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는 많은 학자에게 매우 흥미로운 주제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이른바 '민주화학'(民主化學)이 바로 그 분야로서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연구 성과가 축적돼 있다. 하지만 연구 경향은 조금 달라졌는데 초기 연구가 주로 권위주의 붕괴 배경과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 집중한 데 반해 최근에는 주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가 공고화되는 과정에 방점을 찍고 있다. 여기에서 '공고화'란 시멘트가 굳듯이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민주주의가 붕괴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 같은 연구 경향의 이동은 예상치 못한 '잡종 민주주의'(Hybrid Democracy)의 출현 때문이었다. 권위주의가 무너지면 별 문제 없이 민주주의를 향유하게 될 거라고 믿었는데 그게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던 거다. 이른바 '민주화 제3의 물결'(새뮤얼 헌팅턴의 이론. 1974년 포르투갈 민주화를 시작으로 촉발된 남미와 아시아 국가들의 연이은 민주화를 일컫는 표현) 속에 민주주의로 이행한 수많은 나라 대부분이 '권위주의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민주주의도 아닌' 유사 변종 민주주의의 양태를 보여준 탓이다.

물론 여기엔 민주주의란 개념 자체에 대한 변화도 크게 한몫했다. 과거엔 '정기적으로 자유롭게 치러지는 선거를 통해 권력자를 선출하는 체제'를 말했는데 점차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시민의 기본권이 보장되는 체제'로 그 개념이 확대됐다. 흔히 말하는 '절차적 민주주의'(선거)에 '내용적 민주주의'(시민권)가 추가된 것이다. 짐바브웨의 무가비 정권처럼 아무리 선거에 의해 합법적으로 권력자를 뽑는다 해도 그 권력이 시민의 기본권을 짓밟고 법치주의를 구현하지 않을 때 그 사회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순 없다는 거다.

지난 7월 창원시 상남동 분수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심판 촛불 문화제의 한 장면. /경남도민일보 DB

그간 한국 민주주의는 국제 사회로부터 매우 후한 점수를 받아 왔다. 빠른 경제성장과 그에 못잖은 민주주의 발전 덕에 신생 민주주의 국가로선 드물게 민주주의 공고화 단계에 접어든 나라로 평가받아 왔다. 특히 민주주의 평가기관 '프리덤 하우스'의 경우 일찌감치 한국 민주주의를 'Free county'(자유로운 국가), 즉 민주주의가 제대로 꽃핀 국가 중 하나로 분류해 왔다. 선거는 자유롭게 치러지되 시민의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국가, 즉 'Partly Free Country'(부분적 자유국가로 일종의 잡종 민주주의)나 선거도 공정하지 않고 기초적인 시민권조차 박탈된 나라, 즉 'Not Free Country'(자유롭지 않은 국가로 권위주의 국가)와 질적으로 다른 체제로 평가해 온 것이다.

그러던 프리덤 하우스가 2011년을 기점으로 이 나라를 '부분적 자유' 국가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여론조사 기관 갤럽은 2013년 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대한민국을 133개국 가운데 87위로, '국경 없는 기자회'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인터넷 감시국가'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하나같이 이 나라를 정기적인 선거만 치러지고 있을 뿐 시민의 기본권은 전혀 존중받고 있지 못한 잡종 민주주의 국가로 본 것이다. 그런 와중에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의혹이 불거졌다. 비록 정상적이라고 볼 순 없지만 그나마 민주주의라는 외피는 유지할 수 있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어렵게 된 것이니 명실상부하게 권위주의 국가로 완벽하게 회귀했다고 볼 수 있겠다. 1994년 정도로 돌아가 달콤한 추억 사냥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라 다시 1987년을 목 놓아 불러야 할 이유다. 응답하라 1987!

/김갑수(한국사회여론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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