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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내일 위한 작은 노력도 희망

이시우 기자 hbjunsa@idomin.com 2013년 11월 12일 화요일

더 나은 내일 위한 작은 노력도 희망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자는 말의 성찬은 지난 대선 때 가장 풍성했다. 대선 후보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법과 제도의 시급한 개선을 약속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난 지 1년이 다 돼 가는 지금 현실의 변화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가장 해결이 시급한 사회 문제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20대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사실상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분노와 좌절감에만 휩싸이는 사실이 있다. 아버지 세대보다 스펙이 훨씬 나은 청년층에게 왜 비정규직 일자리만 주어질까라는 불편한 의문은 해소되지 않은 채, 일상적으로 부대끼면서 불편함을 더해주는 고질병의 하나처럼 치부되곤 한다.

   
  이종래 한국노동운동연구소 부소장  

직접 고용 비정규직을 정규직화라는 법률이 만들어지면, 그다음부터는 직접고용보다 조건이 못한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만 양산돼왔다. 비정규직 문제만큼은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같은 희망이라도 주는 건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이런 노력은 비난보다 칭찬을 받아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

나쁜 일자리 없애는 사회적 연대 절실

1997년 IMF 구제금융사태 이후 신자유주의 광풍이 몰아친 지 15년이 흘렀다. 비정규직은 고통을 상징하는 언어가 됐고, 파견, 사내하청, 특수고용이라는 '나쁜' 일자리가 업과 업종을 가리지 않고 독버섯처럼 뻗어나갔다. 1년에 32조 원을 벌고 이건희 회장이 세계 97위 부자인 삼성전자 서비스노동자는 "배고파서 못살았다"는 유언을 남기는 시대다.

하지만 정부는 현대차의 불법파견을 10년째 방치하고 삼성전자의 위장도급에 면죄부를 주며, 사내하도급법을 만들어 불법파견을 양성화하려고 한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위원  

정규직 중심의 고용구조로 바꾸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일제시대 독립운동보다 어렵다는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과 활동을 위한 총연맹과 산별노조, 정규직노조의 지원과 연대가 핵심이다. 계급 대리전을 벌이는 현대차, 삼성서비스, 인천공항 등에서 성과를 만들어낸다면 다른 비정규직에게 큰 희망이 된다. 지방정부는 비정규직 규모와 공단에 대한 정확한 실태파악과 함께 근속과 호봉이 인정되는 정규직 전환의 모범을 만들어내야 한다. 900만 비정규직이라는 나쁜 일자리의 물줄기를 바꾸기 위한 사회적 연대의 힘이 절실하다.

비정규직 제대로 아는 것부터 시작

'비정규직'이라는 네 글자가 만들어버린 사회 편견 탓에 왠지 모르게 조심스러웠던 취재였다. 그들의 삶을 기자라는 이유로 낱낱이 들추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유난히 더웠던 지난 초여름 낯선 서울 땅에서 홈플러스 영등포점 노동자를 만났다. 정규직 사원들이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해 주기만 한다면 홈플러스는 괜찮은 직장이라고 했다.

비가 오락가락했던 늦여름 '알바' 노동자를 알바연대 부산사무소에서 만났다. 부산에서 가장 큰 맥도날드에서 일한다는 20대 청년은 취재 내내 노동의 가치를 물었다. 특히 사회에 갓 발을 들인 젊은이들에게 노동이 사회에서 어떤 대우부터 받게 되는지 고민했다.

   
  또 하나의 계급... 기획취재팀 이미지 기자  

그리고 지난달 김해에서 학교 급식 조리사와 마주 앉았다. 투철한 직업의식이 있는 '프로'였다. 하지만 학교 구성원들 시선은 그의 어깨를 처지게 했다.

내가 만났던 그들 삶은 꼭 보여줘야 할 우리 모습이었다. 그래서 생생히 전달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비정규직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푸는 방법은 오히려 간단할 수 있다. 제대로 아는 것. 이번 '또 하나의 계급 비정규직'이 힘을 보태고 싶다.

파견노동자에게 바치는 심층 보도

1999년 7월 초 지금은 대림자동차 자동차 부품 생산 공장이 된 창원 성주동 한 공장에 위장 취업했다.

무슨 노동운동을 위한 투신? 그런 게 아니라 아르바이트보다 파견 노동자로 들어가면 몇십만 원이나 더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대 뒤 전문대 졸업자로 서류를 꾸몄다.

그곳에서 나보다 한 살 작은 20대 중반의 애 아빠를 만났다. 그도 파견노동자였다.

7개월간 알루미늄 주물공장에서 주야 2교대에 토요일 오후는 물론이고 일요일 특근도 잦았다.

서로 의지하며 잘 지내던 그와 2000년 1월 말에 헤어졌다. 공부할 정도의 돈을 벌고서 공장을 그만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에게 마지막까지 대학생임을 밝히지 못했다.

   
  또 하나의 계급... 이시우 기획취재팀장  

1년 6개월 뒤 복학을 하고 그를 대학 근처에서 만났다. 그는 그때야 내가 대학생임을 알았다. 그리고는 제법 실망한 표정으로 그냥 지나가버렸다. 내게 적지 않은 배신감이 들었으리라.

그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 그 뒤 그에게 늘 죄스러웠다. 22회에 걸친 기획취재를 하면서 다소 힘들 때는 죗값 치르는 셈이라고 여겼다. 이 기획기사를 그에게 혹은 또 다른 그들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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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우 기자

    • 이시우 기자
  • 직전 자치행정1부(정치부) 도의회.정당 담당 기자로 일하다가 최근 경제부 (옛 창원지역) 대기업/창원상의/중소기업청 경남지역본부/한국산업단지공단 경남지역본부 등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