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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그 집에 가고 싶다

[경남 맛집]창원시 진해구 창선동 '그 집, 팥이야기'

박정연 기자 pjy@idomin.com 2013년 10월 23일 수요일

'맛' 집 그리고 '멋' 집.

도심 속에 이 집처럼 조용히 커피 한 잔 마시며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멋들어진 곳이 또 있을까 싶다. 임성한(50)·진명숙(50) 부부가 운영하는 '그 집, 팥이야기'(이하 팥이야기)는 근대사를 간직한 고즈넉함이 묻어나는 곳이다. 옛 일본식 목조 건물을 허물지 않고 기와지붕과 대들보를 그대로 활용했다.

창원시 진해구 창선동에 있는 팥이야기는 소박하지만 사계절 내내 먹기 편한 메뉴 선정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찾는 동네 놀이터가 되었다. 손님 대부분이 이웃이거나 주인장 친구, 지인들이다. 점점 이방인도 늘고 있는데, 인터넷에서 봤거나 진해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왔다 알게 된 이들이 계속해서 찾는 경우가 많다.

봄에는 벚꽃길 따라 걷던 연인들이 찾아들고 여름에는 아이 손잡고 더위를 식히려 팥빙수 한 그릇 먹으러 오는 손님으로 넘쳐난다. 가을이면 퇴근길에 들러 커피 한 잔 마시며 음악으로 자신을 위로하는 중년들의 치유 공간으로 거듭나고, 겨울에는 엄마가 해주던 단팥죽이 그리운 딸에서 엄마가 된 이들이 즐겨 찾는 공간이다. 건축에 관심이 높은 이들이 가던 발걸음을 붙잡고 들어왔다 차 한잔 마시고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팥이야기는 오전 11시에 문을 연다. 주인장 임성한 씨는 4시간 전부터 나와 미리 음식 준비를 한다. 오전 7시에 가게 앞마당부터 쓸고 '오늘은 강산에를 들어야지' 마음 먹은 대로 오디오 소리를 높이고 주방으로 향한다. 이제부터 단팥죽을 만드는 작업은 오롯이 임성한 씨 몫으로 2시간 내내 팥 삶기에 들어간다.

   
  도심 속에서 조용히 커피 한 잔 마시고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그 집, 팥이야기' 외관./김구연 기자  

팥은 불리는 작업 없이 깨끗이 씻어 바로 압력밥솥에 삶는다. 그리고 뜸을 들인 후 갈아서 찹쌀과 함께 다시 솥에 넣고 약한 불에서 계속 저어줘야 한다. 불 조절과 시간 조절은 단팥죽의 질감을 완성하는 데 결정적인지라 지키고 서 있지 않으면 끓어 넘치거나 눌어붙기가 쉽다.

단팥죽의 주재료인 팥과 찹쌀은 창원시 성산구 가음정시장에 있는 잡곡상에서 구입한다. 팥은 1주일마다 1포대 40㎏을 가져오는데 여름에는 팥빙수 판매량이 많아 2포대가 필요하다. 찹쌀은 3~4일마다 동네 방앗간에 가서 빻은 것을 일부는 팥죽에 섞어 쓰고 나머지는 찹쌀떡을 만들어 단팥죽 위에 띄운다. 찹쌀은 국산이지만 팥은 중국산을 쓴다.

임성한 씨는 "국산 팥을 써볼 생각도 해봤지만 솔직히 가격 차가 중국산과 두세 배 정도가 나 부담스러웠다. 국산 팥을 쓰면 단팥죽 한 그릇을 6000~7000원 정도에 내놓아야 하는데 찾을 손님도 부담이지 않을까 고심했다. 국산도 직접 사서 삶아 봤지만 중요한 건 맛과 질감이다. 중국산과 별 차이가 없어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농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팥 가격은 국내산이 1㎏에 1만 575원, 중국산이 4120원으로 2.5배 차이가 난다. 지난 1993년 체결한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국내 팥 재배규모는 1995년 1만 8225㏊에서 2011년 3650㏊로 6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고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 가격이 크게 올랐다.

팥이야기 단팥죽은 3000원.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진 날씨에 제격이다. 전분을 넣지 않는 것이 이 집의 특징인데 뻑뻑하지도 너무 묽지도 않은 단팥죽은 달지 않아 먹기에 편했다. 빻아 넣은 찹쌀과 고명처럼 올려진 찹쌀떡 세 덩어리 덕에 간단한 식사용으로 먹기에도 충분했다.

팥이야기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올드카페'라는 커피집이었다. 지난 6월부터 팥빙수를 메뉴에 추가하고 9월부터 단팥죽을 곁들이면서 가게 이름도 바꿨다. 가족회의를 통해 내린 결정이었다. '그 집, 팥이야기'라는 상호는 창원시 의창구 팔룡동 주민센터 뒤에서도 볼 수 있고, 성산구 가음정시장 안에도 또 하나가 있다. 임성한 씨 3남매 모두 단팥죽 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와 함께 집이 아닌 둘이 지낼 공간을 보러 다니다 이 목조 건물을 보자마자 한눈에 반해버렸다는 주인장 임성한 씨. '그 집, 팥이야기'는 사계절 내내 먹기 편한 메뉴 선정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찾는 동네 놀이터로 인기를 끌고 있다. /김구연 기자  

커피는 공정무역 원두만 쓴다. 서울에 소재한 사회적기업인 '아름다운커피'에서 매주 수요일 로스팅해 가져온다. 커피콩 생산자와 직거래하는 공정무역 커피는 페루산, 네팔산, 우간다와 에티오피아산을 블렌딩한 3가지 종류를 쓴다. 에스프레소는 기계로 뽑아 만드는데 황금색 번쩍이는 큰 커피 기계 대신 자그마한 기계 2대가 있다.

임성한 씨는 "1000만 원도 넘는 기계를 들일지 솔직히 잠시 고민했다. 최상급 커피는 전문 바리스타가 있는 곳을 손님들이 알아서 찾아갈 것이라 여겼다. 독일산으로 100만 원 남짓한 커피 기계 2대가 내가 끌어안을 만한 크기와 가격이었다. 대신 커피 원두는 유통비 거품을 빼고 최대한 신선하게 공정무역 커피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팥이야기에서 아내와 온종일 지낼 수 있다고 했다. 가게를 구경하는 손님 중에 인테리어 비용이며 매출을 묻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내 진명숙 씨는 "남편과 저는 가게만 차려놓고 남의 손에 맡기거나 돈벌이 수단으로 가게를 하지 않길 당부한다"며 "가게에서 종일 놀 수 있는 충분한 마음이 생기면 가게를 열어보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창원의 한 건축사무소에서 일했던 임성한 씨는 지난 2010년 일을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집이 아닌 둘이 지낼 공간을 보러 다니다 이 목조 건물을 보자마자 한눈에 반해버렸다. 태어나 어른이 되기 전까지 살던 진해로 다시 이사하기에 충분했다. 의자며 테이블, 전등부터 나무그릇까지 모든 걸 아내와 함께 사러 다니거나 직접 만들었다.

손님 하나 없어도 조바심 내지 않고 책을 읽거나 가게 앞을 산책할 수 있는 여유를 즐기는 부부가 내놓는 단팥죽과 커피처럼 배려가 담긴 음식을 맛보길 원하는 이들에게 권해보고 싶다. 매주 수요일 휴무.

   

<메뉴 및 위치>

◇메뉴: △단팥죽 3000원 △팥빙수 3000원 △뜨신커피 3000원 △우유커피 3500원 △거품커피 3500원 △얼음커피 3500원.

◇위치: 창원시 진해구 창선동 9-3번지. 055-546-7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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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기자

    • 박정연 기자
  • 삶이 예술이다. 문화체육부 기자 박정연입니다. 공연(연극·음악·무용 등)분야, 맛집, 서평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귀기울입니다. 연락처 010-5119-6213, 메일 pjy@ido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