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계급 비정규직] (14) 홈플러스 영등포점

주인공: 김연희(42)

소속: 홈플러스 영등포점

경력: 2008년 이후

◇'이미지'가 좋은 대기업?

김 씨가 일을 시작한 계기는 남편과의 사소한 내기였다. 남편은 결혼 후 전업주부 생활로 체중이 늘어난 그녀에게 다이어트를 하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사실 사무직에 종사하는 남편은 '왕년'에 고깃집과 카페 등 사업을 운영했던 김 씨가 안타까웠고, 슬쩍 사회생활을 권유했다.

2008년 37살 때 그녀는 홈플러스 영등포점 협력업체 직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트레이닝복을 판매하는 임대매장에서 시급 4000원을 받으며 하루 4시간 일했다. 손님이 없는 오전 대부분은 물건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4개월쯤 지났을까. 그녀는 물건을 정리하다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김 씨는 임대매장 점주에게 4대 보험 가입을 요구했다. 하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김 씨는 "4개월 만에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이유는 4대 보험 때문이었다. 점주는 보험가입을 일부러 하지 않았다.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근로계약서 작성비중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 절반 수준이다. 통계청이 매년 8월에 발표하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를 살펴보면 지난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근로계약서 작성률은 53.7%로 나타났다. 그나마 2003년 25.7%에서 2007년 45.1%, 2011년 52%로 증가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내 유통서비스부문은 전체 평균보다 낮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07년 발표한 '유통업 여성비정규직 차별 및 노동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소매업 노동자들의 근로계약서 작성 비율은 32.2%, 유통서비스부문 전체 평균은 40.4%로 나타나 전체 비정규직 평균 45.1%보다 낮았다.

   

◇해고 후 직고용 비정규직

김 씨는 한 달 후 홈플러스 영등포점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파워엠'이라는 인력용역업체 직원으로 홈플러스 애견용품 매장에서 근무했다. 9개 업체의 애견 사료 등을 진열하는 일이었다.

월급 95만 원, 한 달에 8번 휴무, 4대 보험 적용을 받았지만 1년 후 월급은 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해고를 당했다. 김 씨는 폭우가 쏟아지던 2010년 여름날로 기억했다.

김 씨는 "어느 날 관두라고 하더라. 9개 업체 중 한 곳이 나를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파워엠에서는 정확한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홈플러스와 그녀의 인연은 질겼다. 한 달 후 '티더블유(TW)'라고 불리는 홈플러스 영등포점 직고용 아르바이트생으로 입사했다. 평소 매장에서 일하던 김 씨를 눈여겨본 홈플러스 영등포점 인사과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한 것이다. 하루 6.5시간, 주 6일제로 근무했다. 월급은 100만 원 안팎이었다. 이는 단계가 높아진 '피티(PT)'가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7.5시간 일했다. 하지만 월급은 100만 원도 채 되지 않았다.

김 씨는 "홈플러스에 계속 다니는 이유는 별게 아니다. 집과 가깝고 짧은 시간 일한다. 사실 직장에 입사하기는 부담스럽다"고 했다.

생활코너에서 2년 가까이 일을 하다 2012년 7월 근무지를 '이커머스'로 옮겼다. 홈플러스 인터넷 쇼핑몰에서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대신 장보는 일이다.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일을 했다. 김 씨는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주문하면 매장에 나가 직접 장을 본다. 바구니를 끌고 층마다 돌아다닌다. 20㎏짜리 쌀 포대며 생수까지 싣다 보면 허리를 제대로 펼 수 없다. 하루에 100번 이상 장을 본다"고 말했다.

김 씨는 장을 보기 전, 장을 본 후 버튼을 누른다. 상품 개수에 따라 장보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홈플러스는 이를 측정하고 있다. 만약 시간이 초과하면 사무실엔 '빨간불'이 들어온다.

온종일 녹초가 됐지만 퇴근시각은 정확하지 않았다. 오후 4시 30분이 지나도 홈플러스 정규직의 퇴근 명령이 없으면 집에 갈 수 없다. 하지만 연장근무는 인정되지 않았다. 이에 대한 수당 요구는 곧 해고였다.

   

◇'착한 기업'은 헛구호

김 씨는 노동조합을 간절히 바랐다.

그녀는 "홈플러스 비정규직 직원들은 7.5시간, 6.5시간 등 30분 단위로 근무 계약을 한다. 법적으로 따지면 30분도 연장근무 시간으로 인정해야 하지만 관리자는 연장근무로 치지 않는다고 통보한다"며 "같은 부서 직원이 상사에게 연장수당 근무수칙을 항의하다 해고를 당했다. 나는 동료를 복직시키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그래서 김 씨는 홈플러스 노동조합 이커머스 분회장을 맡았다.

지난 3월 설립한 홈플러스 노동조합(위원장 김기완)도 이 문제를 짚는다. 노조가 첫 사업으로 '연장근로수당 지급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도 수당 없는 연장근로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유통업계의 연장근무는 매년 문제시된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8월 발표한 '2013년 상반기 근로시간 감독' 결과에 따르면 314개의 사업장 중 272곳이 근로기준법이 정한 연장근로 한도를 넘어 일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객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며 일을 하는 감정노동자, 'VIP'라고 불리는 점장보다 높은 상사가 방문하면 매출에 상관없이 CEO맞이 검열모드로 바꿔야 하는 시스템, 매출을 올리기 위한 직원 강매 등 홈플러스의 불합리한 노동환경을 지적하는 김 씨는 "대기업의 겉모습에 속지 말라"고 했다.

그녀는 '시간제 일자리' 창출을 말한 박근혜 정부에 대해 "불행만 커질 뿐이다"고 말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 따르면 올 3월 말 기준 정규직 월 평균 임금은 약 283만 원이지만 상용 파트타임은 정규직의 49.8% 수준인 월 141만 원, 임시 파트타임은 정규직의 20.5% 수준인 월 58만 원에 머물고 있다.

관련기사

관련기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