과연 이런 대증요법만으로 불안이 사그라질 수 있을까? 최근 박근혜 정부가 핵발전소 증설·확대 쪽으로 정책 가닥을 잡았다는 소식이다. 물론 온종일 세상이 환하게 빛나는, 풍요롭고 안락한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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