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계급 비정규직] (12) 학교 비정규직

주인공: 원지혜(가명·44)

소속: 김해 한 초등학교 조리사

조리원·조리사 경력: 2004년 이후

"웃기지 않아요? 아이들이 온종일 학교 비정규직들과 생활하는데 학교에선 우리가 보이지 않나 봐요. 아이들은 아침 등굣길부터 배움터 지킴이를 만나고 공부할 때는 과학실보조원, 스포츠 강사에게서 수업을 받죠. 점심때는 영양사와 조리사, 조리원 등 비정규직이 해주는 밥을 먹고 수업이 끝난 후에도 방과후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유령이에요."

지난 11일 오후 2시께 김해 한 초등학교. 밥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급식실은 조리원 6명의 식판 씻는 소리로 시끄럽다.

원지혜 조리사가 사무실로 안내했다. 마주 앉자 사방의 여유 공간이 사라졌다. 상자에 들어간 듯한 좁은 이곳이 영양사와 조리사가 업무를 보는 공간이다. 벽면에는 두 사람의 면허증이 걸려있다.

◇경력단절 여성의 위험한 출구 = 공무원 부부가 될 뻔했다. 거제에서 나고 자란 원 씨는 인문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9년 거제 하청면 면사무소에 취직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무기계약직 직원인 셈이다. 당시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을 여고생에게 면사무소 취직은 '엘리트' 코스였다. 행정업무를 보는 20살 여성은 주위 사람들에게 공부머리뿐만 아니라 일머리가 있고 야무지다고 평가받았다. 20년 전 면사무소에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들어온 정규직 공무원과 면접을 통해 취업한 직원들을 구분하는 인식 자체가 없었고 원 씨는 식구로서 인정받고 일했다. 일터에서 연애를 했고 4년 후 결혼했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휴가 한 달, 육아휴직 3개월을 보냈다. 그리고 원 씨는 면사무소를 관뒀다.

"친정어머니, 시어머니 모두 시골 할머니라 농사일로 바빴죠. 새벽에 일어나 해질 때까지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일하는 분들인데 아이를 맡길 수 없잖아요. 둘째까지 낳고 키우는 동안 엄마로 산 거죠. 서른다섯에 조리사를 시작했으니 10년 쉬었네요."

원 씨가 경력단절에 갇히는 동안 원 씨 남편은 진주로 창원으로 발령을 받으며 경력을 쌓아갔다. 현재 경남도청에서 근무하는 20년 차 공무원이 됐다.

"만약에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철밥통이라 부르는 공무원 생활을 계속 하고 있겠죠?"

둘째 아이가 5살이 되자 원 씨는 여느 엄마들처럼 사교육에 신경을 쏟기 시작했다. 학부모 사이에서 더 나은 유치원, 더 나은 학원은 교육비가 비쌌고 남편 월급만으로는 교육비 감당이 만만치 않았다.

원 씨는 '노는 며느리'를 벗어나려고 일을 찾았다. 마침 공무원 아파트 뒤편에 있던 중학교가 건물을 짓고 있었다.

"창원 명서중학교였어요. 매일 뚝딱뚝딱 공사 소리가 나더라고요. '건물을 올리니 사람이 필요하겠구나'라고 생각했고 바로 전화를 걸었죠. 급식소였고 영양사와 조리사, 조리원을 뽑는다는 말을 들었어요. 학교 행정실 직원이 조리원은 자격증이 없어도 일을 할 수 있고 밥만 한대요. 10년 동안 한 일이 밥이잖아요. 이거다 싶었죠."

35살이 된 원 씨는 학교 비정규직 조리원으로 사회에 나왔다. 44살이 된 원 씨는 여전히 학교 비정규직 조리사다. 세월에 흐릿해져야 할 이 출발선은 오히려 더 진해졌다.

   

◇동일 노동, 차별 임금 = 학교회계직으로 구분되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는 교원, 지방 공무원(교육공무원)과 다른 임금체계를 적용받는다. 학교현장은 전체 공공부문 중 비정규직 사용 비중이 가장 높다.

원 씨가 일하는 초등학교 교직원은 총 67명이다. 이 중 학교 회계직이라고 불리는 비정규직은 15명이다. 영어회화전문 강사(1명), 스포츠 강사(1명), 원어민 강사(1명), 전담사서(1명), 교무보조(1명), 행정실무원(1명), 영양사(1명), 조리사(1명), 보육교사(2명), 특수학급 보조(2명), 학교프로그램 운영 코디(2명), 인턴(1명) 등이다. 여기에다 조리원과 배움터 지킴이 등까지 포함하면 학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더 많다.

고용노동부는 학교 비정규직 중 기간제교사 등을 제외한 회계직만 약 15만여 명이며 공공부문 전체 비정규직의 약 43%를 차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이들의 처우는 곧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현실이다.

"명서중학교에서 일할 때는 일당을 받았어요. 하루 2만 6000원에 일한 날을 곱해 월급을 받았는데 50만 원에서 70만 원 사이로 기억해요. 작은 아이 유치원비 28만 원, 미술 학원 8만 원, 피아노 학원 8만 원 등 하면 거의 맞았죠. 그런데 방학에는 월급이 없대요. 교사들은 있는데 말이죠."

원 씨는 조리원으로 일하면서 육아에 전념했던 지난 10년이 헛된 시간이었다고 자책했다. 다시 사회에 나온 순간 능력 없는 사람으로 추락당한 듯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다. 한식, 양식, 중식, 일식 자격증을 따고 조리사 면허증에 도전했다. 현재 근무하는 초등학교의 조리사가 일을 그만두자 조리원이었던 원 씨가 지원했고 회계직 조리사가 됐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다.

"1년을 275일로 잡아 연봉을 나눠 받는데 조리원과 같아요. 지금 8년차 조리사인데 1년차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학교에서 비정규직의 처우는 곧 임금이죠. 월급이 같으니 조리원들은 자신들을 관리하는 조리사가 못마땅하고 마찰도 빚죠. 우리를 기능직 조리사와 비교하면 처우가 형편없죠."

급식소 조리사는 원 씨처럼 회계직과 공무원인 기능직으로 구분한다. 정부가 1998년부터 학교회계직 조리사를 양산했지만 기능직 공무원으로 임용된 조리사보다 임금과 보수체계, 근로조건이 불리하다. 봉급과 각종 수당을 받고 주5일제를 적용받는 대신 일수계산식 연봉제를 적용받고 토요 휴무일 등은 급여가 없다. 기능직이나 학교회계직 모두 학교급식법과 식품위생법에 따라 조리사 자격을 얻는다. 조리사 자격과 업무에 차이가 없다. 하지만 임금과 근로조건의 심한 차별은 존재한다. 그래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외친다.

'저 솥에 빠져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원 씨는 100만 원만 받으면 일을 그만둔다고 다짐했지만 120만 원을 받는 지금도 학교에 남아있다. 전 조리사가 같은 대우를 받을 때까지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같은 자격을 갖췄더라도 학교 현장은 상하구조가 명확하다. "누가 아줌마라고 불러요. 뒤를 돌아보니 내가 해준 밥을 먹는 교사에요. 우리가 학교 밖에서 만난다면 어땠을까요? 유치하지만 내가 더 큰 집에 살고 비싼 차를 몰 수 있다는 것을 알까요? 같은 직장인으로 대우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같은 학교에 일하면서 같이 휴일과 수당을 적용받자고 요구하는 게 그렇게 잘못된 일인지 모르겠어요. '회계직은 봉사를 해야지'라고 말하는 게 학교예요."

취재 자문: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한국노동운동연구소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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