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맛 읽기]된장의 진실

집집마다 장맛이 다르다 했던가. 하지만 옛날 이야기다. 우리 집이나 옆집이나 이젠 장맛이 같다. 대부분 공장에서 만든 장을 사먹기 때문이다.

된장은 패스트푸드?

누구나 느낄 것이다. 청정원, 해찬들 등 대기업이 찍어내는 '공장식 된장'은 회사 이름만 다를 뿐 장맛은 별 차이가 없다. 이유는 유사한 재료와 공법으로 15일 정도 단기간에 숙성한 '밀가루 된장'이기 때문이다.

된장을 만드는 데 밀가루가 들어가다니. 공장식 된장에는 탈지대두도 포함돼 있다. 탈지대두는 해외 여러 나라에서 식용으로 금지하며 동물 사료로 쓰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사람이 먹는 재료로 쓰인다.

소맥분, 탈지대두분 등 온갖 재료가 들어간 공장식 된장.

더 심하게 말하면 고기 찌꺼기 패티로 만든 햄버거를 먹는 것과 콩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가 들어간 탈지대두로 만든 된장을 먹는 것은 정크 푸드를 먹는다는 점에서 같다. 공장식 된장의 숙성 기간까지 감안하면 패스트 푸드 범주에 넣어도 무방할지 모른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규정한 '식품공전'은 그야말로 식품 헌법이라 할 수 있는데, 된장은 "대두, 쌀, 보리, 밀 또는 탈지대두 등을 주원료로 하여 누룩균 등을 배양한 후 식염을 혼합하여 발효·숙성시킨 것 또는 메주를 식염수에 담가 발효하고 여액을 분리하여 가공한 것"이라고 정해놓고 있다.

'재래식 된장'으로 버젓이 제품명까지 달고 마트 진열장에 있는 공장식 된장에 적힌 원재료를 꼼꼼히 살펴보면 10가지가 넘는다. 대두(수입산), 소맥분(밀: 미국, 호주산), 탈지대두분, 향미증진제, 한식메주분말, 개량메주된장, 정제소금, 밀쌀, 주정, 종국 등이다. 이렇게 잡다한 재료가 들어간 된장이 '된장'일 수 있는 건, '식품공전'이 명백히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장식 된장은 밀가루에 곰팡이를 키워 만든 밀코지(소맥국)를 40% 이상 첨가한 것으로 밀코지는 인위적으로 된장을 빨리 숙성시키는 주성분이다.

'코지'는 누룩곰팡이를 뜻하는 일본말이다. '밀코지'라는 말을 흔히 쓰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공장식 된장은 일본 된장 미소처럼 속성 발효로 만든다. 일본은 습도가 높아 콩을 장시간 발효하면 부패하기 때문에 누룩곰팡이(코지)를 쌀이나 밀에 발효시킨 후 콩과 뒤섞는 방법을 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식 된장 제조법이 들어온 이후 한국 전통의 된장 제조법은 시장에서 완전히 밀려났을 뿐 아니라 된장이라는 이름마저 빼앗겼다.

식약처는 일본 제조법을 따른 공장식 된장을 '된장'이라 이름 붙이고, 한국의 전통 방식으로 만든 된장을 '한식 된장'이라 명명했다. 이는 마치 일본의 '김치'를 한국식으로 만들면 '한식김치'라고 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결국 국내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공장식 된장은 규모의 경제 논리에 따라 식품 헌법에서 당당히 된장으로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콩·소금으로만 만드는 된장

그렇다면 이제는 '한식 된장'이 된, 전통식 된장은 어떻게 만들까.

11월에 콩을 수확한다.

전통 된장에는 밀가루, 탈지대두가 들어가지 않는다. 콩, 소금, 물만으로 된장을 만든다. 정확히 말하면 콩, 소금, 물만으로 만들어야 제대로 된 된장이다.

전통 된장은 콩을 찌거나 삶아 모양을 내어 발효시킨 메주에 소금물을 가해 발효한 후 여액을 분리한다. 여기서 말하는 여액이 바로 소금물과 메주가 만나 숙성된 간장이고, '장 가르기'를 하고 난 나머지 덩어리를 으깬 것이 된장이다.

깨끗이 씻은 콩을 삶는다.

가을에 해콩을 걷고 나면 음력 11월께 입동을 전후해 콩을 삶아 메주를 쑤고 음력 1월인 정월에 항아리에 메주를 넣고 소금물을 부어 된장을 담근다. 정월을 놓치면 음력 3월 삼짇날 전에는 담그는데 늦게 담글수록 소금물 농도를 진하게 해야 한다.

삶은 콩을 틀에 넣어 메주를 만든다

선조들은 홀수 달에 장을 담갔는데 양의 기운을 받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음양의 조화 면에서 홀수 달은 양, 짝수 달은 음으로 보고 일조량에 따라 장맛이 달라지기에 햇볕을 잘 다스린다는 의미에서 음력 1월과 3월을 장 담그는 달로 정했다.

60일 이상 숙성한 메주로 장을 담근다.

잘 말린 메주를 소금물에 띄워 60일 이상 숙성시킨 후 간장과 된장을 갈라낸다. 4월쯤에 '장 가르기'를 하고 나서 8개월 정도 지나 겨울이 오면 햇된장을 맛볼 수 있고 이듬해 겨울까지 더 묵히면 깊은 맛이 난다.

산청군 생비량면에서 전통장을 만드는 콩살림 김성환 대표는 "집집마다 다른 된장 맛은 메주를 말리는 방식에서 결정된다. 처마 밑에 걸어놓는 집, 황토방에 넣어 숙성하는 집 등에 따라 다르다. 그해 눈이 오는 정도에 따라 황토방 군불 열기에 따라서도 장맛은 달라진다"고 말했다.

정월에 장을 담가 1년 넘게 발효시킨다.

단 된장 VS 짠 된장

공장식 된장과 전통 된장의 맛을 직접 비교해 봤다.

된장찌개를 끓이기 전 된장 그대로를 찍어 먹어보니 공장식 된장보다 전통 된장이 더 짜다. 특히 전통 된장은 콩 알갱이가 씹히는 반면 공장식 된장은 반죽처럼 되어 있다.

애호박, 양파, 버섯, 두부 같은 재료로 된장만 달리해 공장식 된장찌개와 전통 된장찌개를 끓였다.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는 동안 찌개 냄새부터 다른데 쿰쿰한 냄새가 나는 쪽은 전통 된장이다. 전통 된장 뚝배기에서는 메주콩 알갱이가 위로 뜨는 반면 공장 된장 뚝배기에서는 밀가루 된장이 흔적없이 녹는다.

똑같이 된장 한 숟가락씩 넣어 끓여낸 찌개는 전통 된장찌개 색이 묽고, 공장식 된장이 더 진한 것이 공장 쪽이 맛있어 보이게 하는 효과는 분명히 있었다.

콩과 국내산 천일염으로만 만든 콩살림 전통 된장.

드디어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입안에 넣었더니 비교가 된다. 전통 된장찌개는 청국장 맛에 가까운데 그렇다고 청국장은 아니다. 단맛이 나는 공장식 된장찌개가 처음에 더 맛있게 느껴졌지만 먹을수록 전통 된장찌개에 자꾸 손이 간다.

저녁밥을 먹으려고 남은 된장찌개를 다시 끓였다. 다시 끓이니 맛의 차이가 더 확연했다. 전통 된장을 끓이면 끓일수록 깊은 맛이 나는 게 일품이었다.

하지만 맛 좋고 신뢰 가는 콩과 소금으로만 만든 전통 된장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마트에 가면 수입 콩과 밀가루로 만든 짝퉁 된장 일색이고, 전통시장에 가더라도 원재료가 검증되지 않은 된장이 대부분이다.

산업화·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전통 장을 만드는 곳은 이제 농촌 지역이나 가야 만날 수 있다. 인터넷 주문이 가능한 전통 된장 업체가 있긴 하지만 단일 품목만 따로 장바구니에 담는 건 소비자 입장에서 번거로운 일이다.

진짜를 만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수고를 감수해야 하는 세상이다. 김성환 콩살림 대표가 산청군에서 국산 콩과 천일염으로 만든 전통 된장을 맛보기 위해 기자가 선택한 일은 생활협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장을 맛보는 게 농업을 살리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실천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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