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상주 작은 시골 중학교 소나무 울타리 밖의 가을 바다는 햇살 아래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그 빛에 홀리듯 자꾸 바다에 눈길이 가서 강의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여름과 가을, 계절의 차이가 그곳에서는 더 확연했다. 사람이 없는 철 지난 바닷가에서 나는 온전히 밀려드는 바다와 교감했고 추억을 만났다.

30년 전, 대학교 1학년이던 열아홉 시절 여름 방학에 덜컹대는 시외버스를 타고 그곳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이 고향이던 선배가 여름 방학 동안 작은 판매점을 차려 아르바이트를 하며 우리를 불렀기에 들뜬 마음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거의 30년이나 지난 시간에 기억이 조각조각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하지만 그 여름 찬란했던 별빛과 갑작스레 불어닥친 폭풍에 울던 바다의 모습만은 선연히 떠올랐다. 그 길로 바로 서울에 있는 기억 속의 선배에게 바다 풍경 사진 한 장을 동봉해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곧바로 반가움을 가득 담아 보내온 선배의 답장에는 사진 속의 학교 울타리 방풍림은 선배가 중학교 다닐 때 심은 나무라는 것, 그리고 내가 있는 학교의 행정실장이 친구라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강의 중 느껴진 눈길,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선배처럼 선한 눈매를 지닌, 바로 선배의 친구였다. 일정을 마친 뒤 함께 한 자리에서 친구의 후배는 자기 후배나 마찬가지라며 더없이 따뜻하게 대해준 선배의 친구 덕분에 또 하나 추억이 쌓였다.

어디서나 사람이 의문이고 그 의문의 답임을 느끼며 돌아오는 길에 나를 둘러싼 수많은 인연을 떠올려 보았다. 우리의 삶이란 복잡해 보이지만 실상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엮어가는 끝없는 인연의 길이 아닐까. 어떤 만남은 아름답게 기억되고 또 어떤 만남은 아프게 기억되기도 한다. 되도록 좋은 인연을 만나서 사업도, 생활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종종 간과하는 것이 있다. 좋은 인연이란 우연히 만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우연히 만난 누군가가 내게 기막힌 인연의 끈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이 없다면 결국 이 또한 나와 무관한 것이 되고 만다. 정현종 시인은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서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이라고 노래한다. 그래서 그의 시에서는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하고 후회한다.

내 삶의 시간들에 함께 한 수많은 사람들, 만남을 나는 얼마만큼 소중히 여기고 가꾸어 왔던가. 혹시 나도 내 곁에 있는 그 수많은 인연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이기적인 생각으로 헛되이 흘려보내지는 않았을까? 돌아와서 선배와 친구분께 진심어린 감사를 담아서 인사를 전했다. 두 분 다 곧바로 기쁨과 반가움을 담은 답장을 보내주셨다. 또 하나 인연의 실타래가 풀어져서 남해 상주의 바다로 이어졌다.

   

내 삶에 다가오는 크고 작은 인연이 모두 꽃봉오리가 되어 기쁨의 꽃을 활짝 피우도록 더욱 세심하게 삶을 보듬어 안고 싶다.

/윤은주(수필가·한국독서교육개발원 전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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