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희한한 꿈을 꾸었다. 내 차를 바로 눈앞에서 도둑맞는 장면이었다.

석연치 않은 기분에 잠에서 금방 깬 나는 인터넷에서 해몽 검색을 해보았다. 소중한 것이 사라져버릴지 모르니 관리 잘하라는 내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저녁 나는 빗속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내 차가 부서지는 사고를 겪었고, 또 사고 처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아끼던 유리그릇들을 깨버리는 실수도 저질렀다. 이게 뭔가, 전날 밤 꿈은 과연 무엇이었단 말인가, 하며 잠깐 묘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그렇게 한 번씩 꿈들이 현실로 적중될 때마다 나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한다. 불과 몇 달 전에 꾼 백마 꿈으로 지금 뱃속의 생명이 아들임을 임신 전부터 예견할 수 있었다. 또 몇 년 전 신춘문예에 당선될 당시에는 내 얼굴이 곰보로 바뀌는 꿈을 발표 며칠 전에 꾸어서 당선을 예감해 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아도 되는 걸까. 삼십대 중반 즈음에 나의 운명을 점치던 어느 주역 점술가의 예언이 얼추 맞아떨어지고 있는 거라고. 그는 당시 친구 따라 강남 온 내게 나이 마흔이 넘으면 내 운명을 직접 점칠 수 있게 되리라는 이상한 말을 뱉었었다.

사실 점술의 맹신론자로 우리 어머니를 따를 만한 이 없다. 어머니는 집안 모든 대소사의 의논 상대로 점쟁이를 주치의 삼았으며, 그에 대한 믿음은 신념 그 자체였다.

심지어 내가 어떤 이성친구라도 사귀기라도 하면 그 사람 자체보다 그의 사주팔자와 우리의 궁합에 의지해 그 사람을 품평하곤 했으니 말이다.

어머니가 내 결혼을 반대하지 않은 이유도 다른 무엇보다 좋은 궁합이 한 몫 크게 했으리라 본다. 그래봐야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세상 안에서 어떤 목적을 성취하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하는 정도의 자잘한 물결 같은 예견일 뿐이었을 텐데 말이다.

영화 <관상>의 열풍이 계속되고 있다. 수양대군의 권력을 떨어뜨리려던 장안 최고의 관상쟁이 김내경과 김종서 측의 목숨을 건 방책은 결국 수양대군의 집권을 강화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니까 운명을 고치려 한 행동이 도리어 운명을 굳히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 안에서 작은 파도 같은 운명을 논하는 인간의 능력, 그 위에는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커다란 물결 같은 것이 있는 것일까.

영화의 결말, 관상쟁이 김내경은 실제로 도도한 바다의 큰 물결을 보면서 이렇게 자탄한다. 자신은 자잘한 파도 같은 운명에만 집착했지 그 위의 도도하고도 더 큰 바다의 움직임 전체를 보지는 못했다고. 사실 역사와 민중의 큰 관점에서 본다면 반역자 수양대군이나 정통 권력을 지키려 했던 김종서나 오십 보 백 보가 아닌가.

   

큰 물결을 볼 줄 아는 눈, 그것이 운명을 관장하는 진정한 힘일 텐데. 아무래도 당최 내 깜냥으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능력이므로 다만 오는 주말에는 당장 부서진 내 차나 고쳐서 마음을 다스려야겠다는 생각만 해볼 뿐이다.

/서은주(양산범어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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