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주말] (90) 고성 옥천사

가을은

뇌리의 문턱을 넘지 못한 이름을

심장에서 꿈틀거리도록

감춰진 감성을 일으키는 계절이다

.…

어떤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주어지는 선물

그래서 가을은 그리움이다.  

- 이혜정 시 '가을은 그리움이다' 중에서

가을이 내려앉은 산사로 가는 길목에는 낙엽 비가 내린다. 생명을 다한 절정의 붉은색이 사뿐히 발길을 붙잡는다.

고성 연화산 중턱에 자리 잡은 옥천사로 향하는 길. 큰 도로를 지나 마을 길로 접어들어서도 한참을 달리면 단풍 색은 더욱 빛을 발한다.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든 듯하다. 단풍 색은 더욱 짙어진다. 이정표가 따로 필요 없다. 짙어지는 색색의 단풍이 산사에 이르렀음을 말해준다.

"단풍잎 주차장이야!"

단풍으로 뒤덮인 옥천사 계곡.

미처 마르지 않은 이슬이 청량한 새벽 공기를 그대로 머금고 있다. 적막과 여유로움이 감싸는 평일의 산사는 온전히 우리에게 허락된 고즈넉한 선물이다.

초입에 차를 놓고 졸졸졸 흐르는 계곡을 옆에 끼고 10여 분 걸어 올라가면 옥천사 천왕문에 이른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계곡물도, 오르는 길도 단풍으로 가득 뒤덮여 있다.

비록 낙화하긴 했으나 이내 사라지고 싶지 않은 듯 계곡물에도 휩쓸리지 않고 사람들의 발길에도 수북이 또 그 나름의 생명력을 뽐내고 있다.

'바스락바스락.'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단풍과 낙엽으로 들어간다.

발바닥에 잔뜩 힘을 주고 단풍 소리도 들어보고 제 손가락을 닮은 단풍잎 숫자를 정성스레 세어본다.

아이가 단풍을 한 움큼 쥐고 힘차게 발돋움을 해 하늘로 날아오른다. 낙엽이 우수수 비가 되어 다시 아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참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그 어떤 화가가 이런 조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붉디 붉은, 정말 붉어 맑기까지 한 새빨간 단풍에서 샛노란 잎들과 아직 연초록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나뭇잎까지 어느 하나 조화롭지 않은 것이 없다.

산사의 가을은 고요하다. 낙엽들이 이야기하는 '바스락' 가을 소리만이 귓가에 맴돈다.

산 아래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가을이 주는 선물이다.

옥천사에 이르면 등산로로 오르는 길이 있다. 초반 조금 가파르기는 하지만 언제든 내려갈 준비를 한다면 느릿느릿 가을 속으로 들어가보는 것도 좋다.

이번 주말, 깊숙이 다가온 가을을 찾아 숲 속 깊숙이 산사의 만추를 마주해보는 것은 어떨까?

◇옥천사 = 연화산 옥천사는 의상대사가 당나라 지엄 법사로부터 화엄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화엄을 강론하고자 670년(신라 문무왕 10)에 창건한 절이다. 절의 이름은 대웅전 왼편에 끊임없이 솟아나는 달고 맛있는 샘(옥천)이 있다는 것에서 유래했다. 지금은 하동 쌍계사의 말사이지만 당시에는 화엄종찰로 지정된 화원 10대 사찰 중 하나였다. 옥천사에는 보물 제495호인 임자명반자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인 대웅전, 자방루, 향로 범종 등의 문화재가 있고 백련암, 청련암, 연대암 등의 부속 암자가 있다. 입장료 어른 1300원.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곳 75선

단풍 어우러진 절경이 특히 아름다운 가을 산사는 어디가 있을까.

국립공원관리공단(www.knps.or.kr)은 전국 국립공원 내 탐방로 가운데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곳 75선'을 선정해 공개했다.

늦어도 이번 주말엔 찾아야 가을이 조건 없이 주는 선물 '단풍'을 만끽할 수 있을 듯하다.

△'붉게 타오르는 가을의 손짓' 설악산 = 유독 짙고 선명한 빛깔로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단풍의 절경을 보여주는 설악산. 한계령∼중청(7.8km, 5시간 소요), 백담사∼중청(12.3km, 7시간 30분) 등 6개 탐방로는 설악산의 단풍을 감상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강렬한 붉은빛의 향연 '지리산' = 오색의 잎이 조화를 이룬 풍부한 단풍의 색감을 보여주는 지리산. 지리산에서 단풍 감상으로 제격인 탐방로는 피아골 직전마을∼피아골 삼거리(8km, 3시간 30분), 뱀사골∼화개재∼반야봉(12l㎞, 7시간) 등으로 탐방로 곳곳에서 단풍 잔치가 펼쳐진다.

△색동옷 갈아입은 환상의 산 '내장산' = 선홍색 빛 고운 길을 펼쳐 보이는 내장산. 공원입구∼내장사(3km, 1시간), 공원입구∼백양사(1.8km, 1시간) 등 5개 탐방로에서 단풍의 매력을 발산한다. 특히 내장사와 백양사에 이르는 탐방로는 평탄한 길이라서 어린이와 함께하는 가족 탐방객에게 적합하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이 밖에 △변산반도 국립공원(남여치∼내변산, 내변산∼내소사) △한려해상 국립공원(금산탐방로∼정상, 진주∼한산도망산∼덮을개, 저구삼거리∼거제도망산∼명사, 학동고개∼가라산∼저구삼거리) △월출산 국립공원(바람재삼거리∼천황봉, 구름다리∼천황봉, 도갑지구∼억새밭) 등이 11월 중순까지 단풍이 절정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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