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맛집]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성동 함양옻닭

몸이 찬 사람에게 좋다는 옻닭. 한여름에도 발이 찬 기자가 생전 처음 옻닭을 먹었더니 40여 분 뒤 발끝까지 뜨끈해지는 기운을 느꼈다. 다행히 옻은 오르지 않았다.

15년째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순남(57) 사장의 '함양옻닭'을 찾았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성동 73-14번지, 삼성생명빌딩 맞은편 골목에 있는 식당의 겉모습은 조금 허름해 보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안은 깔끔하고 정감이 있다. 신발을 벗기도 전에 코끝으로 밀려 들어오는 옻 내음을 맡는 순간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어릴 적 온 식구들이 가을걷이하러 부산시 기장군 철마면에 있는 외가에 가면 외할머니는 늘 옻나무를 넣어 푹 끓인 시커먼 백숙을 내놓았다. 특히 발이 찬 큰사위 앞에 놓은 그릇에는 닭다리가 빠지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큰손녀 딸인 기자에게 "생긴 것도 아부지 영판인 게 발까지 찬 걸 똑 닮았누. 나중에 어른 되면 옻닭을 삶아주마"라며, 어린 손주들에게는 새하얀 백숙을 주셨다.

몸 찬 사람에게 으뜸 '함양 참옻' 고집

   

옻은 예로부터 독성만 잘 다스리면 산삼에 버금가는 명약이라 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 따르면 옻은 성질이 따뜻하고 맛은 매우며 독이 있다. 그리고 어혈, 산후통, 적취 해소 등에 효과가 있고, 기생충을 죽이고 피로를 다스린다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옻오름'이라는 부작용이 생기면 몸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가려운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옻 박사에 버금가는 김순남 사장은 "위장이 약하면 몸이 차다. 찬 사람에게 옻은 좋지만 열이 많은 사람은 피하는 게 좋다"며 "체질에 따라 옻이 오르는 사람도 있으니 잘 선택해 먹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고기도 성질에 따라 찬 음식과 더운 음식으로 나뉘는데 돼지고기와 오리고기는 찬 음식에, 소고기와 닭고기는 더운 음식에 속한다. 여름철 보양식으로 삼계탕이 각광을 받는 이유도 닭고기가 더운 음식이기 때문이다. 여름철에는 주로 찬 음식을 많이 먹게 되고 땀 배출이 많아 몸이 냉하므로 닭고기를 먹는 게 저하된 오장육부의 기능을 보완해 주기에 안성맞춤이다. 나아가 음식 재료에도 궁합이 있는 법. 더운 성질을 가진 옻과 닭이 만나면 최고의 보양식이 된다.

"한국 제일의 옻 생산지 함양 참옻만을 고집합니다." 식당 안에 떡하니 내걸린 문구를 보아하니 옻에도 종류가 있고 함양이 주요 옻 생산지임을 눈치챌 수 있다. 식용으로 쓰는 옻나무는 보통 그 앞에 '참' 자를 붙여 참옻이라 하고, 쓰임새가 별로 없이 모양만 비슷한 옻나무는 '개' 자를 붙여 개옻이라 한다. 국내 주요 옻나무 생산지로는 함양군 마천면과 강원도 원주시를 꼽는다.

김순남 씨는 "함양 마천면 옻나무 재배 농가에서 직거래해 참옻을 가져온다"며 "아무리 좋은 성질을 가졌어도 독성이 있기에 반드시 참옻을 1차로 끓여낸 물에 2차로 닭을 삶아낸다"고 설명했다.

식당에서 가장 인기있는 메뉴인 '토종 옻닭'을 맛보려면 1시간 전 예약은 필수다. 옻닭을 맛보기 2시간 전부터 식당을 찾아 재료 원산지와 조리 과정을 살폈다.

푹 삶은 토종닭 쫄깃함 살아있어

일반 닭보다 뜯는 맛이 좋은 토종닭은 냉동되지 않은 생닭을 쓰며 창원시 성산구 성주사 근처 남지동 785번지에 있는 '숲 속 농장'이라는 산에서 기른 닭을 매일 가져온다. 대추는 주인장의 언니 시댁 식구가 밀양 청도에서 대추 농사를 하고 있어 직거래하고, 인삼은 충남 금산인삼을 쓰며 당귀는 마산 부림시장에서 산다. 옻닭을 삶을 때 빠지지 않는 잡곡은 찹쌀, 검정쌀, 멥쌀, 녹두, 조, 수수인데 모두 국산이며 부림시장에서 산다.

함양옻닭은 압력솥으로 옻닭을 만든다. 압력솥에 손질한 토종닭과 6시간 푹 끓여낸 짙은 갈색의 참옻 물을 자작하게 담고, 대추, 인삼, 당귀와 함께 45분 동안 끓인다. 솥 안에는 잡곡밥도 자리 잡는데, 밥이 퍼져 국물이 탁하지 않도록 옴팍한 용기에 잡곡들을 고루 담아 함께 삶아낸다. 이러면 두 주먹 만한 밥이 대게 딱지 모양으로 나온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성동 '함양옻닭'의 대표 메뉴 토종 옻닭. 압력솥에 6시간 동안 우린 참옻 물, 토종닭, 대추, 인삼, 당귀를 넣어 45분간 푹 끓여낸다. /김구연 기자

푸짐하게 차려 나온 상을 받아 맑게 우러나온 옻닭 국물부터 후루룩 마셨다. 닭 잡내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일품 국물이었다. 이어 일반 닭다리보다 두 배는 큰 토종 닭다리를 뜯었더니 퍼석하지 않고 쫄깃한 맛에 식감이 좋다.

반찬·젓갈 모두 손수 담근 것만 써

함께 나오는 밑반찬도 모두 직접 재료부터 손질해 만든다. 상큼한 상추겉절이와 새콤한 버섯 시금치 초무침이 닭고기와 잘 어울렸다. 겉절이를 무칠 때 매실 진액을 곁들이는데 가게 한쪽에 김순남 씨가 직접 담근 매실 원액 단지가 줄을 서 있다.

옻닭과 함께 삶아져 나온 잡곡밥을 한술 떠 김치를 얹어 먹다 어느새 주인장에게 두 그릇째 김치를 시키고 만다. 식당 뒤쪽에는 김순남 씨가 손수 담근 멸치젓갈 통이 한가득이다.

김치는 1년에 50포기씩 4번 정도 담그는데, 주인장은 "김치 맛은 젓갈 맛이 좌우한다. 사는 것보다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린다"고 했다.

반찬부터 젓갈까지 모든 걸 직접 담그는 이유를 물으니 "손님들 때문"이라며 "중국산 김치 등 어디서 사온지도 모르는 반찬을 내놓을 수는 없다"고 했다. 깊은 김치 맛에서 느껴지는 주인장의 손맛이 김순남표 '함양옻닭'이 지난 1999년 5월 20일부터 지금까지 꿋꿋이 버텨온 동력이었을 것이다.

가게를 옮기거나 넓혀볼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테이블 10개가 내가 맛있게 한 상 차려낼 수 있는 적정선"이라며 "그 수가 늘어나면 상마다 정성을 기울일 힘이 내게도 부족해지니 손님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지금이 딱 좋다"고 말했다.

   

<메뉴 및 위치>

◇메뉴: △토종옻닭 대 4만 8000원, 소 4만 원 △옻닭 1인용 1만 3000원 △옻유황오리 4만 5000원 △백숙 대 4만 8000원, 소 4만 원 △백숙 1인용 1만 3000원.

◇위치: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성동 73-14. 055-241-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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