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계급, 비정규직] (13)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둘러싼 쟁점들

"중앙정부(보건복지부)는 2년 이상 일한 우리를 기간제 법을 적용해 무기계약직 전환하라고 했는데, 진주시는 이걸 해고로 돌려줬습니다. 기초 자치단체가 중앙정부 지침조차 어기는데, 비정규직 대책은 무슨 비정규직 대책입니까?" (진주시 방문간호사 해고자)

"정부가 2년간 유예 기간을 줬다. 지금 뽑히는 이들은 2년 뒤 무기계약직 전환을 기대할 수 있어 이전보다 더 양질의 인력을 뽑아야 한다. 그러니 다른 이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지 않나. 그게 오히려 평등한 것이다." (진주시보건소 관계자)

"진주시 방문간호사 문제는 총액인건비제와 관련이 있다. 중앙정부는 정규직과 무기계약직, 기간제(계약직)를 포함해 인건비 총액을 관리한다. 개별 사업에서는 총액인건비에 늘어나는 예산을 반영하겠다고 하고는, 다른 한편으로는 총액인건비 초과분이 발생 때 교부세 삭감 등 페널티를 부여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초자치단체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기 부담스럽지 않겠나?" (경남도 보건행정과 관계자)

지난해 12월 말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라 무기계약직 전환을 꿈꾸던 진주시 방문간호사 13명이 계약 해지된 사태를 두고 방문간호사 해고자, 시 보건소 관계자, 경남도 담당과 관계자가 각각 한 말이었다. 이들 얘기에는 현재 공공부문 비정규직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비정규직(기간제,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무기계약직 전환 기대는 해고로 돌려주고, 지방자치단체 정규직 간부는 정부 지침을 임의대로 해석해 더 나은 인력을 뽑겠다며 기존 인력을 계약 해지한다. 여기에 광역자치단체 관계자는 안전행정부의 총액인건비 제도를 탓하며 자치단체의 무기계약직 전환이 상당히 부담스럽다고 지적한다.

지난 9월 5일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을 내놓으며 2015년까지 앞으로 3년간 6만 5711명을 무기계약직(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이상규 의원(통합진보당)은 국정감사에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대책"이라고 맹비난했다. 이런 맹비난 이유는 뭘까?

공공운수노조 학교비정규직본부경남지부는 지난 7월 경남도교육청 앞에서 영어회화 전문강사 해고를 철회하고 무기계약으로 전환하라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경남도민일보DB

◇공공부문 비정규직이란 = 공공부문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식약처, 중소기업청 등 각 부·처·청 등 중앙행정기관 47곳, 지방자치단체 246곳, 기타 공공기관 430곳, 교육청과 교육지원청, 국립대 등 교육기관 77곳 등 810곳을 이른다. 한국전력 등 부처 소속 공기업, 창원시 시설관리공단 등 지방자치단체 소속기관까지 포함하면 1만여 곳에 이른다.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을 '공공부문 종사자'라고 하며 기간제·시간제, 간접고용 인력을 공공부문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고용노동부가 집계한 '2012년 말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는 36만 255명으로 전체 공공부문 종사자(175만 1444명)의 20.5%에 이른다. 그 비율은 2011년 20.1%에서 오히려 늘었다. 이 통계에는 위탁 업체 종사자 등 간접고용 인력이 대부분 빠져 있다.

도내 19개 자치단체(경남도, 18개 시·군) 지방공무원은 올 6월 말 현재 2만 1949명, 지난해 12월 말 기준 무기계약직은 3316명, 기간제는 4696명이다.

여기에는 청소나 분뇨처리 등 자치단체에서 꼭 필요한 업무이지만 위탁 혹은 외주를 준 업체 종사자는 없다. 민주노총 경남본부 일반노조에 따르면 이들 19개 자치단체 위탁·외주 등 간접고용 인원은 규모조차 추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일반노조 강동화 남부지부장은 "현재 창원시는 쓰레기 처리 업무 절반을 위탁줬다. 위탁 업체 인원만 300명이다. 이것 말고도 위탁 혹은 외주 업무는 훨씬 많다. 경남도 등은 이 규모 파악부터 해야 한다. 최소로 추정해도 자치단체 무기계약직과 기간제 노동자를 합한 인원 8000여 명보다 많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른바 학교 비정규직이라는 도교육청 소속과 각 학교에 소속된 비정규직은 7926명, 도내 6개 국립대와 도립대가 채용한 비정규직은 211명이다. 합하면 8137명으로 자치단체 소속 비정규직보다 오히려 많다. 물론 교육기관은 자치단체와 달리 위탁 혹은 외주 업체 종사자 등 간접 고용직은 상대적으로 적다. 하지만 방과후 수업 등 학교회계직과 비슷한 인원인 각종 강사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박근혜 정부, 공공부문 대책 밝혔으나 = 공공운수노조연맹 현광훈 전 미조직·비정규직실장(현 공공기관 실장)은 "IMF구제금융 이후 들어선 김대중 정부 때 공공부문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있었다. 당시 정규직에 대한 인력감축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노무현 정부 때는 그 규모를 유지하다가 이명박 정부 때 다시 공공부문 인력 감축이 이뤄졌다. 공공부문 역할은 확대되는데 정규직 인력은 줄이니 그 빈자리를 메운 인력이 비정규직들이었다. 이게 공공부문 비정규직 양산의 첫 번째 이유다"고 말했다.

이어 현 실장은 "두 번째는 사회복지 예산 확대다. 사회적 요구에 따른 사회복지 예산은 늘어나는데, 이 인력이 고스란히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교육 현장도 마찬가지다. 학교 급식 담당자, 보조교사나 방과 후 강사 등 인력이 모두 이런 예이다"고 분석했다.

더불어 정부는 정부조직관리지침과 인력운용계획을 통해 조직개편과 정원조정을 할 수 있는 체계를 정비해 안전행정부가 중앙행정기관과 자치단체의 조직, 정원을 관리하도록 했다. 문제는 중앙정부가 정원과 기구개편을 통한 인원감축을 주요 평가 지표로 활용하고, 지방교부세 인센티브와 경영성과평가에 따른 인센티브 지급에 반영한다는 점이다. 곧바로 인력 부족, 인건비 예산 삭감, 사업 유지를 위한 비정규직 양산으로 연결된다.

   

이런 평가 방식은 고용의 질이 낮은 인력과 간접 고용직 활용을 늘리도록 정부가 공공기관에 부추기는 꼴이다. 여기에 정규직 공무원과 연동한 총액인건비 제도 유지는 운영비가 아닌 사업비에 인건비를 잡아 결국 공공업무를 하면서도 책정된 사업비 내 인건비를 쓰도록 해 진주시 방문간호사 예처럼 불안정한 고용을 정부 스스로 방조하도록 하고 있다.

강동화 일반노조 지부장은 "총액인건비는 안전행정부가 광역단위별로도 1인당 인건비 산정을 달리한다. 그런데 산출 근거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청해도 공개하지 않는다. 중앙정부가 자치단체 자율성을 억압하는 한 방편이 되고, 이게 비정규직 양산을 방조하는 형태이기도 하다. 남해군처럼 군이 기간제 방침을 엄격히 지키는 곳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정부가 과연 사기업에 비정규직을 줄이라고 말하며 감독·통제할 자격이 있을까?

◇사회복지 예산 늘지만 종사자는 비정규직으로 = 보건·의료·교육·복지 등 기초적인 사회 복지성 예산은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지만 중앙정부는 관련 사업 확대에 따른 중·장기적인 인력 대책은 세우지 않고 있다. 진주 방문간호사 사례에서 경남도 관계자 푸념을 단지 비정규직 양산에 대한 자치단체 면피성 발언만으로 여길 수 없는 이유다. 주먹구구식 사회 복지성 사업 확대가 공공부문의 질 낮은 고용 증가와 비정규직 양산에 적지 않은 몫을 하는 셈이다. 더욱이 한국의 사회복지 확대는 현재진행형이다.

공공운수노조연맹과 일반노조 등 노동계뿐만 아니라 복지 분야 전문가들도 줄곧 비판을 제기해왔다. 지난 7월 15일 국회 복지노동포럼 주최로 열린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토론회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부대책 한계와 올바른 대책 마련'을 주제로 발제한 박주영 공공부문 비정규직연대회의 정책지원단 노무사는 "9월 5일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 대책'을 제외하고 지금껏 정부는 2006년과 2008년 두 차례 대책을 내놓았다"면서 "2006년에는 단계적으로 상시·지속적 업무에 비정규직을 없애는 전략을 취하고자 했지만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대책에는 '조직개편, 업무량 감소 등 구조조정이 예정돼 인력조정이 불가피한 때 전환 예외로 인정한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공기업에도 '무기계약직 미전환 사유서'를 제출하면 전환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지침을 내리면서 정부가 오히려 공공부문 비정규직 해고를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시절 '비정규직 → 무기계약직 → 정규직화'를 해나가고 신규 채용은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지난 9월 5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에서는 결국 정규직화는 무기계약직이라고 밝혀 공약을 급격히 후퇴했다"고 비판했다.

여기에 정부는 여러 차례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창출로 고용률 70%를 달성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박원석 의원(정의당) 국감 자료에 따르면 공공부문 시간제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의 31.8%에 불과하다. 정규직의 빈자리를 무기계약직과 기간제 노동자가 채우고 여기에도 못 미치는 일자리를 시간제 비정규직이 채우는 현실에서 정부 대책에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을 자아낸다. 2012년 12월 말 현재 시간제 일자리의 92.3%가 임시일용직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해법, 관 주도는 이제 그만 = 박주영 노무사는 "지금껏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은 정부 혼자서 과제 제출, 계획 수립, 이행 평가를 했다. 외부 감독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며 "이제는 국회 차원의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입법 과제를 내고, 비정규직 당사자와 시민사회 의견 반영 등 공론화를 통한 정책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이상규 의원은 올 9월 정부가 발표한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 대책을 "전환 대상자를 의도적으로 줄인 대책을 위한 대책"이라고 맹비난했다.

더불어 박 노무사는 "법에 맞는 차별 시정 조치, 정규직화를 위한 정부의 예산 로드맵 제시, 비정규직 양산을 부추기는 지금의 공공기관 평가 기준 변경과 총액인건비 제도 폐지나 획기적인 개선이 선행되지 않으면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해법은 위탁 업무 증가나 외주 인력 확대라는 더 큰 부작용만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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