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경남예술극단 정기공연 연습현장…웃으면 죽는 병 걸린 임금 다룬 팩션 사극

여기 웃으면 죽는 병에 걸린 왕이 있다. 대비와 간신배들은 왕을 어떻게든 웃기려 애를 쓰고 왕은 어의와 함께 웃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파카파카'를 외친다.

'파카파카'는 왕과 어의 사이에 일종의 수신호와 같다. 왕의 맥박 수가 빨라질 때마다 웃고 싶을 때마다 내는 소리다. 이 와중에 중전은 후궁의 회임 소식에 왕의 마음을 돌려보려 왕을 즐겁게 해주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다. 갖가지 일을 겪으며 "죽고 사는 일이란 참으로 우스운 일"이라고 말하는 왕은 결국 스스로 웃는다.

경남예술극단의 창작 연극 <죽어도, 웃는다>는 조선시대 인종과 계모 문정왕후의 갈등을 배경으로 한 팩션 사극이다. 연극에는 시기와 갈등, 슬픔만 있지 않다. 웃음과 해학 그리고 연민도 담았다.

"참으로 슬프구나. 아니 앞으로도 슬프구나. 어느 자가 나에게 웃음을 주는 자가 있다면 그자의 마음은 곧 나를 시해하려는 자일 테고, 설령 아니더라도 나는 그자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니. 참으로 슬프구나."

◇연습, 또 연습 = 경남예술극단 공연이 딱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지난 16일 오후 3시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에 있는 극단 객석과 무대 연습실을 찾았다.

<죽어도, 웃는다> 연출가 문종근은 배우들에게 "감정을 받고 호흡을 받아라"고 주문했다.

<죽어도, 웃는다> 출연 배우 9명이 저마다 흩어져 연습실 구석이나 거울 앞에서 대본을 소리 내 읽고 있다. 각자 소속이 다른 배우들은 지난 1일부터 오후 1시만 되면 경남예술극단 단원이 되어 이곳을 찾는다.

1시간 정도 몸 풀기 시간을 갖고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자기화 시간'을 통해 각자 대본 연습을 한다. 저녁을 먹고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 연출가와 함께 모여 앉아 대사를 주고받으며 감정을 살려나간다.

호랑이 선생으로 알려진 문종근 연출가는 "감정을 받고 호흡을 받아라"를 계속 주문했다. "네"라는 한 마디에도 감정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웃음에도 쓴 웃음, 옅은 웃음 등 그 미묘함 속에서 극은 완성미를 더해간다.

<죽어도, 웃는다>는 2001년 설립된 경남예술극단의 14번째 정기공연 작품이다. 이해제 작가, 문종근 연출, 천영훈 예술감독을 비롯해 작곡가 구채민이 함께한다. 배우는 김수현, 이상현, 김위영, 정주연, 최동석, 최호정, 구도현, 안현빈, 정으뜸이 출연한다.

경남예술극단 정기공연은 경남예총 주최·경남연극협회 주관으로 도내 연극인들이 한데 모여 매년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다. 매해 연출가가 다르고, 이듬해에 무대에 올릴 작품은 전년도 12월부터 선정해 창작극의 경우 작가를 따로 찾아 초연 대본을 만드는 작업을 거친다.

올해 연출을 맡은문종근 '극단 객석과 무대' 대표는 "인간을 이중구조로 본다. 무엇 때문에 가고 있는지 그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인간"이라며 "한 인간의 '진정한 용기'를 보여내는 데 주력했다"고 <죽어도, 웃는다> 연출 의도를 밝혔다.

◇합동공연 부담 크지만 = 배우들도 자신만의 언어로 작품을 해석하고 몰입하고 있다.

인종 역할을 맡은 진주 극단 현장 소속 최동석은 "웃으면 죽는 병은 의학적으로 존재하는 병이다. 권력, 세력 다툼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자 원래는 굉장히 유쾌한 인물이 웃지 못할 병에 걸려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는 심정을 이해하려 집중한다"며 "각자 소속이 다른 극단에 있는 배우들이 합동공연을 하는 자리에 주인공을 맡아 중압감이 크지만 도전해보고 싶었던 작품이라 스스로 기대도 크다"고 말했다.

문정왕후 역에 나선 함안 극단 아시랑 김수현은 "갈등의 축이 되는 인물이다. 아들(명종)을 왕위에 올리려면 어떻게든 인종을 죽여야 한다. 물불 가리지 않는 그녀에게 일말의 양심이란 감정도 없다"며 "악역을 처음 맡았지만 그래서 더 애착이 간다. 관객들 만날 순간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후배들과 호흡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19일 경남예술극단 단원들이 <죽어도, 웃는다> 동작 연습을 하고 있다.

19일 오후 7시 다시 찾은 연습실에서는 땀으로 범벅된 배우들이 옆 구르기를 하고 있었다. 이날은 러시아 슈우킨 연극대학교 실기 석사를 졸업한 최용호 상명대학교 겸임 교수와 함께 무대 동작을 기초부터 다졌다.

나흘 전 만났을 때보다 표정은 다들 생기가 넘쳤다. 저승사자 역을 맡은 극단 이루마 소속 배우 정으뜸. 어린아이처럼 웃던 그녀는 연습에 들어가자 호탕하고 익살스러운 저승사자로 돌변한다. <죽어도, 웃는다>에서 저승사자는 극을 지루하지 않게 끌고나가는 감초이다.

공연은 11월 16일 오후 3시·7시 창원 3·15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열린다. 배우들도 관객들도 손꼽아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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