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계급, 비정규직] (16) 돌봄노동자

"저는 할 말도 없고, 거기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조용히 일만 하고 싶습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 말까지 90일간 농성을 했던 60대 후반의 진해동의요양병원 간병노동자가 지난 22일 인터뷰를 거절하며 한 말이었다. 돌아보고 싶지 않다는 말이 참 묵직했다.

진해동의요양병원 간병노동자 33명은 지난해 11월 말 단체협약 협상 과정에서 계약 만료일에 곧바로 집단 계약 해지됐다. 그해 12월 1일 병원을 상대로 복직 투쟁에 들어갔고, 올 1월부터는 병원 앞 노숙천막농성을 하며 한겨울을 보냈다. 지난 2월 말 병원 측과 12명이 복직하는 것에 합의하며 사태가 일단락됐다. 60∼70대 여성들의 90일간 한겨울 힘겹던 투쟁에 비하면 무척 아쉬운 결과였다.

노조 간부를 맡았던 이 여성은 복직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창원의 한 요양병원에서 간병 일을 하고 있다. 복직된 이들 중 2명은 건강악화와 개인사정으로 그만둬 기존 간병노동자 33명 중 10명만 이 병원에서 일한다. 병원 측이 얼마 뒤 몇 명에게 선별적으로 복직하라고 했지만 90일간 싸움을 겪은 해고 간병노동자들은 이 병원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가 지난 1월 말 진해 동의요양병원 해고 간병인 복직을 위한 '희망버스' 집회를 했다. /경남도민일보 DB

진해동의요양병원 간병노동자 복직 투쟁에 함께 했던 김모(61) 씨는 이 여성의 인터뷰 거절을 두고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김 씨는 동의요양병원 사태가 터졌을 때부터 지금껏 보건의료노조 창원시지부 사무장을 맡고 있다.

진해동의요양병원 간병인들은 모두 2011년 말까지 경남고용복지센터 소속으로 일했다. 경남고용복지센터는 사회적 기업형태로 이들 33명을 동의요양병원에서 일하도록 했고, 2011년 말 사회적 기업 지원 시기가 끝나자 이들 간병인은 한 파견업체 소속으로 전환됐다. 고용 불안정을 느낀 이들은 지난해 초 보건의료노조에 가입했다.

이곳 간병인들은 2일 야간, 3일 주간 12시간 맞교대로 주 5일 일하며 월 130여만 원을 받았다. 파견업체에서 4대 보험도 절반 부담했다. 하지만 병원은 직접 고용하는 간병인 20명에게는 8시간 3교대제로 주 40시간 근무에 월 126만 원을 제시했다. 나머지 간병인 13명에게는 사설 간병협회 소속으로 하루 24시간 근무, 하루 휴식 형태로 일하며 월 140만 원을 제시했다. 노조는 병원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이곳 간병인은 개원 이후 6년 가까이 함께 한 이들을 누구는 직영, 누구는 노동조건이 훨씬 열악한 사설 간병협회 소속으로 돌릴 수 없다며 반발했다. 이에 병원은 11월 30일 계약 만료와 함께 다음날부터 대체 인력(간병인)을 썼다.

지난 2월 28일 사태가 일단락되고서 김 씨는 몇 개월을 쉬었다. 쉬는 동안 개인적으로 해오던 목욕봉사를 하고, 경남고용복지센터가 주기적으로 다니는 한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지냈다. 2개월 전부터는 마산의료원 '보호자 없는 병동'에서 이른바 '대기' 조로 일한다. 보통 주 5일 주간 8시간을 일하며, 고정적으로 순환하는 간병노동자가 일이 생길 때에는 밤이나 주말에도 한 번씩 대신 일해준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월 80만 원가량을 번다. 요양병원 3교대 근무 때 120만∼130여만 원을 받은 것과 비교하면 월 40만∼50만 원이 줄었다.

김 씨는 "다 함께 살자고 싸웠지만 결국 이렇게 됐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고 싶지 않다. 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40대 초반부터 남편과 세 아들, 늦둥이 딸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 역할을 했다. 포장마차, 식당 종업원 등 하루 두세 개 일을 했다. 1988년 남편이 심장병과 당뇨가 악화해 일손을 놓고 1년 가까이 간호했다. 남편은 이듬해인 89년 숨졌다.

그는 장기간 남편 병간호를 바탕삼아 1990년 개인 간병을 시작으로 지금껏 간병 업무를 하고 있다. 24년 차 베테랑 간병노동자이다.

그는 "그래도 아들 세 명 다 장가보냈고, 딸과 살고 있는데 딸도 제 밥벌이는 한다. 나는 다른 분들보다는 낫다. 내 생활비만 조금 벌면 되니까…"라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후배 간병인을 위해 세상이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잊지 않았다.

   

"사실 간병 일이 정말 고되다. 아들·딸도 하지 않으려는 대변 치우고, 기저귀 갈고 목욕시키는 등 모든 어려운 일은 간병인들이 한다. 24시간 전일 근무하는 간병인은 더 힘들다. 그런데 이런 일 한다고 은근히 무시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사람들 시선이 좀 바뀌었으면 한다. 그리고 일이 힘든 것과 비교하면 보수가 너무 적다. 우리 후배들은 좀 바뀐 세상에서 일했으면 한다."

지난 2012년 1월 초 보건복지부는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병원,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간병노동자를 5만 5663명(전국)으로 추정했다. 여기에 전국 대비 경남지역 병원 병상 수를 단순 대입해도 도내 간병노동자는 40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추정치에는 개인 간병인이 포함되지 않아 보건의료노조 등은 실제 간병노동자 수가 이보다 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절반가량이 사실상 인력파견업체인 사설 간병협회에 소속돼 일정 금액의 수수료를 떼인다. 여기에 간병노동자 대부분이 '환자-간병인' 개인 계약을 맺는 자영업자로 분류돼 4대 보험 등은 전혀 적용받지 못한다. 대규모의 노동 인권 사각지대가 존재하지만 정부 대응은 더디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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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 노조법 대상 미적용…만성화된 고용불안에 시름

특수고용노동자는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서 다른 사업자(갑의 위치)와 근로 계약이 아닌 업무 계약 혹은 노무공급 계약을 맺는 이들을 말한다.

사업주에 종속돼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근로기준법과 노조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국가 통계에서 이들은 '근로자 없는 자영업자'로 분류된다. 지난해 말 기준 도내 전체 취업자(158만 8000명) 중 '근로자 없는 자영업자'는 21%(33만 3000여 명)를 차지해 전국 평균 16.9%보다 훨씬 높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특수고용노동자로 추정된다.

이들에 대한 정부 추계는 조사기관마다 들쑥날쑥해 이것조차 문제로 지적된다. 국가 단위의 정확한 추정치조차 없는 셈이다. 정부는 이들을 특수고용노동자가 아닌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부른다.

통계청이 지난 24일 발표한 '2013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비임금 근로 부가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특수고용(특수형태근로) 노동자 규모는 2012년 8월 기준 54만 5000명에서 2013년 8월 54만 5000명으로 제자리걸음이다.

이를 두고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최소한 10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이들이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50만 명대로 집계된 점은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파악에서 체계적 배제가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올 1월 2일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특수고용직노동자는 노동계에서는 39개 직종 약 250만 명으로, 고용노동부에서는 2010년 말 기준 약 115만 명으로 각각 추산하고 있다. 통계청 조사와 규모에서 차이가 확연하다.

올 1월 2일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들은 노동비용, 조직, 재무 등의 유연성으로 사업주들이 선호하는 근로형태지만, 종사자들은 고용 불안과 최소한의 근로기준 미충족 등의 처우로 불만을 표출하는 게 현실이다"고 지적했다.

이들 특수고용노동자가 일하는 업종은 무척 다양하다. (표 참조) 이들 중 화물기사와 덤프트럭·레미콘·굴착기 등 노조가 결성된 운수·건설 노동자, 재능교육 등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등이 그간 사회적 주목을 받았다. 작년 말과 올해 초 90일간 파업을 한 진해동의요양병원 간병인(요양보호사), 부당한 벌금과 불공정 거래에 맞서 운송거부 투쟁을 한 CJ대한통운 등 택배기사, 현재 경남을 중심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는 대리운전기사 등도 최근 새롭게 주목받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이다.

국민권익위는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해 불평등한 구두·간접·단기계약으로 상시 고용 불안정을 겪고 △근무시간, 휴일·휴가 기준이 없고 △불합리한 계약 내용과 사업주 지위 남용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권리 구제를 받을 체계가 미흡하고 △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 가입 혜택이 전혀 없으며, 산재보상보험도 직종에 따라 가입 기준이 달라 실효성에 의문이 간다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를 내세워 국민권익위는 내년 12월까지 고용노동부에 가칭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권익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것을 권고했다. 지난 2007년 10월 국가인권위원회도 이들에 대한 인권 보호, 노동 3권 보장, 4대 보험 적용을 국회의장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권고했지만 정부는 잇따른 권고에 명확한 답을 내놓고 있지 않다.

노동계는 이를 수용하라고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반면, 경영계는 "무리한 보호입법이 일으킬 일자리 감소 효과를 간과한 결정이며, 근로자의 중요한 판별 지표인 인적 종속 관계, 사용 종속 관계를 기준으로 보면 이들은 독립 영업자로 봐야 해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을 통한 방안 마련을 해야 한다"며 이 법률 제정을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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