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 은행나무

노랗게 물든 가로수

가을이 오면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가장 많이 떠오르는 노랫말이 은행나무다. 그만큼 우리 둘레에서 은행나무를 흔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은행나무 가로수 사이를 드라이브하면 노란 은행잎이 가을로 인해 즐거워 춤춘다.

애절한 사랑꾼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암수딴그루다. 가지가 수직으로 뻗어나가는 놈은 수그루이고, 반대로 가지를 수평으로 최대한 넓게 퍼뜨리는 녀석은 암그루이다.

수컷 은행나무는 꽃가루를 최대한 멀리 퍼뜨리기 위한 생존전략으로 하늘로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려 하고, 암컷 은행나무는 수컷의 꽃가루를 최대한 받아들이기 좋도록 가지를 평평하게 퍼뜨린다. 암컷 은행나무의 경우 지난해 저쪽 방향에 수컷 은행나무가 있었다고 기억하면 다음해 어김없이 그 방향으로 더 많은 가지들을 키워 나간다.

이 나무는 암수가 서로 마주 보아야 열매를 맺는 독특한 생리를 가지고 있어 사랑하면서도 함께 결합하여 살지 못하는 불행한 남녀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로수로 심어진 은행나무들 중 암컷들이 주로 수난의 대상이 된다. 지나치게 도로 쪽으로 뻗어나간 가지들은 봄이 되면 절단 당한다.

암컷 은행나무는 임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수컷을 향해 애절한 사랑 표시를 해대지만 사람의 눈에 거슬리는 가지는 어쩔 수 없이 잘리고 마는 아픔을 맛볼 수밖에 없다.

왜 은행나무일까?

은행나무는 1000년 전쯤 중국에서 승려들의 손을 타고 들어왔고, 지금은 도시의 가로수로, 학교를 상징하는 나무로 곳곳에 자리 잡았다. 잎을 노랗게 물들여 가을을 알리는 은행나무. 그가 은행이라 불리는 이유를 알아보자.

은행은 열매가 살구 비슷하게 생겼다 하여 살구 '杏'자와 속껍데기가 '희다'하여 은빛의 '銀'자를 합하여 '銀杏'이라는 이름이 생겼는데 큰맘 먹고 으깨진 겉껍질을 벗겨내면 지독한 구린내와 함께 딱딱한 속껍데기가 드러난다. 이 종자를 백자라고 한다. 공손수·행자목이라 하며 잎의 모양이 오리발을 닮았다하여 압각수(鴨脚樹)라 부르기도 한다.

암컷 나무에 달린 은행나무 열매.

은행나무 정자(精子)

은행나무 꽃가루는 다른 꽃과 조금 다르다. 동물의 정자처럼 머리와 꼬리가 있다. 꽃가루에 꼬리가 있다는 것은 스스로 이동할 수 있다는 뜻. 그래서 은행나무 꽃가루를 특별히 '정충'이라고 부른다. 꼬리 달린 정충 스스로 그리운 밑씨를 찾아갈 수 있다니,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식물 치고는 대단한 능력이 아닌가?

/김인성 창원교육지원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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