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 필요한 곳 언제 어디든 '출동' 낮밤 가리지 않고 봉사활동

'119'는 일반인들이 난감해하고 불안해하는 긴급한 사고·사건을 해결하는 만능 일꾼으로 정평이 난 지 오래다. '119'가 국민들의 든든한 보호자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수많은 소방 공무원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직업 소방공무원은 아니지만 자신이 사는 동네와 도시를 위해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의용소방대원들의 열성도 큰 몫을 차지했다.

지난달 20일 부마민주항쟁기념 팔용산 걷기대회가 열린 마산자유무역지역 운동장에서 마산여성의용소방대원 김미애(50) 씨를 만났다. 김 씨는 동료 여성의소대 대원들과 함께 마산소방서가 설치한 심폐소생술 체험 부스에서 참가자들에게 차 나눔 봉사를 하고 있었다.

여성의용소방대원들의 활동상은 간간이 접해왔던 터였다. 동네 경로당을 방문해 급식 봉사를 하는가 하면, 바쁜 농번기에는 일손돕기에도 적극적이었다. 농촌일손돕기를 할 때는 손수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들고 가 농촌 어르신들에게 대접하곤 했다.

봉사활동도 중요한 일 중 하나지만 이들은 항상 언제 터질지 모를 대형 화재와 사고에 대비하고 있었다. 만약 큰불이 나면 비상연락을 받은 여성의용소방대원들도 함께 출동한다. 현장에서 물과 음식을 조달하고 마무리 잔불 정리에도 투입된다고 한다.

지난달 20일 열린 부마민주항쟁기념 팔용산 걷기대회에서 만난 김미애 씨.

10년 전 태풍 매미로 큰 피해가 발생한 마산에서 여성의용소방대원들의 활약상은 단연 돋보였다. 처참했던 재난 현장이 어느 정도 정리되기까지는 그들의 꼼꼼한 손 매무새가 큰 힘이 된 것이다.

김미애(50) 씨는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에 마산 여성의용소방대원이 되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고 약간의 공백기가 생기더라고요. 사회활동을 하고 싶었어요. 친구의 권유로 들어오게 됐는데, 지금은 너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결혼하고 나서는 집안일과 애들 일밖에 몰랐죠. 그래서 의용소방대원이 된다니까 신랑도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요. 지금은 적극적으로 믿고 도와주고 있어요."

김 씨는 마산이 "제2의 고향"이라고 했다. 김 씨가 태어난 곳은 함양군 마천면 백무동 인근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김 씨는 한일여고(현 한일전산여고)에 입학했다. 1970∼80년대 한일여고를 다닌 학생들이 마산 경제의 주축이 되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힘든 시절이었지만 마산에서 성장한 김 씨는 마산이라는 도시를 성장시키기도 했으며 이제는 마산을 위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봉사하고 있었다.

여성의용소방대 '정예대원'으로서 자부심도 대단했다. "일단 자세가 다른 것 같아요. 자부심이라고 해야 하나. 일이면 일, 단합이며 단합, 여기에 소속돼 있는 자체가 행복이기도 합니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보람도 있고요."

여성의용소방대원들은 활동비 얼마를 받고 있지만 여기에 십시일반 모은 회비까지 보태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었다.

마산여성의용소방대원들은 마산뿐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경남 전역을 가리지 않고 '출동'한다.

그만큼 '정예대원'이 되기도 까다롭다. 마산여성의용소방대에서 총무 일을 맡아보고 있다는 김 씨는 "경쟁자가 많습니다. 이력서도 봐야 하고 대략적인 신상을 파악하는 서류심사도 있어요. 조직에 잘 융합할 수 있는 분들이 들어오셔야 하니까요. 그리고 좀 더 기동력 있는 활동을 위해 만 60세를 정년으로 정해 놓았습니다"라고 소개했다.

새벽이든 밤이든 주중이든 주말이든 여성의용소방대원들의 활동은 끊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축제장에 가면 또 어김없이 만날 수 있는 이들이기도 하다. 힘들고 궂은 일을 맞닥뜨릴 때가 잦지만 김미애 씨를 포함해 동료 대원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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