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의 뜨거운 이슈였던 비정규직 노동자문제가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삼성전자 서비스의 외주업체에 근무하던 최종범 노동자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고발한 실상은 비정규 노동자문제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문제가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된 최초의 배경은 정규직 노동자와 차별이다. 동일 노동을 하는데도 차별적인 저임금을 받는 현실에 대한 고발이 비정규직 노동자문제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차별시정을 목적으로 하는 각종 법제도 장치들이 만들어졌지만, 비정규 노동자문제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도 어려울 만큼 교묘해지면서 비정규 노동자의 규모는 더욱 늘어나지 않았냐는 반문마저 나오고 있다. 다시 말해 비정규 노동자문제의 핵심과 쟁점이 이미 바뀌어 버렸다는 지적인 셈이다.

법 제도라는 규제 장치가 만들어지자 시장은 발 빠르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직접고용에서 간접고용으로 바꾸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간접고용 확대는 개별적 독립자영업자로 등록되거나 파견업체 사원으로 등록되면서 더는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으로 계산되는 결과를 방치하여 왔다. 이런 상황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규모는 거의 오리무중의 수중에 놓여 있다. 특히 민간서비스 산업의 경우 판매원들이 개별 독립자영업자로 전락하면서 이들의 노동권은 사실상 존재가 어려운 지경에 놓여 있다. 갑을관계라는 종속관계가 형성되면서 각종 생필품의 가격결정권을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행사하는 현실에 대해 판매나 영업노동자는 하소연할 곳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대기업의 지나친 횡포는 이른바 경제민주화 법안들의 제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경제민주화 법안은 정작 당사자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노동권을 지킬 수 있도록 노조결성과 단체교섭 요구와 같은 내용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물론 원청 사업주에 대한 단체교섭 요구권이나 노조결성권은 노동 관련법에서 다루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경제민주화 법안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문제의 핵심인 노동기본권도 보장할 수 있는 법 제도가 시급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여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게 더욱 쉬워져야 해법 찾기도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