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기] 딸 김민지가 쓰는 아빠 김한도 이야기

어린 시절 아빠 김한도(51·자영업) 씨는 딸인 나 김민지(24·사회복지사)에게 그저 엄하기만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어느덧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점점 아빠와 대화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이제야 조금씩 가깝게 느껴지는 우리 아빠. 24년 동안 가족으로 함께 살아왔지만 문득 '아빠로서 김한도'가 아닌 '남자로서 김한도'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다.

-아빠의 어릴 적 꿈은 뭐였어요?

"꿈? 글쎄 그런 건 딱히 생각해본 적 없었던 것 같은데?"

-에이~ 할머니 증언에 따르면 대학교 합격까지 했는데 안 갔다고 하던데, 꿈이 있어서 대학 가려고 했던 거 아니에요?

   

"합격을 하긴 했지만 마음이 바뀌어서 등록금을 일부러 안 넣었지. 원래 법대를 가려고 했었어. 그런데 그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내가 생각한 법과는 달랐어. 정의를 지키고 공정해야 할 법 관련 종사자들이 정직하지 못한 행동들에 대한 논란이 많았어. 그래서 아빠는 마음이 확 바뀌어서 두 번 돌아볼 것 없이 그 일은 하고 싶지 않았지. 사회생활을 하고 싶어졌어. 그래서 바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지. 그래, 그때 너희 할머니 두 달간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누우셨었지."

-할머니께서 맘고생이 심하셨겠네요. 아빠한테 그런 시절이 있었다니, 그런데 할머니께서 그렇게 반대하셨을 텐데 일을 시작하셨네요? 할아버지께서는 반응이 어땠어요?

"당연히 할아버지도 탐탁지 않아 하셨지. 할아버지가 가구 장사를 하셨기에 생계가 어려운 것도 아니었고, 큰 부족함 없이 키워서 공부하게끔 했는데 일을 하겠다고 하니, 속상하실 수밖에. 그래도 할아버지께서는 자식들이 하고자 하는 일에 항상 지원해주신 분이셨어. 그래서 할아버지가 하시던 가구 일을 배우게 되었지."

-아~ 아빠가 늘 저희 삼 남매가 하고자 하는 일을 지원해주시는 게 할아버지께 물려받으신 거였군요. 내 기억 속에 할아버지가 가구 일 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할아버지도 가구 일을 했었는지 몰랐어요.

"기억에 없겠지만, 너희 할아버지 때부터 우리 집은 마산 부림동에서 가구 일을 했단다. 할아버지·할머니가 같이 가구 일을 하시면서 지금 할머니 집도 장만하고 삼촌이랑 고모 모두 다 키우셨지."

-근데 자영업을 하다 보면 힘든 일이 많지 않아요? 어릴 적이라 기억은 나질 않지만 IMF 같은 위기엔 경기가 좋지 않아서 힘들었을 것 같은데 어땠어요?

"IMF? 말 그대로 우리나라가 금융위기를 맞은 거지. 대출한 사람들은 가계가 휘청했겠지만 아빠는 그 당시 대출한 게 없었기 때문에 큰 지장은 없었지. 그리고 아빠는 물건의 가격을 낮추고 좋은 물건을 많이 팔아서 경기는 좋지 않았지만 오히려 일은 잘 풀렸었지."

-그럼 지금 하시는 가구 일 말고 다른 일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다시 돌아간다면 대학 진학을 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아니.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내가 할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일은 생각해본 적이 없어. 과거보다 현재·미래가 더 중요하지. 그래서 아빠는 과거로 돌아가면 어떨까, 뭐 그런 생각은 잘 안 해. 돌아갈 수 없는 시간보다 앞으로의 일이 더 중요하단다."

-그렇군요. 아빠 그럼 그 당시 사업하시느라 바쁘셨을 텐데 엄마는 어떻게 만나셨어요?

"바빴지, 많이 바빴어. 너희 엄마는 할머니 권유에 선을 봐서 만난 거야. 아빠가 처음 본 선이었어. 그냥 딱 봤는데 착해 보이더라고. 이후에 두 번인가? 더 보고 결혼했지.".

가족여행 중에 찍은 사진. 왼쪽부터 여동생, 아빠, 나, 그리고 엄마.

-맙소사. 세 번 보고 결혼을 하다니 전 상상도 못 하겠어요.

"빠른 거 같지? 허허 근데 그때는 다 그랬어."

-결혼도 자식도 빨리빨리 하셨는데, 그렇게 바쁘게 사시면서 아빠는 어떤 때가 가장 즐겁고 재미있었어요?

"즐겁고 재밌는 순간? 그야 아빠는 사업하고 있으니까 당연히 일이 잘돼서 돈이 손에 들어올 때 가장 즐겁지. 그런 재미로 일하는 거지."

-에이, 가장 즐거웠을 때가 언제냐고 내가 물으면, 네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란다. 이런 멘트를 날려주셔야지. 그게 뭐예요?

"그런 게 어딨어. 살다 보니 네가 태어나고 동생들이 태어난 거지. 네가 태어났을 땐 아빠가 너무 바빠서 신경 쓸 여유가 없었어. 너희 셋 키우고 가족들이 먹고살려면 정말 열심히 일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아빠는 일 말고는 다른 취미생활 하시는 걸 못 봤어요. 심지어, 우리 어릴 때도 아빠는 일하느라 우리랑 잘 놀아주지도 않았잖아요. 어릴 때 친구네 가족들은 가족여행도 가는데 우리 집은 아빠가 바쁘셔서 놀러 간 적이 별로 없으니 어린 마음에 그게 많이 섭섭했어요.

"그랬었지. 근데 인생에는 다 때가 있는 거란다. 너희한테는 미안하지만 그때 아빠는 한창 열심히 일해야 할 때였어. 매월 월급 들어오는 직장이 아니다 보니 그렇게 일하지 않으면 자식들이랑 가족들은 어떻게 생활하니? 어쩔 수 없었어."

-지금은 다 이해해요, 아빠.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으세요?

"앞으로…. 아빠는 늘 지금처럼 눈 감는 날까지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생각이야. 그게 내가 할 일이야."

-아빠, 일도 좋지만 이제는 몸도 생각하시면서 일하셨으면 좋겠어요. 여태 아빠 몸 많이 상하셨는데 제대로 돌보지도 않았잖아요. 이제 자식 걱정 내려놓으시고 건강 챙겨가면서 일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래그래, 너도 잘해~ 말 나온 김에 아빠 안마 한번 해봐~."

아빠의 삶을 돌아보면서 진짜 사나이다운 강인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빠의 삶을 다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리지만 딸에게 말없이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부정'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누구보다 부지런히, 열심히 살아온 우리 아빠, 앞으로는 건강도 챙기면서 다 같이 여행도 많이 다니면서 우리 더욱 행복한 가족이 되기로 해요~ 사랑해요~♥"

/김민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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