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히 선선한 계절, 가을은 봄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이번 달에만 벌써 세 번째 청첩장을 받았다. 다사다난했던 연애의 종지부를 찍고 부부의 연으로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연인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한꺼번에 초대장을 보내온 것이다.

역시 결혼하기 좋은 계절인가 보다. 그러고 보니 나도 가을에 결혼식을 했다. 잠시 추억을 더듬다 손에 든 청첩장에 적힌 날짜를 달력에 옮겨 적었다. 그렇지 않아도 빼곡한 스케줄에 주말마저 경조사로 꽉 들어찬 걸 보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며칠 전 동료의 시부가 돌아가셔서 문상을 꽤 멀리까지 다녀 온 터라 쉬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한편으로는 예기치 않은 지출이 한꺼번에 몰리는 것에 대한 염려도 일었다.

꽤 긴 시간의 투병 끝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를 우리 가족은 시골집에서 전통 방식대로 치렀다. 당시는 내비게이션이 없었던 때라 찾아오기 꽤나 힘든 길이었다. 그럼에도 많은 지인이 찾아왔고 그때의 고마움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이후로 축하 자리는 빠져도 슬픔을 나누는 자리에는 빠지지 말아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어지간하면 장례식장에는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식장은 좀 다르다. 30~40분 만에 식이 끝나는 식장에서 신랑 신부에게 축복의 인사를 건네는 것은 가족들이 아니면 뻔뻔스러운 일이다. 정말 친한 친구나 가족이 아니라면 조용히 부조금 봉투만 건네고 식사나 하고 오는 게 오히려 도와주는 것이다. 요즘은 한꺼번에 많은 하객이 몰리는 분주한 뷔페에서 정해진 시간 내에 밥을 먹고 오는 것이 피곤하기도 해서 꼭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는 부조금 봉투만 맡기는 것으로 예의를 대신하게 되었다.

이런 나에게 뜻하지 않은 청첩장은 가끔 불청객이 되기도 한다. 친분이나 사회적 관계에 따라 부조금을 고민하는 것이 나의 정서로는 도통 맞지가 않기 때문이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상부상조를 미덕으로 여기며 이웃의 경조사를 자신의 일처럼 여겨왔다. 이웃이 잔치를 하면 일손이나 양식을 보태는 것으로 어려운 살림살이에 경조사를 치르는 이들의 고된 마음을 나누어 부담한 것이다.

이런 품앗이 부조문화가 지금은 뿌리를 가늠할 수 없는 이상한 문화로 변질되어가는 듯하다.

요즘 경조사는 내용이나 형식 면에서 초대가 아닌 집금(集金)의 의미까지 느껴질 정도이니 말이다.

   

가족 같은 이들에게 진심으로 축하와 위로를 받으며 의미 있는 시간을 갖는 행사라면 초대하는 것이 예의고 초대받는 것 또한 영광일 것이다. 그러나 거창한 형식을 위해 수백 장씩 찍어내는 초대장을 받아들고 이를 반가워할 이가 얼마나 될까? 몇 해 전 작고하신 고 박완서의 '가난한 문인들에게 조의금을 받지 말라'는 말씀이 오늘 따라 가슴에 맴돈다.

/이정주(김해분성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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