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이의 향기]교육자 박상화 씨 별세

"아버지는 눈 감는 날까지 가난의 굴레에 갇힌 아이들을 걱정했습니다. 한평생 나누면서 사셨어요. 싸리비를 만들고 도토리를 주워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쳤죠. 아마도 아버지를 교단에 서게 했던 은사이신 고 이서호 선생의 은혜를 평생 갚는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지난 1일 박상화 부산 주례초등학교(당시 주례국민학교) 전 교장이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산청과 부산 등에서 장학회를 만들어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포기하는 어린 학생들을 뒷바라지한 교육자가 세상과 등졌다.

부친을 떠나보낸 박해성(59) 지리산고등학교 교장은 "아버지는 치매 증상을 보였지만 학생들 이야기만 나오면 정정하셨다"고 회상했다.

고 박상화 선생은 1943년, 19살에 교단에 섰다. 산청군 신안면 하정리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학교를 다니지 못하다 이서호 선생을 만나 9살에 보통학교에 입학한다. 이후 이서호 선생의 권유와 도움으로 집안 생계를 꾸려나가면서 진주사범학교에 합격해 교사의 길을 걷는다. 당시 입학금과 생활비를 빌린 고 박상화 선생은 1년 후 바로 돈을 갚을 정도로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이었다. 그리고 이서호 선생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한평생 나눔의 교육을 실천했다.

고 박상화 교장(오른쪽)과 손녀 모습. 이 손녀도 할아버지를 따라 현재 교직에 있다. /지리산고등학교

그는 해방 1년 후 산청 지리산 골짜기에 지역민과 힘을 보태 백곡국민학교를 세웠고, 6·25전쟁 당시 지리산 빨치산 토벌 작전으로 흉흉했던 시절에도 삼장국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고 박상화 선생은 골짜기에 사는 아이들이 매일 15㎞를 걸어 통학하는 것이 안타까워 1958년 가랑잎국민학교(유평국민학교)를 분교로 세운다.

8년 후 가랑잎 교장으로 부임한 그는 국민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식모살이를 하거나 공장으로 가는 것을 막으려고 '가랑잎장학회'를 만든다. 직접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 도토리를 주워 팔았다. 싸리나무를 베어 싸리비를 직접 만들어 쓰면서 돈을 모아 아이들을 중학교에 보냈다.

박해성 교장은 "가랑잎국민학교가 분교에서 정식 학교로 독립할 때 교장으로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 그때 아버지가 가난한 학생들의 길을 열어주겠다며 자원했다"고 말했다.

고 박상화 선생의 교육관은 소문이 났고 1970년 부산으로 발령이 났다. 그는 정년퇴임 때까지 부산에 머물면서 장학활동을 이어갔다. 부산 신평초등학교 교장 당시 이석숭 지게꾼과 장학회를 만들어 학생들을 뒷바라지했다. 고 이석숭 씨는 목욕탕 청소를 하며 얹혀사는 형편이었지만 고 박상화 선생에 감동해 번 돈을 꼬박 장학기금으로 냈다고 전해진다.

박해성 교장은 "아버지의 교육철학은 '나눔'이었다. 퇴임 후에도 영도다리 밑을 찾아 어르신들에게 막걸리와 빵을 사다 날랐다"고 했다.

교사 생활을 해오던 박해성 교장도 부친의 교육철학을 본받아 학비 걱정 없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지난 2004년 대안학교인 산청 지리산고등학교를 세웠다.

"아버지는 지리산고등학교를 세우는 저를 보고 언짢아하셨습니다. 지역 도움을 받는다고요. 하는 일이 나쁘지 않지만 손은 절대로 벌리지 말라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병상 중에도 주위 분들에게 지리산고등학교를 자랑하셨대요. 지리산고등학교를 빛내는 게 아버지 뜻을 받드는 길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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