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계급 비정규직] (10) 경주에서 싹트는 작은 희망들

"제조업, 그 중 자동차산업 불안정 고용 문제를 완성차 사내 하청 문제에만 집중하면 '노동시장 분단 구조'는 전혀 해결할 수 없다. 제조업은 사내 하청 문제와 함께 원청완성차, 1차, 2차, 3차, 4차 납품업체로 나뉘는 수직 계열화한 불평등한 원-하청 관계 속에 있다. 1∼2차 사내 하청 노동자, 3∼4차 정규직은 원청업체 사내 하청보다 더 불안한 고용상황에 놓여있다. 여기에 주목할 시기가 됐다."

한국노동운동연구소 이종래 부소장이 제조업 불안정 고용 문제를 두고 한 얘기였다. 원청업체 사내 하청 등 문제도 중요하지만 한국처럼 불평등한 원하청 관계에서 1∼2차 납품업체 사내 하청노동자, 3∼4차 납품업체 상용직 노동자의 열악한 고용상황도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경남 제조업, 취업자 중 26.6%·지역 내 총생산의 42% =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2012년 말 기준)에 따르면 도내 취업자 수는 158만 8000명에 고용률은 59.6%로 전국 평균 59.4%보다 약간 높다. 제조업 취업자 비율은 전체 취업자의 26.6%로 전국 평균 16.7%보다 10%포인트가량 높다. 2012년 지역 내 총생산 86조 5000억 원 중 제조업이 36조 6494억 원(42.4%)으로 도내 산업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처럼 크다. 다른 지역보다 제조업 불안정 고용 문제에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공단 전략 조직화' 내세운 금속노조 = 금속노조는 2006년 말부터 사내 하청 노동자 해결 방안으로 '1사 1조직' 원칙을 내세웠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한 노조에서 동등한 조합원으로 가입한다는 것으로, 완성차 3사 노조 중에는 기아차만 시행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이종래 부소장이 언급한 '노동시장 분단 구조' 극복 방안 중 하나로 2010년부터 '공단 전략 조직화' 사업을 하고 있다. '노동시장 분단 구조'는 원청-하청-재하청-재재하청 등 수직화한 하청구조, 원청과 하청의 전근대적인 종속 관계 탓에 재하청 혹은 재재하청 정규직 노동자는 원청업체 정규직, 심지어 사내 하청노동자보다 더 큰 고용 불안을 겪고, 임금도 상대적으로 낮은 경향을 이른다.

이 사업은 조선소 비정규직처럼 단일 혹은 인근 지역에 유사 업종이 몰린 곳에서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서울 구로, 경남 일부 지역에서만 한정적으로 시행돼 아직 그 성과를 논할 정도는 아니다.

◇노조 설립 초기 비정규직 문제에 매달린 경주지부 = 경주 남부 공단지역은 자동차 1∼2차 부품업체가 집중된 곳이다. '공단 조직화 전략'과 별도로 이곳은 "비정규직 문제는 노조 설립 초기에 해결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사례가 많아 주목할 만하다.

금속노조 경주지부는 2001년 2월 금속노조 출범과 함께 설립된다. 경주지부는 지부 설립 뒤 2004년 8개 자동차 부품 사업장(지회) 사내 하청노동자 400여 명에 대해 불법파견이라고 노동부에 진정했다. 지부 집단 교섭을 통해 사내 하청을 더는 늘리지 않겠다는 의미 있는 교섭 결과를 이끌어냈다. 이들 사업장 사내 하청노동자는 그렇게 단계적으로 정규직화했다.

단적인 예가 2008년 (주)다스 노사 합의다. 다스 노사는 해마다 10%씩 비정규직(사내 하청)을 정규직화(직영)하기로 합의했다. 물론 형식은 신규 채용이었다. (주)다스는 '실소유주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아니냐'는 의혹으로 유명세를 치른 업체이다.

금속노조 경주지부 정진홍 부지부장은 "완성차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복지 부분에서 제법 비슷한 적용을 받는다. 하지만 부품업체 비정규직은 임금과 복지 부분이 정규직의 절반이다. 신규 채용 형식이라도 그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소속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로 조직 변경을 한 다스지회는 '1사 1노조' 원칙에 따라 한 지회에 정규직(700명)과 비정규직 조합원(100명)이 함께 있다. 올해도 19명을 정규직 전환하고, 차례대로 비정규직 조합원 전체를 정규직화할 예정이다.

◇이주노동자도 같은 조합원으로 = 경주지부 소속 일부 지회는 한국 제조업 노조로서는 드문 실험을 하고 있다. 내국인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도 조합원으로 가입시켜 함께 활동하고 있다.

금속노조 MS오토텍지회는 올해 6월 19일 기업별 노조에서 금속노조로 조직변경을 했다. MS오토텍지회는 경주 본사와 자회사인 경주 명신산업, 아산명신 등 3개 회사에서 현대차와 기아차 전 차종 차체를 만드는 노동자들이 모인 노조다. 금속노조 가입과 함께 이주노동자 48명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였다. 더불어 올해 단체협약에서 이주노동자에게 적용되던 근무 연수에 따른 차등 상여금(2년 100%, 3년 200%, 4년 300%)을 일괄 300%로 지급하고, 명절 떡값, 하계휴가비 5만 원도 정규직과 마찬가지로 30만 원씩으로 상향 지급하는데 합의했다.

경주 MS오토텍 내에서 내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오른쪽)가 함께 일하고 있다. 이들은 금속노조 MS오토텍지회에 같은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다. /금속노조 MS오토텍지회

금속노조 MS오토텍지회 송길수 지회장은 "평소 '형, 동생'하고 회식도 자주 하는 문화가 있어서 이주노동자와 내국인간 거리감은 없다. 다만 이들이 조합원으로 들어오면서 반말을 못하도록 하는 등 상호 존중 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 노조인 (주)세진 노동자들은 2011년 10월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원래 노조가 없었는데, 회사의 전면 외주화 방침에 맞서 노조를 만들었다. 2012년 단체협약에서 4단계 공정별로 정규직화에 합의해 4년간 비정규직 80명을 정규직화하기로 했다. 2011년 말 공장 내 인원은 650명 정도로 정규직(현장직) 200명, 관리직군 200명, 비정규직 150명이었다. 노조 설립 뒤 제조업으로는 드물게 130명을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했다. 비정규직 150명 중 내국인과 이주노동자 비율은 4대 6으로 모든 내국인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올해 정규직 전환한 21명 중 한국인과 결혼한 이주여성 7명도 있었다.

노사는 이주노동자가 고용허가제로 있는 4년 10개월간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이들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내국인을 정규직으로 채우기로 합의했다.

금속노조 세진지회 손해용 전 사무장은 "이주노동자는 고용허가제로 묶여 있어 해결이 쉽지 않다. 현재는 이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차별을 시정하되 한국인과 결혼한 이주여성은 정규직화하는 식으로 교섭 방향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손 전 사무장은 "비정규직 문제는 노조 설립 초기에 노조가 힘이 있을 때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는 공장 자동화 등으로 고용 불안을 내세우며 조합원 보수화를 유도한다"고 제언했다.

취재 자문: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한국노동운동연구소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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