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계급 비정규직] (9) 조선산업 비정규직 내부 들여다보니

2011년 말 9대 조선소 직능별 고용규모 추이를 살펴보면 기능직 직영인력이 3만 5237명, 하청업체 인력이 7만 6670명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비율이 1대 2이다. 자동차 완성차와 비교해도 조선업종 비정규직은 그 규모도 더 크고 비정규직 형태도 복잡하다. 더 심각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자동차 완성차와 달리 산업별 노조 체계로 묶인 노조는 신아SB와 성동조선(금속노조 소속) 중소규모 사업장 단 두 곳이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대우조선해양 등 이른바 빅 3 업체 노조는 기업별 노조 형태이거나 노조가 없다. 조선업종 비정규직 노동자는 자동차와 달리 이른바 최소한의 정규직 노조 도움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거제·통영·고성도 정규직·비정규직 비율은 1대 2 = 9월 초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우리지역 노동시장의 현황〉을 살펴보면 대우조선해양 종사자는 사내 하청노동자를 포함해 4만 명이다. 대우조선노조에 따르면 해양플랜트 수주 증가로 플랜트 일거리가 많을 때는 4만 5000명에 이르기도 한다.

대우조선 내 직영사원은 사무직과 설계 직군을 포함해 1만 4000∼1만 5000명 정도. 나머지 2만 5000∼3만 명은 다양한 형태의 사내 하청노동자다. 조선소 전체 인력의 절반이 훨씬 넘는 60% 이상이 사내 하청 노동자로 이뤄져 있다.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2배 가까이 많다. 이들 중 이른바 사내 하청업체 상용직으로 정규직의 일부 복지 혜택를 받는 이들은 6000∼8000명 정도다. 하지만 이런 이들을 제외한 사내 하청업체 기간제 노동자, 직시급제, 물량팀 등 늘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이들이 절반이 넘는다.(표 참조)

   

이런 고용 구조는 대우조선해양처럼 대형 조선소만이 아닌 통영 안정공단 내 성동조선해양 같은 중급 규모 조선소도 마찬가지였다. 금속노조 성동조선해양지회에 따르면 2013년 8월 말 현재 성동조선해양 직영 직원은 1900명, 사내 하청업체 노동자는 3780명이다. 2011년 말에는 직영 2562명, 사내 하청업체 소속 5200명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1 대 2 비율이었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회사 재정 위기와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배 이상 줄었다는 것이다. 2008년 9월 파산 뒤 2010년 4월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은 성동조선해양은 당시 직영(정규직) 사원은 2420명이었고, 사내 협력업체 직원은 7100명이었다. 자율협약 시행 2년 5개월이 지난 올 8월 말 정규직은 1900명이고 사내 협력업체 직원은 3780명이었다. 이 기간 정규직 사원의 22%가 줄어 이들도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47%나 줄어 감소율이 2배가 넘었다. 성동조선의 지난 2년 5개월간 고용 추이는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고용안전판 역할을 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고용 불안은 더 겪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다.

◇복잡한 사내 하청 구조 = 전국금속노조와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11월 발간한 〈금속산업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금속노조의 과제〉 연구보고서는 대우조선해양 사내 하청노동자인 진정한(가명·42) 씨와 성동조선해양에서 '물량팀'으로 장기간 일한 이사람(가명·39) 씨가 들려줬던 조선소 내 사내 하청 노동 분화 현상을 잘 분석해놓고 있다. 조선산업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그 규모와 함께 복잡한 사내 하청 노동 구조 탓이다.

초기 단순 외주 방식의 사내하청 활용은 80년대에도 있었다. 대우조선노조 서행철 법규부장은 "1980년 중반부터 90년대까지 사내 하청 비율은 10% 선에서 늘 유지됐다"며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줬다.

/경남도민일보DB

사내 하청 노동 분화 현상은 2000년대 들어 본격화한다. 기존 1차 사내하청(하청업체 직고용 상용직)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후 업체가 채용하는 초단기계약직인 직시급제 인력, 그리고 '물량팀'으로 불리는 2∼3차 사내하청이 점차 확산하고 있다. 그 결과 사내하청 노동자는 기본적으로 1차 사내하청(본공)과 2∼3차 사내하청으로 구분된다. 이른바 '본공'도 상용직과 기간제로 나뉘며, 기간제는 다시 1년 이상 계약직과 3∼11개월 사이의 단기계약직으로 나뉜다. 단기계약직은 다시 시급제를 받는 일반 단기계약직과 직시급제라고 해서 단가가 더 센 A·B급 기능직 노동자로 다시 분류된다. 이런 직시급제 노동자는 1차 사내하청과 직접 계약하거나 물량팀에 합류해 움직인다.

본공이라는 1차 사내하청 노동자 고용 형태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같은 거제지역 대형조선소는 상용직 본공 비율이 일정하게 있어, 이들은 정규직(직영) 노조에 의해 사내 복지와 성과급 일부를 받을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 1차 사내 하청 상용직은 대학생 자녀 학자금도 받는다. 반면 통영과 고성지역에는 이런 상용직 본공은 거의 없고, 본공조차 대부분 기간제다.

2∼3차 사내하청(물량팀)도 '상시적인 물량팀'과 '돌발/아르바이트성 물량팀'으로 구분된다. 1차 사내하청은 고숙련 노동자들로 시급으로 따지지만 월급 형태로 임금을 받는다. 물량팀은 과거 파워그라인더공과 같이 선박 건조 업무 분야 중 일부 고숙련 업무를 중심으로 초단기간에 집중적으로 활용됐지만 최근에는 물량팀 방식의 사내하청 노동 활용이 확산돼 고숙련 분야를 넘어 취부·용접·사상 등 내부 공정을 제외한 선박 건조의 거의 전 직종으로 확산하고 있다.

활용 양상이 단기·일회성 하청에서 이사람 씨와 같이 상시·고정적 하청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

이들 물량팀은 비공식적인 고용관계가 대부분이어서 최소한의 노동기본권조차 종종 배제되며 4대 보험조차 가입되지 않은 이들도 많다. 연장이나 특근 수당, 휴일휴가 등에서도 차별이 있다. 나아가 원·하청업체간 서로 블랙리스트를 공유해 노조 결성 시도조차 어렵다는 게 통영과 거제지역 노조 활동가들 전언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1차 사내하청 시급직에서 물량팀으로 이동하는 이유는 노무관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움, 일이 있을 때는 같은 경력이면 1차 사내하청보다 높은 임금 등이다.

대우조선해양 등 일부 대형 조선소에서는 정규직(노조원) 직원 퇴사 인원에 맞춰 해마다 약간의 인원을 1차 사내 하청 내에서 뽑아 정규직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정규직 전환 프로그램은 사내 하청업체와 하청노동자에 대한 노무 관리로 악용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조선산업 밀집지역에 맞춤형 지역노조 설립 고민을 = 이렇듯 조선산업 비정규직은 사내 하청 내부에서 '1차 사내 하청 시급직 → 물량팀 → 1차 사내하청 직시급제 → 물량팀 → 1차 사내하청 상용직'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잦다는 특징이 있다. 이렇게 이동해야만 상대적인 고임금과 고숙련을 받고 쌓을 수 있다. 이런 고용 형태는 자연스럽게 여러 회사를 떠돌아다니도록 한다. 따라서 제정을 검토 중인 사내 하청법은 이런 자발적 이직이 많은 조선산업 하청노동자에게 적용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가운데 맞춤형 지역노조 설립을 통한 비정규직의 조직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종식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위원(금속노조 비상임연구위원)은 "조선소 사내하청노조 고용 특성에 맞춘 노조 설립이 시급하다. 기존 기업별 노조보다는 산업별 노조 형태이되 조선업종에 한정한 지역지부, 혹은 지역지회 설립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우선 '블랙리스트' 등 비정규직 인권 보호 운동과 상담실 기능을 하면서 조합원을 지역 차원에서 확산하는 게 필요하다. 일정한 조합원 수가 되면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 거제·통영·고성 등 조선소 밀집지역은 이런 노조 설립을 고려해야 한다. 금속노조 등이 이를 위한 인적, 재정적 투여를 결정할 시기이다"고 제안했다.

대공장과 중소사업장 이원 전략을 써야한다는 제안도 있다. 대우조선하청노동자조직위원회 강병재 의장은 "지금껏 이런 얘기가 종종 나왔다. 조선하청노동자연대나 금속노조 조선전략팀 회의에서도 이런 제안이 자주 나온다. 그런데 대공장과 중소사업장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대공장에는 비정규직 노조 설립을 위해 활동해온 기존 활동가들을 적극 활용해 일정한 노조원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 현장 기반 다지기가 먼저라는 말이다. 이와 달리 중소사업장은 이런 형태의 지역지회를 만들어 노조를 구성하는 이원 전략을 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취재 자문: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한국노동운동연구소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관련기사

관련기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