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화유산의 하나인 앙코르와트는 꼭 한 번 가봐야 한다는 지인의 말에 그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유적지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겁다고 했는데, 결국 그 숙제를 다 하지 못한 채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대신 현지 사무실에서 '동배(동남아 배낭여행) 카페' 회원들에게 제공하는 앙코르와트 MP3 가이드를 믿어 보기로 했다.

캄보디아에 도착하자마자 카페 사무실을 찾았다. 그곳에선 각종 투어 및 관광도 함께 하고 있었다. 저녁에 무에타이 공연이 있어 특별한 일정이 없던 우리는 공연을 관람하기로 했다. 관람 후 사무실에 있던 카페 대표와 현지에서 대학 교수 겸 관광 가이드를 하는 분과 저녁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교수는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의 앙코르와트 방문 시 관광 가이드를 하는 등 이 바닥에서 누구보다 전문가라고 했다. 하루 가이드 비용도 업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니 우리 같은 가난한 배낭 여행자는 꿈도 못 꿀 가이드였다. 하지만 이 하루의 친분으로 그 교수는 다음날 우리가 예약을 해놓은 가이드 대신 자신이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나섰다.

다음날이 됐다. 전날 많은 비 때문에 일출은 보기 힘들 것 같아 생략하고 오전 9시에 입장을 했다. 하루 티켓 가격은 20달러였고 3일권은 40달러였지만, 2일 일정으로 왔기에 오늘 하루 보고 또 필요하면 다음날 다시 끊을 요량으로 하루 티켓을 구입했다. 티켓은 본인만 사용할 수 있도록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 티켓에 인쇄를 한다.

제일 먼저 앙코르톰 남문으로 갔다. 교수는 남들이 가지 않는 전망이 좋은 숨겨진 언덕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덕분에 27m의 거대한 탑, '고푸라'를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었다. 세월의 흔적으로 많이 훼손된 모습이었지만 그런 섬세한 것마저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는 이미 관광 가이드들의 루트를 꿰차고 있었기에 어느 시간에 어디가 붐비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는 곳곳마다 한적하고 고요했다. 마치 우리가 이 유적군을 통째로 빌린 듯한 느낌이었다. 덕분에 바글거리는 관광객 사진 대신 순수한 유적군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교수가 특별히 좋아하는, 크메르제국의 왕 자야바르만 7세가 아버지를 위해 지었다는 쁘라아 칸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큰 규모에 비해 인기 없는 유적지라고 하나 알고 보면 제일 재미있는 곳이라는 평이다. 유적지 중간에 제사상이 있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호객꾼이 사진 찍기에 좋은 구도를 잡아주었다.

아직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유적지인 서바라이에서부터 라젠드라바르만 2세의 스승이 지은 작고 아담한 사원 반띠에이쓰레이를 보고 일몰 시각 즈음 쁘레룹으로 이동했다. 사람들은 보통 프놈바켕에서 일몰을 감상하지만 우리에겐 붐비지 않고 고요한 쁘레룹이 오히려 더 매력적이었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그저 돌덩이에 불과할 뻔했던 앙코르유적군 탐방은 우연히 만난 한 교수 덕에 유익하고 뜻깊었으며 앙코르 문화를 이해하는 좋은 계기였다고.

/김신형(김해시 장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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