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2013 경남학생합창제 무대 안팎

'2013 경남학생합창제'가 열린 지난 14일 창원 성산아트홀 대극장 무대 뒤. 그곳에서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다보니 학교라는 공간이 공부만 하는 곳은 아니라는,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학창 시절 추억 속에 성적이 아닌 학예제, 체육대회, 장기자랑 등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보면 공부는 그리 재미없는 것이었다. 기자도 합창부 활동을 하면서 매일같이 노래를 불렀기에 소프라노도 꿈꿔 봤고, 풍물반에 들어 장구를 쳐봤기에 지금도 장단 소리가 나면 어깨춤이 절로 난다. 마음과 몸으로 배운 것은 살면서 늘 새로운 영감을 주거나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

♬학교 안 또 다른 세상, 합창

"솔직히 말해도 돼요? 사실 제가 노는 학생이었어요. 학교 다니는 게 재미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어요."

자신을 '노는' 학생이었다고 표현한 양아림(16). "그냥 재미삼아 합창부에 들었다"는 아림이는 김해중앙여자중학교 합창부 단장이다. 합창부를 하고는 학교 생활이 변했다고 한다. '시키는' 공부보다 '선택한' 합창부 활동은 삶에 만족감을 높였다. 쳐다보기도 싫던 책이 악보 보듯 쉬워졌고, 친구들이 쉽게 다가오지 못하게 행동했던 모습도 사라졌다.

2013 경남학생합창제에 참가해 노래 실력을 뽐내고 있는 학생들. /김구연 기자

"친구들이 뽑아준 단장인데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려고요. 사람들을 이끄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요."

창원명곡고 단장 이수연(18) 학생도 합창부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성향과 대인 관계 능력을 스스로 가늠해 보는 계기가 됐다. 각 단원의 성격과 취향 파악은 기본이다 보니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친구들의 단골 고민 상담자가 된 수연이다.

오전 9시. 공연 시작 2시간 전. 모든 팀이 경남학생합창제 준비에 한창이다. 경남도민일보와 경남합창연합회가 주최·주관하고 도교육청과 창원문성대학이 후원한 이번 합창제에는 앞서 언급한 두 학교를 비롯해 창원팔룡중, 진해여고, 마산서중 총 다섯 팀이 참가했다. 고3 학생들의 인내와 열정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된 경남학생합창제는 올해로 세 번째를 맞았다.

총연습 차례를 기다리는 다섯 학교 단장들은 단원을 챙기고, 무대 순서와 준비 사항 등을 공지하느라 여념이 없다. 지휘자와 함께 줄 맞춰 입장하는 연습부터 곡을 부르고 퇴장하는 연습까지 완벽하게 마친다.

시·도, 전국 합창대회에 나가 실력을 뽐내온 무대 경험 때문인지 학생들은 뜻밖에 떨지 않고 담담한 모습이었다. 지휘하는 교사들이 더 긴장된 모습이었다.

지휘를 맡은 음악교사들은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1년간 합창단 활동을 떠올리며 성과를 돌아보고 내년의 목표를 내세웠다.

손정희 마산서중 음악교사는 "변성기가 온 친구도 많고 숫기 없는 남학생을 이끄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지만 변화하는 모습에 감동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창단한 진해여고 합창단 명영자 음악교사는 "아이들이 잘 따라와줘 늘 고맙게 생각한다. 이대로라면 내년에 전국대회 입상도 거뜬하다"고 밝혔다.

♪노래함으로써 빛나는 아이들

드디어 11시. 대극장 1600좌석은 어느새 가득 들어차 있다.

경남학생합창제 첫 무대에 올라 기량을 펼친 학교는 창원 팔룡중학교다. 첫 곡 '미제레레 노비스(Miserere Nobis)'는 피아노 반주 없이 김현경 교사의 손끝에 집중된 학생들의 눈빛이 하나 되어 무대를 만들었다. 이어 한 송이 꽃을 피우고자 하는 슬픈 사랑을 표현한 '국화 옆에서'는 고음의 하모니가 돋보였고, 뮤지컬로 널리 알려진 '맘마미아(Mamma Mia)!'는 단원들의 율동이 더해져 관객들의 환호를 불러냈다.

2년 연속 경남중등학생종합학예발표대회 중등부 합창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실력파답게 첫 무대의 긴장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합창제에 참여한 진해여고는 창단 2년 차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실력을 보였다. 내년 전국대회 입상이 목표라는 명영자 교사의 말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다.

2013 경남학생합창제에 참가해 노래 실력을 뽐내고 있는 학생들. /김구연 기자

첫 곡 '산유화'는 빠른 박자에 생동감 넘치는 곡으로 꽃이 피는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했으며, 이어 사랑스러운 하모니 '키리에(kyrie)'가 관객의 마음을 흔들었다. 반주자 실력이 특히 뛰어나 보였으며, 곡에 따라 단원들 자리 배치에 변화를 준 모습도 개성 있었다.

세 번째 무대에 오른 김해중앙여중은 가장 큰 환호와 박수를 받는 인상적인 무대를 남겼다. 첫 번째 곡 '히 윌 메이크 어 웨이(he'll make a way)'의 주인공은 부지휘자 진가은 학생이었다. 여느 음악교사 지휘 못지않게 열정적이라 보는 이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김세훈 교사가 지휘한 '레벌레이션(Revelation)' 무대에 이어, 마지막 '빠빠빠'에서는 색소폰, 바이올린 연주 팀 김해중앙여중 '스트링 앙상블' 단원도 함께해 다양함을 더했다.

학생 부지휘자, 합창 중간에 선보인 독창, 현악기와 관악기의 등장 등 신선한 기획과 시도가 돋보이는 합창 무대였다.

가장 긴장되는 무대를 선보인 마산서중. 저음의 매력을 펼친 남학생들의 목소리는 주는 힘 자체가 다른 합창단과 달랐다. 하나 된 목소리로 부른 '글로리아', '고독' 두 곡 모두 슬픈 곡이어서 더 두드러졌다.

이어 부른 영화 <국가대표> 주제곡 '버터플라이'에서 밝게 빛나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듣는 이들에게 힘찬 박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다만 합창 중간에 옷매무시를 하거나 머리를 만지는 몇몇 단원들의 모습은 관객의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아쉬운 부분이었다.

축하 공연을 펼친 개그맨 서태훈(왼쪽)과 정승환./김구연 기자

♩무대 아래 친구들 함께 즐겨

마지막으로 창원명곡고 혼성 합창단은 올해 전국고교합창대회 동상 수상과 지난해 한국청소년합창콩쿠르 동상 수상에 빛나는 실력으로 관객을 압도했다.

첫 곡 '에밀레'에 이어 요리하는 모습을 그린 '칠리 콘 카르네(Chili con Carne)'는 음량의 크고 작음과 아카펠라를 보는 듯한 하모니가 인상적이었다. 천홍아 음악교사의 힘있는 지휘도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고, 학생들은 마지막 순서임에도 놀라운 집중력을 선보였다.

무엇보다 합창단 학생의 무대를 맞이하고 함께 호흡하며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은 학교 선·후배들과 친구들이 있었기에 '경남학생합창제'는 더욱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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