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계급 비정규직] (20) 상급노조, 립서비스 수준 아닌 실제 도움을

"우리도 노조에 가입하고 싶죠. 그런데 그들이 우리를 생각하나요?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이나 다 큰 공장 사람들 이익만 대변하잖아요. 그러니 노동조합은 당연히 멀 수밖에 없죠."

최근 만난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두 여성의 공통된 이야기였다. 이들은 각각 세무사 사무실과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하고 있다. 그들은 왜 이렇게 생각할까?

지난 2월 말부터 경남을 뜨겁게 달군 진주의료원 사태에서 홍준표 경남지사가 '정규직 노조, 강성노조의 해방구'라며 보건의료노조 진주의료원지부를 공격하자 의료원 폐업에 부정적이던 여론이 요동쳤다.

당시 40대 한 시민은 "일반인 눈으로 보면 이런 단체협약 조항은 과하게 느껴진다. 왜 노조에 시민들이 비판적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노조, 특히 정규직을 중심으로 구성된 노조 상급단체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향한 부정적인 여론은 이렇듯 사회 저변에 깔렸다.

하지만 이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의 낮은 노조 가입률, 단체협약이 공장(사업장) 밖으로 적용되지 못하는 보수적인 노동정책도 큰 몫을 차지한다. 더욱이 보수정당 중심의 한국 정치 현실에서 프랑스처럼 노조의 단체협약이 비노조원에게 확산할 수 있는 법제화는 기대하기 쉽지 않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는 노조 상급단체인 양대 노총을 향한 비난으로 돌아간다.

지난달 31일 창원시 상남동 창원노동회관 3층 소회의실에서 민주노총 경남본부 소속 도내 산업별·연맹별 노조 미조직·비정규직 담당자들이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 평가회의를 하고 있다./이시우 기자

2013년 8월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체 임금 노동자의 노조 가입률은 12.4%였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조 가입률은 3%(정규직 17%)에 그쳤다. 이는 국내 노동자들의 87.6%가 단체협약이나 노조를 경험한 적이 없고, 비정규직의 97%가 미경험자라는 얘기다.

비정규직 상당수는 "정규직 노동자 고용이 경직돼 있고 고임금자이다. 해고도 상대적으로 쉽게 하고 이들 임금을 낮춰 비정규직에게 나눠줘야 한다"는 자본의 논리를 대체로 수긍한다. 97%의 비정규직에게 특권층으로 보이는 노조 가입자 혹은 정규직을 향해 사실상 '바닥을 향한 경주'를 하자는 자본의 논리는 그들의 논리로 수용되는 셈이다.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이 다양한 의제로 아무리 노력해도 미조직 비정규직을 노조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양대 노총은 이런 '바닥을 향한 경주'를 피하기 어려운 처지다.

그럼 양대 노총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까?

양대 노총은 2000년 비정규직차별철폐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하고 최근에는 해마다 최저임금 공동 요구안을 내며 정부와 사용자에 맞서고 있다.

목차

한국노총 정책실에 따르면 한국노총은 고용부 산하 직업상담원 등 1998년 이후 2만 5000여 명의 비정규직을 가입시켰으며, 1만 4000명은 정규직화하거나 탈퇴했다. 2006년 비정규직 관련법 제정 이후 공공부문과 금융권 비정규직을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말 현재 조합원 89만 7258명 중 비정규직은 1만 1000여 명에 그쳤다. 한국노총은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비정규직 특별위원회, 비정규직조직특별팀, 미조직본부 등을 두었지만 최근에는 별도 조직이나 예산배분을 하지 않고 있다. 대신 조직본부에서 지역일반노조를 설립해 초기업 단위로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노조 가입에 힘쓴다는 복안이다.

민주노총은 2012년 12월 말 현재 조합원 63만 1331명, 이중 비정규직은 10만 2000여 명(공공기관 무기계약직 1만 7000여 명 포함)으로 한국노총보다는 훨씬 많다. 특히 국내에서 최대 규모 비정규직 노조인 학교 비정규직은 4만 4000여 명, 도내만 해도 3250명의 조합원이 있다. 별도 노조인 여성노조까지 포함하면 5만 명에 이른다.

민주노총은 2005년 조합원 1인당 1만 원 모금과 비정규직 포함 미조직 사업 기금 50억 원 조성, 비정규직 전담인력 51명 배출해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를 목표로 한 전략조직화 사업을 결정해 실행했다. 실제로는 목표액에는 못 미치는 22억 원 기금을 조성해 전담 인력(활동가) 23명을 배출했다. 올해까지 6년간 두 차례 전략조직화를 진행해 2011년부터 지난 8월까지 3만 7000여 명(7월 설립한 금속노조 성동조선지회 포함)을 새롭게 조직화했다. 이중 인천공항, 학교 비정규직, 백화점·대형 마트 등 새로 조직된 이들 대부분이 비정규직이었다.

이런 성과에는 지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전체 사업비의 7.5%를 배정하는 노력이 있었다. 민주노총 가맹 산별노조인 금속노조도 전체 사업비의 10%를 넘게 배정하며 서울 디지털산업단지, 거제-통영-고성 조선산업단지, 삼성전자서비스노조 설립 등에 힘을 쏟고 있다.

캐나다 노조 유니포는 앞으로 5년간 전체 예산(고정비 + 사업비)의 10%를 불안정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미조직 사업에 쏟아붓는다. 유니포와 비교하면 민주노총은 고정비를 포함한 지난해 전체 예산의 1%를 이 사업에 쓴 셈이다.

올 10월 초 자체적으로 검토한 '2기 전략조직화 사업 총평가 및 3기 전략조직화 사업 전망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민주노총은 200억 원 기금 마련을 검토 중이다.

채근식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 전략사업국장은 "논의 중이지만 올해까지 끝나는 2기 사업을 확장해 진행한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이 기금을 조합비에다가 대중의 자발적인 성금을 포함하는 등 구체적인 모금 방안은 아직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예산만이 아니었다. 비정규직노동단체들은 일상적인 차별 시정 교육을 강화하고 사업장에만 국한된 조직화 사업에서 벗어나 '지역 중심'의 노조 활동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철식 정책위원장은 "사업장 내에서 정규직 조합원의 차별 시정 교육을 강화하고, 비정규직이 느낀 차별을 해소하려는 사소한 실천은 기본이자 정말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 정책위원장은 이어 "한국 노조는 지금껏 지역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비정규직을 노조에 가입시키려면 이제는 지역 중심으로 가야 한다. 거제 등 경남 조선소 밀집지역 비정규직만 해도 기존 사업장 중심 조직화로는 노조를 만들 수 없다. 지역 의제를 발굴하며, 지역단체와 연대하고, 그걸 이슈화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곳 비정규직을 통째로 엮는 지금과 전혀 다른 차원의 조직화 고민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특히 그는 "사업장에만 파묻힌 노조운동은 한계에 이르렀고 노동운동의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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