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민주노총, 방향·전략 확실히 정해야"

"민주노총이 200억 원 비정규직 기금 조성을 하고, 비정규직 전략조직화를 한다는 데 어떤 방향으로 이 사업을 할지 구체적인 상을 제시해야 한다."

지난 8일 오후 경남도민일보 주최로 '또 하나의 계급 비정규직' 해법 모색을 위한 서울 좌담회에 참여한 민주노총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와 공공운수노조·연맹 비정규직 담당자의 공통된 지적이었다.

민주노총은 200억 원 비정규직 기금을 조성하고, 단일 사업장이 아닌 여러 사업장이 집중적으로 모인 지역이나 공단별로 비정규직을 노조에 가입게 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이 방안을 두고 일부 이견이 있었다. 김진혁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연맹 비정규직전략조직실장은 "과거 한 사업장 안 노동자를 노조로 묶는 것과 달리 특정 산업 밀집지역 비정규직을 노조로 묶는 점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비정규직을 노조로 묶어도 자치단체나 지역사업장 대표들과 지역 협약 체결만 하지 단체협약 체결로 이어지기 쉽지 않다. 현행 노조법은 단체협약을 지역별로 체결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광장 가득 메운 노동자들1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3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분신한 11월 13일을 기리며 열린 이번 대회에서 이들은 민주주의 파괴중단 및 노동환경 개선 등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이상우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직국장은 "금속노조나 공공운수노조는 이미 자체적으로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을 하고 있다. 이런 산별 노조를 제외한 곳에 재정을 요구하고, 사업을 진행해야지 독자적으로 사업을 해온 곳에 재정을 중복 요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더욱이 민주노총이 어떤 방향으로 비정규직 전략조직화를 할지 구체적인 상을 제시해야 한다. 이게 없이 그냥 재정을 모으고, 사업만 해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놓았다.

비정규직 스스로 문제 해결 주체가 돼야 한다는 당위에는 모인 이들 모두 의견을 같이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스스로 문제 해결 주체가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공감했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 집행위원은 "현대차 비정규직만 해도 철탑 고공농성을 300일 가까이 했다. 하지만 사측은 침묵했다. 많지는 않지만 비정규직 문제를 두고 비정규직 스스로 가장 치열하게 싸웠다. 금속노조나 공공운수노조 등이 우선 산업별 대표적인 비정규직 싸움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그 싸움의 승리를 보고 희망을 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성종 서비스산업노조연맹 정책기획실장은 "1998년 이후 대기업 운영 호텔들은 여러 일을 대주주 친·인척 도급업체로 외주화했다. 그런데 원청인 호텔은 도급업체 노동자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민간서비스업 노동자 중 근로기준법이 적용 안 되는 특수고용직이 너무 많다. 이마트 사례처럼 이들을 노조로 묶는 게 정말 어렵다"고 했다.

법·제도 개선도 제기됐다. 하지만 개선책을 두고는 노조 내에서, 정치권과 노조 간 시각차가 있었다.

김진혁 실장은 "지금껏 비정규직 보호법이라고 나온 파견법, 기간제법, 노조법상 복수노조의 교섭 창구 단일화 등은 비정규직을 확산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법안을 새로 만들 게 아니라 이걸 없애는 게 맞지 않느냐"고 했다.

이에 이상우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국장은 "기존 법을 아예 없애는 것보다 비정규직이나 기간제를 쓸 때 그 이유를 제한하는 방안, 즉 사용사유 제한을 명확히 해야 한다. 노무현 정권 때 이걸 하지 않아 비정규직이 결국 확산했다. 간접고용이나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이 제도 개선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정길채 민주당 정책실 노동 전문위원은 "법만 없앤다고 과연 파견직, 기간제 노동자가 없어질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 특히 민주당은 19대 국회 들어 비정규직 해법만큼은 양대 노총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했고, 노동계와 이견이 없다. 하지만, 솔직히 노동 관련 법안은 의회 안에서만 싸우는데 한계가 있다. 노조 자체 힘도 필요하다. 그런데 기존 노조가 비정규직을 조직화하는 데 어떤 노력을 했고, 얼마나 조직됐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