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는 건 음악과 종교입니다. 특히 음악이야말로 인간 본성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죠.”



마산시 합성동 722-5번지에 자리잡고 있는 이종욱 신경정신과 원장 이종욱(62)씨. 그는 신경정신과 의사다. 의사지만 음악에 관한 한 전문가 못지 않은 박식함을 자랑한다.



한때 그는 합창단 지휘를 맡았었고, 작곡도 했다. 지금도 음악회가 있는 곳이면 마다않고 찾는다. 틈틈이 작곡활동도 하고 있다. 시를 쓰는 것도 일상적이고 한때 사진을 찍기도 했었다. 하지만 잠시 그 모든 것을 중단해야만 했다.



10여년을 이어오던 음악회가 중단된 건 3년 전인 97년이었다. 병원 환자로 7년여를 알아오며 형제나 다름없이 지냈던 사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병원을 담보로 은행으로부터 거액의 대출을 받았고 결국 그 회사가 부도나면서 병원이 경매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삶이나 다름없었던 병원을 경매처분으로 넘길 수는 없었다. 병원건물을 되찾기 위해 은행대출은 물론이고 자식들의 아파트까지 팔았다. 그렇게 어렵게 병원을 다시 찾았지만 아직도 법정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던 중 지난달 17일 마산시 합성동 이종욱 신경정신과 2층에 자리잡고 있는 문화공간인 조인트 홀에서는 ‘사은 음악회’란 이름으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테너 박인수 교수가 출연한 이날 공연은 60여평의 작은 공간에 하나가득 관객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꼭 3년만의 음악회였다.



지난 85년 이종욱 원장이 지하1층· 지상4층인 병원건물 ‘보람의 집’을 세우고 그 속의 작은 문화공간인 조인트 홀에서 음악회를 개최해 온 것이 97년까지 횟수로 250여회에 이른다.



“작은 홀을 가지고 그 속에서 음악회는 물론이고 집단치료와 오락을 통한 치료, 음악치료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소망이 조인트 홀을 탄생시킨 거죠. 잠시 쉬고 있긴 하지만 10여년을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음악회는 다시 열리게 될 겁니다.”



이 원장은 일제치하를 떠나 독립운동을 하던 할아버지 덕에 만주에서 태어났다. 해방과 전쟁을 겪으면서 함경북도와 부산·서울 등 이곳저곳 녀보지 않은 곳이 없다.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완강한 만류로 56년 가톨릭의대를 지원해 합격하게 된다. 하지만 가톨릭의대를 다닌 지 2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학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8년동안의 방황. 그 방황기에 만났던 사람이 작곡가 나운영 선생이었다. 나운영 선생의 집에서 가정교사를 했던 게 인연이 돼 본격적으로 지휘도 배웠고 작곡은 물론 합창에 대한 식견을 키울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 음악시간이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담임선생님도 저의 음악적인 재능을 높이 평가해 주셨죠. 저도 그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음대에 진학하리라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제 뜻대로 되는 건 아니죠.”



하지만 그에겐 의사가 천직이었던 모양이다. 68년 고려대 의대에 다시 편입학했고, 졸업과 함께 군의관으로 9년을 근무했다.



소령으로 예편한 그는 80년 11월 지금의 삼성병원 전신인 고려병원 정신과 초대 과장으로 마산과 질긴 인연을 맺게 된다.



그리고는 85년 7월 지금의 보람의 집을 세웠다. 정신과 의사가 되면 음악치료를 통해 환자들을 치료해 보겠다는 꿈을, 건물을 지을 때 2층에 조인트 홀을 만들어 실천했다. 환자들을 위해서 혹은 그 가족을 위해서 한해에 30여차례 그렇게 음악회를 열어 왔던 것이다.



음악회를 하면서 주위로부터 오해도 받았다. 때론 아무 이득도 없는 일을 한다며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의 자신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작은 꿈이 있다. 예전처럼 병원이 정상화 돼서 마음놓고 음악회를 가져보는 그 꿈. 당장 내년부터는 그 꿈이 다시 현실로 이어질 거라며 빙그레 웃는 그의 얼굴에는 한껏 희망을 안고 사는 아이의 해맑은 미소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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