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을 찾아서] (59) 사천 정봉벌꿀 문재천 대표

양봉인들이 꼭 강조하는 말이 있다. 바로 꿀벌의 중요성이다. 자신이 하는 일보다 벌이 하는 일에 먼저 가치 부여를 한다.

사천 정봉벌꿀 문재천(47) 대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벌은 자연 생태계와 인간에게 엄청나게 많은 영향을 줍니다. 벌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인간이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꿀벌은 식물의 큐피드 역할을 합니다. 양봉은 단순히 꿀만 생산하는 일이 아니라 농촌·농업을 지키고 미래 환경을 지키는 중요한 일입니다."

◇고향 향수로 시작한 양봉 = 통영에서 공무원 생활을 6년가량 하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그만두고 서울 등지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생활했다.

정봉벌꿀 문재천 대표와 박숙경 씨 부부.

서울에서 단청 공부를 하다가 아내를 만났다.

부인 박숙경(45) 씨는 도시 생활만 한 터라 시골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그래서 문 대표가 결혼하며 "고향으로 가자"고 할 때만 해도 단순히 '재미있겠다'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1999년 부부는 사천으로 왔다.

문 대표가 벌을 키우게 된 것은 어린 시절 향수의 영향이 컸다.

"내가 어릴 때 집에서 어머니가 토종벌을 조금 키웠습니다. 그 후 꽃 필 때마다 꿀맛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습니다. 마치 고향 향수처럼 말이죠. 사천에 와서 환경을 보니 벌을 키우기 좋겠다 싶더군요."

본격적으로 양봉 공부를 시작했다. 주위 선배 양봉인들을 찾아다니고 서울대 박사가 진행하는 겨울 양봉대학에도 참석했다.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습니다. 성의를 가지고 열심히 배우려고 하면 잘 가르쳐주더군요. 그냥 무작정 가서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일손도 돕고 하면서 성의를 보이고 배움을 청했습니다. 2000년 들어서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이론적 바탕을 인터넷을 통해 쌓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처음 벌통을 이동할 때는 어디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꽃이 다 떨어지기 직전에야 이동해서 꿀을 얼마 모으지 못했죠. 그 지역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 갔다가 지역 주민과 마찰을 빚기도 했습니다."

문 대표는 벌통 이동을 많이 하지는 않는다. 아카시아 꽃이 필 무렵 거창이나 음성 등으로 1~2회가량 이동해 꿀을 모은다. 좋은 품질의 꿀을 만들기 위해서 벌통 속에서 충분히 숙성시킨다.

벌통에서 꿀을 채집하는 채밀은 날씨가 좋은 해는 5회가량 한다. 아카시아 꿀 3번가량, 야생화 1~2번, 밤꿀 1번을 채밀한다.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특허 = 벌을 키우며 제일 힘든 것은 바로 '진드기'라고 부르는 꿀벌 응애였다.

여러 가지 자료를 조사하다가 유럽에서는 유기산을 이용해 방제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문 대표가 관심을 가진 것은 유기산 중 옥살산이었다. 옥살산은 시금치나 괭이나물 등 식물에서 추출한 성분이다.

"2007년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농업인 개발 과제를 신청했습니다. 농업인 개발과제는 농민들이 현장에서 느낀 애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으로, 꿀벌 응애 방지 기구 개발 지원비로 3000만 원을 받아 훈증기를 개발했습니다. 옥살산 훈증기는 특허등록까지 했습니다. 지금까지 전국 600여 농가에 제가 개발한 옥살산 훈증기를 보급했습니다."

문 대표는 자연 그대로의 달콤함을 소비자들에게 꿀을 통해 전하는 것과 더불어 얼마나 안전하게 생산하느냐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문 대표에 따르면 꿀은 온도가 15도 아래로 내려가면 화분 등 벌꿀 내 물질이 촉매제가 되어 포도당 성분이 결정화한다. 아카시아·감·밤 등 교목류 벌꿀은 결정이 안 되지만 유채꽃·산딸기 등 야생화 꿀은 결정이 잘 일어난다고 한다.

"꿀이 결정화하는 현상을 오히려 이용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국에는 이미 크림 벌꿀이 있습니다. 그래서 꿀을 부드럽게 결정화해서 크림화를 시도했습니다."

문 대표는 마치 버터나 잼처럼 빵에 발라먹을 수 있는 크림 벌꿀을 만들었는데, 아직 본격적인 유통은 하지 않고 있다.

밀랍 크레용.

밀랍 크레용도 아이들 안전을 위해 지난해 농업인 개발과제를 통해 개발, 현재 특허 출원을 한 상태이다.

이 외에도 정봉벌꿀에서는 밀랍 초와 두 가지 방식 벌꿀 비누, 프로폴리스, 프로폴리스 치약, 봉독, 화분, 로열젤리 등의 가공품을 만들고 있다.

◇체험 학습으로 생태 중요성 알리기 = 문 대표는 "양봉은 꿀 생산을 넘어 식물계와 동물계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를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체험과 교육을 통해 양봉업의 가치와 꿀벌의 가치를 알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교육 농장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학생들이나 도시민을 초청해 천연 밀랍 초 체험이나 천연 비누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사천에는 '다자연'이라는 평지에서 녹차 재배하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마련된 체험시설에서 교육을 진행합니다."

참가자들 반응은 좋지만, 그만큼 애로도 있다. 대부분 학교의 체험활동은 3~6월에 몰린다. 그런데 이때는 양봉인들이 제일 바쁠 시기이다.

"주생산 시기와 겹치다 보니 체험객을 받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치있는 일이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양봉도 기계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꿀이 가득 찬 벌통은 하나 50㎏ 이상이라고 했다. 이런 벌통을 옮기고 2~3단으로 쌓는 것은 부부 두 사람이 하기에 힘에 부친다. 양봉이 규격화·규모화되고 기계화가 되면 국내 양봉산업이 활발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문 대표는 기대했다.

체험 교실에서 비누 만들기를 가르치는 것은 부인 박숙경 씨다.

박숙경 씨는 귀촌 초기 벌이 무서워 가까이 가지 않았다고 한다. 멀찌감치 떨어져 서 있었는데도 벌에 쏘여 많이 붓기도 했다. 박숙경 씨는 양봉 대신 단청 일을 하며 외조를 했다.

하지만 몇 년 시간이 지나며 남편이 혼자 고생하는 것을 보며 돕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농촌 생활이 다 힘들었습니다. 막상 남편을 따라 농촌에 왔는데 일도 힘들고 친구도 없고. 또 벌통은 밤에 이동해야 하는데 많이 힘들었죠. 한여름에도 완전 무장을 해야 하니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이제는 요령이 생겨서 새벽에나 저녁때 일을 합니다."

박숙경 씨는 비누 만드는 것도 전문적으로 배웠다. 서울 인사동에서 하루 8시간씩 한 달 속성으로 비누 만들기 전문가 과정을 밟았다. 그렇게 공을 들여 만든 비누였으나 초창기 반응은 시원찮았다.

"초기에 체험해보라며 주위에 비누를 선물했지만, 써보지도 않고 방치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후에 유통 등을 위해 포장지를 개발한 후부터 사용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겉모습이 따라줘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포장 등 마케팅 기술의 중요성을 깨달았지만, 물론 이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소비자들이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본질을 꿰뚫어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의 순수한 꿀맛으로 진짜꿀과 사양꿀 논란도 없어질 것이라고 문 대표는 아쉬워했다.

천연 프로폴리스비누.

◇꿀벌 박물관이 꿈 = 정봉벌꿀에서는 200~400통 규모로 벌을 키우고 있다. 올해 생산량은 3000㎏가량이다. 비누는 1만 개, 밀랍 초는 1000개가량 만든다.

문 대표는 향후 벌꿀 채취 과정을 소비자에게 오픈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도 기계화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수작업으로 밀랍 초나 비누를 만들고 있지만, 행정 지원 등을 통해 기계화할 수 있는 방법도 찾고 있다.

또 꿀 100% 사탕이나 꿀 파우더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아내가 미술을 전공했습니다. 이를 접목해 벌에 대한 것을 테마로 밀랍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식물과 서로 도움을 주고, 서로 결실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벌의 삶이 우리 사회에도 펼쳐졌으면 좋겠습니다."

훈증기와 벌꿀, 가공품 문의 010-8410-5077.

<추천이유>

◇노치원 경상남도농업기술원 농촌지도사 = 정봉벌꿀 문재천 대표는 오랜 경험과 영농과정에서 축적된 노하우를 활용해 '농업인기술개발사업'에 도전, 양봉 부산물을 이용한 천연밀랍 크레용·크레파스를 개발하는데 성공하고 2012년 농촌진흥청 최종 평가에서 우수과제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또한 훈증 방식의 신기술인 진드기 구제방법 개발과 신기술 홍보 등 실용화 촉진을 통해 친환경 브랜드 벌꿀 생산 기반 조성으로 양봉산업에 크게 기여한 강소농입니다. 특히 생산·가공·유통에 역점을 두고 꿀벌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체험 시설을 갖추어 농업의 6차산업으로 성장해 가는 진정한 꿀벌지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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