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미용사 정석철 씨

소규모 동네사업이던 미용실이 전국적 규모의 전문서비스기업으로 탈바꿈한 지도 1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흘렀다. 지금도 시내 곳곳에는 유명 디자이너의 이름을 걸고 영업 중인 미용실이 성행 중이다.

호텔, 방송국에 이어 프랑스 굴지의 영화제인 칸 영화제 공식지정 살롱인 '프랑프로보' 지점장까지 했던 사람이 직접 머리를 만져준다면 어떤 기분일까? 이 모든 경험을 쌓은 정석철(41·사진) 씨는 경남대학교 인근에서 '한가이' 미용실을 운영 중이다.

정 씨의 이력은 화려했다. 1995년 미용계에 발을 내디딘 정 씨는 2년 뒤 서울 조선호텔에서 근무했고, 1999년에는 KBS 본사에서 근무했다. 이어 2002년에는 프랑프로보 강남점 지점장으로 일했다.

"은사를 잘 만났어요. 처음 근무한 곳은 홍대에 있던 미용실이었어요. 당시 자취하던 곳은 보증금 200만 원에 16만 원짜리 연탄보일러를 때는 허름한 집이었어요."

정 씨는 추운 겨울 열악한 환경 탓에 미용실에서 몰래 살았다.

"당시에는 나이도 어리고 제가 막 미용계에 입문한 막내기 때문에 아침 일찍 가게 문도 열고 청소도 해야 했죠. 그래서 차라리 미용실에서 지내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던 중 파마가 너무 해보고 싶어서 가발에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원장님이 새벽 1시 무렵에 들어오셨죠."

   

당시 정 씨는 불안하고 무서웠다. 2개월 남짓 일한 막내가 홀더로 가발을 말고 있었으니 크게 야단을 맞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일이 전화위복이 됐다.

"원장님이 새벽에도 매일 같이 열심히 연습하는 성실한 직원으로 생각을 하셨던 거예요. 그 덕에 원장님 직속 보조미용사가 됐죠. 전 일종의 고속승진을 하게 됐어요. (웃음)"

대표의 사랑을 받으며 실력도 늘어갔지만 동시에 시기와 질투도 함께 받았다. 그러던 중 끝내 그만두려고 원장을 찾아갔다.

"보통 사직서를 내는 사람들은 그동안 잘 보살펴줘 감사하다는 말을 할텐데 저는 도리어 다른 미용실을 소개해 달라고 말했어요. 원장님도 처음에는 당황하셨지만 이내 호텔에 있는 미용실을 소개해주셨죠. 거기서 또 좋은 선생님을 만났어요."

정 씨의 두 번째 미용실은 조선호텔에 있는 김영현 헤어였다. 하지만 첫 출근날부터 사람들이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3일을 보내고 4일째 출근 날 전 직원들이 축하해줬다.

"그 곳만의 규칙이었어요. 호텔 미용실은 일반 미용실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일이 다반사예요. 그래서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참을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통과의례였죠."

호텔 미용실이라 외국인들의 출입도 잦았다. 그 때문에 미용실에서 영어학원을 보내줬다. 외국인과 소통하려면 영어가 필수였기 때문이다.

"영어를 배웠지만 제가 미용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4대 가맹점 출신이 아니라 실력이 늘 기회는 적었어요. 그래도 그곳에서 인격적으로는 확실히 성장했죠."

2년 뒤 정 씨는 KBS 본사로 이직했다. 지금은 기획사와 미용실이 연계를 많이 하지만 과거에는 많은 스타도 방송국을 찾았다. 정 씨는 당시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으로 인기몰이 중이던 우희진과 신인배우였던 김선아의 머리를 직접 스타일링했다.

그리고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한국에 진출한 '프랑프로보'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방송국에서 일을 하다 보니 소문이 조금 났던 모양이에요. 지점장도 일종의 계약직이었지만 그 덕분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죠."

그러다 정 씨는 당시 서울경인지역평등노조 임미령 위원장을 만나면서 자신도 노동법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노동자'란 사실을 알았다. 참아야만 했던 부당 대우를 개선할 수 있는 자신의 법적 권리를 깨치고 미용노조를 설립했다. 하지만 그 덕에 큰 미용실에는 가지 못했다.

그리고 2008년 통영에 내려와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지난해 경남대학교 인근에 가게를 열었다.

정 씨는 말한다. "서울에서 지낸 시간 덕에 지금의 제가 있어 후회는 없어요. 이제는 '한가이' 대표이자 미용노동자로 많은 사람에게 아름다운 머리스타일을 선물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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