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물밤과 매자기

안개가 짙어지고 쌀쌀한 날씨가 아침 늪 모니터링 길을 힘들게 한다. 그렇지만 겨울 철새들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발걸음을 부지런하게 재촉하는 아침이다. 간혹 아이들과 늪 관찰에 나서면 우포의 가을이 남긴 흔적들이 여러 곳에서 관찰된다.

무덤가 따뜻한 곳에서 도마뱀들이 많이 놀고 있고, 메뚜기들은 사랑을 나누다 아이들의 손에 붙잡히기도 한다. 그런데 메뚜기들은 마지막 목숨이 끊어지더라도 자손을 남기고 가겠다는 본능으로 아이들 손에서도 그 자세를 흩트리지 않는다. 생물들의 경이로운 광경 앞에 서둘러 아이들에게 그대로 돌려보내라고 재촉한다.

이렇게 많은 생명들이 마지막 가을을 재촉할 때, 우포늪에는 겨울 철새들이 시베리아와 몽골, 중국 북부에서 추위를 피해 여름 생물들이 남긴 먹이를 찾아오는 것이다. 10월이 되면서 물오리들과 기러기류 숫자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지금은 1만 마리가 넘는 새들이 힘찬 날갯짓을 하고 있다.

가끔 늪 안에서는 기러기떼가 소리를 지르며 몸싸움을 한다. 그것도 잠시, 인간처럼 물고 늘어지는 일은 없다. 한동안 소리를 지르고 날개를 펴서 몸 시위를 하지만 그것도 잠깐, 오히려 대부분의 새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먹이를 찾는다. 오히려 어둠이 내리면 같은 종끼리 똘똘 뭉쳐 밤을 지새운다.

여름철에 무성하게 자란 물 속 식물들이 있다. 마름의 열매인 물밤과 매자기 등은 겨울철새들의 먹이가 되는 것이다. 특히 우포늪에 매년 4000여 마리가 찾아오는 큰기러기는 영어로 Bean Goose로 불리는 기러기목 오릿과이다. 큰기러기는 시베리아의 습지에서 봄에서 여름 기간을 나고, 9월께 기온이 내려가면서 남하하기 시작하여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겨울 철새이다.

큰기러기 중 부리가 더 길고 물가의 수초를 주로 먹는 녀석은 큰부리큰기러기(Taiga Bean Goose)다. 그동안 큰기러기의 아종으로 보았으나 서식지 차이로 개체 차이가 커져 다른 종으로 분리되었다. 큰기러기에 비해 몸이 좀 더 크고 목은 길다. 암컷과 수컷의 털 빛깔은 거의 같다. 머리, 등, 옆구리 등은 진한 갈색이고 꼬리는 흰색으로 검은색 띠가 굵게 나 있다. 부리는 끝만 오렌지색이고 주로 검은색이며 단단하면서 짧고 뾰족하다. 키는 90cm 정도이다.

큰기러기는 현재 환경부에서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Ⅱ급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이들이 10월께 늪에 들어 즐겨 먹는 물밤은 초가을에 까만 열매로 익는데 속은 하얀 과육으로 가득차 있어 생으로도 먹을 수 있다. 물에서 따는 밤 같다고 하여 물밤 또는 말밤, 말뱅이라고 한다. 중국과 인도 등의 늪에서는 물소들의 중요한 먹이가 되기도 한다. 물소는 물 위에 뜨는 마름의 열매인 물밤이 부드러우면서도 영양가가 많아 즐겨 먹는 것이다.

한편 매자기는 한국 중국 몽골 일본 러시아에 분포하면서 굵은 땅속줄기가 옆으로 뻗으며 마디에는 지름이 3~4㎝ 되는 덩이뿌리가 달린다. 새들이 가을에는 물밤을 즐겨 먹고 한겨울에는 펄 속에 묻힌 매자기 덩이뿌리와 줄기 등을 즐겨 먹는다. 최근에는 4대강 사업 준설로 모래톱과 갈대밭이 사라지면서 강 속의 수초나 갈대 뿌리, 매자기, 뿌리줄기 등 고니 먹이도 대부분 사라져 문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우포늪과 주남저수지 등에 풍부한 마름과 매자기 등이 큰부리큰기러기와 고니의 중요한 먹이로 자리 잡게 되어 이에 대한 서식 조건과 먹이 관찰이 새들의 보호운동에 관심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이인식(우포늪 따오기 복원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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