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계급, 비정규직] (18) 캐나다 Unifor 담당자 토론회

가끔씩 미소가 지어졌다. 2000년 초 한국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노동계에서 갓 논의될 때라고나 할까. 그들은 다소 서툴렀다. 하지만 무척 진지했다.

운이 좋았다. 캐나다 방문 나흘째인 지난 9월 17일(캐나다 시각) 유니포(Unifor 전신 CAW+CEP) 미조직 담당자 회의에 참석할 기회를 얻었다. 유니포 관계자들의 배려였다. 이날 회의는 8월 말 새 노조 유니포(Unifor) 창립 뒤 처음 열리는 미조직 담당자 회의(round table)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민주노총 각 산별노조 비정규직·미조직 담당자 연석회의였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회의가 이어졌다. 회의 중간 캐나다 취재에 동행한 한국노동운동연구소 이종래 부소장의 '한국 비정규직 현황과 과제' 발표도 있었다.

유니포 3층 소회의실에서는 통신, 소매업, 항공, 자동차, 건강, 에너지, 은퇴자 등 다양한 분야 활동가 13명과 유니포 법률담당 변호사 니키 런드퀴스트(Niki Lundquist), 유니포 새 위원장 제리 디아스(Jerry Dias) 비서인 데 트베이(Deb Tveit)와 셰인 와크(Shane Wark) 등 상임 집행간부 3명 등 20여 명이 모였다.

지난 9월 27일 오전 10시 캐나다 유니포(전 CAW+CEP) 3층 소회의실에서 미조직 담당자 회의가 열리고 있다.

노조 회의에 시민사회단체인 워커스액션센터(Workers Action Center) 활동가(디나 라드, Deena Ladd)가 참석한 점은 눈길을 끌었다. 이 단체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 토론토 금융가 점거운동(Occupy Movement)을 주도했었다.

30대 초반 활동가 안젤로 디카로(Angelo DiCaro) 씨는 캐나다에서 불안정 고용이 어떻게 확산했는지 통계로 보여줬다. 그는 "2011년 1월 캐나다 하퍼 총리(보수당)는 '우리는 잃어버린 일자리를 완전히 회복했다'고 선언했고, 재무장관은 '나쁜 일자리는 없다'고 했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라고 물었다.

안젤로에 따르면 금융위기로 2008년 9월 이후 42만 7000개의 일자리가 없어졌다. 2011년 1월 기존 일자리를 회복했고, 2013년 8월까지 새로운 일자리 53만여 개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기간 캐나다 경제활동인구는 약 77만 6000명이 늘었다. 2008년 8월 실업률은 6.2%, 고용률은 63.7%였는데, 2013년 8월 현재 실업률은 7.1%, 고용률은 61.9%로 고용 상황이 오히려 악화했다. 청년실업률은 12%에서 14.1%로, 파트타임 비율은 18.5%에서 19%로 늘었다.

그는 "실업률은 확대됐고, 청년세대 실업은 심각하다. 여기에 나쁜 일자리인 파트타임은 갈수록 는다. 좋은 일자리를 제공했던 제조업에서 지난 10년간 60만 개의 일자리가 없어졌다. 정부는 이런 사실을 숨기고 있다"며 캐나다 정부를 비판했다.

워커스액션센터 디나 라드 씨는 "대학생들이 부모세대가 누리던 연금을 자신이 원치 않는다고 얘기들 하는데, 이건 잘못됐다. 이들 세대에게 6개월에서 1년 계약은 행운이다. 부모세대는 은퇴 뒤 '맥도널드에 가서라도 일하지'라고 한다. 그런데, 청년 세대에게 맥도널드는 주요 일자리다"고 지적했다.

은퇴자 조직 활동가 로렐 리치 씨는 "현재 정부는 산업안전 책임 등을 파견업체에만 지우는데, 이건 문제다. 누가 진짜 사용자인가. 원청업체이다. 이런 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캐나다는 한국과 달리 제조업체도 파견노동자를 쓸 수 있고, 원청업체에 대한 산업안전 책임이 극히 작다. 노동법에서 한국보다 뒤처진 부분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뒤처짐을 노조 힘으로 상쇄하고 있었다.

오후 1시 30분 이종래 한국노동운동연구소 부소장 발표가 이어졌다. 한국 비정규직 상황을 들은 참석자들은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한 활동가는 "2005년 WTO 각료회의가 열린 홍콩 시위 때 민주노총 관계자를 봤는데, 정말 전투적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어떻게 이렇게…"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날 회의에서는 명확한 결론이 없었다. 첫 회의였던지 현재 상황을 공유하는 수준이었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심각성은 솔직히 아직 한국 노조보다 못 느끼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그들 태도만큼은 칭찬할 만했다.

   

이날 워커스액션센터 활동가 디나 씨의 말은 미국을 그토록 닮고 싶어하는 한국 주류세력과 기득권층을 향한 비판으로 들렸다. 미국은 최근 몇년간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가 급증하고 있다.

"불안정 고용에 처한 우리 회원 대부분이 노조 운동에서 배제됐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고용보험과 퇴직금을 받는데 계속 장벽을 만든다.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은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다. 10년 뒤 (캐나다는) 미국처럼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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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포, 기존 조직과 다른 커뮤니티지부 만들어 불안정 고용에 대응

캐나다에서도 우리나라 청년유니온과 비슷한 노조가 곧 뜬다. 청년유니온은 올해 상반기 정식 노조 설립인가를 받았다.

하지만 청년유니온이 실질적인 단체협약 교섭을 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특정 세대 특화형 노조인 청년유니온은 아직은 사용자를 향한 압력단체, 혹은 노동단체 성격이 강하다.

CAW와 CEP가 합쳐진 조합원 30만 명의 새 노조 유니포(Unifor)는 창립과 동시에 새로운 조직 건설을 선언했다. 바로 '커뮤니티 지부(Community chaper)'이다.

이 조직은 청년유니온과 닮았다. 단체협약 권한은 없지만 노조를 통해 자신이 노동자임을 확인하고, 자신의 기본적인 법적 권리를 사업장에서 어떻게 보호받을 것인지 등을 끊임없이 교육받고 회원 간 커뮤니티를 유지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커뮤니티지부는 기존 노조 조직 핵심 단위인 지부(로컬, Local)의 보호·후원을 받는다는 점에서 청년유니온과는 확연히 다르다.

유니포는 이 조직을 만든 이유를 '미래를 위한 비전'에서 급증하는 불안정 고용 노동자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청년노동자, 이주 노동자의 권리를 노조 차원에서 보호하고 동시에 조직 확대를 꾀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새 노조 미래가 바로 이 부분의 성패와 직결된다고까지 언급했다.

새로운 커뮤니티지부는 기존 지부(Local)와 '단체협약' 인증에서 차이가 난다. 기존 지부는 단체협약을 체결한 노조(지회, unit)와 그 조합원으로 구성되나 커뮤니티지부 조합원은 그렇지 않다.

유니포 전신인 CAW 시절 2000년대 초까지도 '지부(Local)'는 두 가지였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와 같은 기업지부(Local)와 통합지부(Amalgamated Local)로 분리했다. 가령 'Local 222'는 지엠 오셔와 공장 노조를 뜻했다. 하지만 Local 222는 현재 지엠 노동자만이 아니라 수많은 자동차 부품업체, 건강·의료 분야까지 조합원 구성이 다양하다. 캐나다 제조업 쇠락과 서비스업 성장이 노조원 구성과 지부 형태도 바꿨다. 이제는 모든 지부(Local)가 통합지부 의미로만 쓰인다.

그렇더라도 기존 지부(Local)는 각 사용자와 법적 보호를 받는 단체협약(Collective bargaining)을 체결한 지회(Unit)와 그 조합원들로 구성된다. 하지만 새로운 커뮤니티지부는 이런 단체협약을 체결하기 어려운 사업장 노동자, 가령 파견노동자, 특수고용직 노동자, 시간제·계약직·임시직 노동자, 아르바이트 대학생, 영세사업주에게 고용된 노동자 등을 주된 가입 대상으로 한다. 한국으로 치면 비정규직 노동자와 영세사업장 노동자, 특수고용직이 그 대상인 셈이다. 커뮤니티지부와 인접한 지부(Local)는 지역지부 대표는 인접 지부 구성원(대의원 혹은 집행위원)이 되는 형태로 인적으로도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할 계획이다.


만약 커뮤니티지부 조합원 중 한 명이 자신의 사업장 노동자 50% 이상을 모아 주 노동위원회(캐나다에서 노동관계법과 노동위원회는 연방정부가 아닌 주정부가 관할하며, 연방정부는 전체의 10%만 관리)에 제출하려는 계획을 세웠다면 기존 지부 구성원은 이런 이들을 보호·후원한다. 캐나다는 조합원 카드제도로 노조 인준을 하는데, 사업장 전체 노동자 50%(이 비율은 주마다 달라 50∼65%)를 초과한 조합원 카드를 받아 노동위에 제출해야 노조로 인정되며 단체교섭 권리가 생긴다. 그 과정에서 사용자 방해 행위는 상당하다고 한다.

이 탓에 불안정 고용 노동자들에게 '단체협약' 교섭 권한이 있는 노조 설립은 상당히 어렵다. 이 때문에 이 계층 노동자들이 기존 노조원을 특권층으로 보기도 한다. 유니포는 새로운 조직 구성으로 이들을 노조로 묶으려고 한다. 새 커뮤니티지부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조선산업 밀집지역 '비정규직 지역지회'와 그 접근 방식에서 상당히 닮았다.

유니포는 앞으로 5년간 노조 전체 예산의 10%를 쓸 '신규 조직 사업 예산' 상당액을 이 지역지부 설립에 쓸 것이다.

금속노조 등 국내 일부 산별노조도 이른바 '전략조직화'라는 형태로 이와 유사한 사업을 부분적으로 하지만 캐나다 유니포는 그 범위를 처음부터 전국으로 확대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이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티지부 성패는 '불안정 노동'에 대응하는 유니포의 미래를 결정할지도 모른다.

취재 자문: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

/한국노동운동연구소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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