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계급 비정규직] (7) 거제 대우조선해양

그: 진정한(가명·42) 소속: 거제 대우조선해양 사내 협력업체 노동자 주소지: 경북 경산시 경력: 15년 차 조선소 용접공

거제 땅을 밟은 지도 어언 15년이나 됐다. 옥포만을 바라보던 그는 긴 한숨을 내쉰다.

"1999년 이곳에 와서 벌써 이렇게 됐네. 잠시 돈 벌고 그만둘까 생각했는데…."

그래도 그는 거제·통영·고성 등 도내 조선소 밀집지역에서 직영업체(정규직) 노동자를 제외하고는 최고 대우를 받는 'A급' 용접공이다. 그런데도 가슴 한편에 불만이 적지 않게 쌓인다고 했다.

그의 거제지역 조선소 비정규직 얘기를 듣다 보면 '조선산업 현장은 건설 현장 노가다(막일)와 정말 닮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는 29살 때 대우조선 노조에서 일하던 처형 소개로 거제로 왔다. 그때까지 해온 일이 잘 풀리지 않았고, 두 아들은 커갔다. 21살 때 첫 애를 낳은 그는 부인과 두 아들 등 세 명을 부양해야 했다. 커다란 기쁨이자 잠시도 쉴 수 없는 무거움이라고도 했다. 대우조선 한 사내 하청업체 용접공으로 들어가 1년을 7일 남기고 그만뒀다. 대우조선 사외협력업체로 옮겼다가 2003년에는 거제 삼성중공업 사내 협력업체로 다시 옮겼다. 통영 광도면 안정공단 내 SPP 사내 협력업체에도 있었고, 때로는 두산중공업에서도 일했다. 통영 SPP,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대우조선해양 사내외 협력업체 등으로 옮겨 다니다가 지난해 7월 말 대우조선 한 사내협력업체 반장급으로 입사했다. 현장직이지만 시급제가 아닌 '월급제'로 일하고 있다.

선박 내 용접작업을 하는 노동자들. /대우조선해양 노조

왜 이렇게 많이 옮겨다녔을까? 방랑(?)의 이유는 간단했다. '돈'이었다.

조선소 안에는 이 '돈'으로 노동자가 여러 형태로 구분된다. 최상위가 직영(원청) 업체 정규직이다. 그 다음은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 독과 야적장 등 야외 공정 업무 사내 협력업체 소속 정직원이다. 사내 협력업체 내에서도 이런 시급을 받는 정직원, 1∼2년 사이 기간제 계약직, 3∼12개월 사이 단기계약직, 그리고 공정이 바쁠 때 외부에서 부르는 조선소와 중공업에만 있는 외부 인력, 이른바 '물량팀'으로 나뉜다.

대우조선노조 관계자는 최근 대형 플랜트 수주가 늘면서 조선소 전체 인원은 4만 명 + (3000∼5000명)이라고 했다.

사무직을 포함한 대우조선 내 직영 사원은 1만 4000∼1만 5000명. 이중 현장직 정규직 노조원은 7200명가량이다. 임금 정점에 있는 이들 정규직을 제외한 사내 협력업체 정직원은 5분의 1 수준인 6000∼8000명 정도. 나머지는 협력업체 소속 기간제 계약직, 단기계약직, 물량팀 등으로 나뉜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기간이 긴 기간제 계약직은 4대 보험이 다 되고 일반 공장과 같은 시급제다. 하지만 단기계약직과 물량팀은 '직시급제'라는 독특한 형태로 임금을 받는다. 사내 하청 소속 단기계약직은 그나마 4대 보험이 적용된다. 다만 각종 수당과 보너스 등은 시급 안에 포함된다. 사내 하청의 재하청인 물량팀은 보통 20명가량으로 짜인다. 이들은 팀장에 의해 A∼D급으로 구분된다. A급은 시급 1만 8000원, C급은 1만 1000원 식으로 받는다. 하지만 이들에게 4대 보험은 적용되지 않는다. 시급 안에 이 비용이 들어 있지만 이걸 가입하는 물량팀장은 거의 없다. 물량팀장은 일종의 건설현장 미장 '오야지(일본어로 상관, 상사라는 뜻으로 건설현장에서 해당 기술직 책임자를 이름)'다.

선박 내 용접작업을 하는 노동자들. /대우조선해양 노조

그는 "대우조선이나 삼성중공업 외부 업무를 하는 협력업체 정규직 사원을 제외한 나머지 비정규직은 모두 돈이 안 된다. 아무리 일해도 일 년에 시급 200∼300원 오르는 정도다. 그러니 다른 협력업체에서 '돈 더 줄 테니 와라'고 하면 미련없이 옮긴다. 그렇게 옮기고 기술이 쌓이면서 최고 시급을 받는 A급이 된다. 나도 3년 넘게 업체를 옮기다가 A급 대우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A급으로 올라가면 경력이 더 쌓여도 퇴직 때까지 그 수준에서 머무르는 게 이곳 조선소 임금 체계라고 했다. 연봉으로는 4500만 원 수준이라고 했다.

그의 집은 경북 경산에 있다. 지금은 한 달에 한두 번 회사가 내주는 (통근) 버스를 타고 간다. 기름 값 정도로 시외버스보다 요금이 싸다. 거제는 이런 기러기 아빠의 거대한 집합소였다.

"지난해 7월부터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어 사내 협력업체 정직원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대우조선 직업훈련원을 나온 내 아들 또래의 노동자들을 보면 불쌍하다. 이들 중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하는 일이 청소에다 전선 케이블 당겨주는 일로 1년이 지나도 용접 한 번 못한다. 끝까지 남아있는 애들이 거의 없다. 한 달에 350시간, 400시간 일해 130만 원도 못 가져가더라."

조선소 용접 업무는 한 마디로 지옥 같다고 했다. 심지어 물구나무서기 자세로 철판을 붙이기 일쑤라고 했다.

고된 일을 마치고 숙소로 가도 함께 있는 이들과 제대로 얘기도 하지 않을 정도로 삭막하단다. 마음에 맞는 이들과 술 한잔하는 게 유일한 낙이라고 했다.

"조선소 짬밥 참 길게 먹는다. 그런데 인제 와서 다른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이들보다는 나은 대우 받는다고 위안해 보지만 문득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작업 통제도 원청업체가 하고, 관리도 그들이 한다. 일도 더 어려운 일을 하는데 '왜 직영과 대우가 다른지, 왜 비정규직이라는지' 한 번씩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토요일 밤샘 업무를 마치고 아침에 나와 선잠을 자고 만난 그는 저녁 무렵이 되자 소주 한 잔이 생각난다고 했다. '내일을 위한 한 잔'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 끝날 즈음 올 5월 노조가 세운 공장 내 노동열사비가 떠올랐다. 87년 8월 말 노동자대투쟁 때 경찰이 쏜 최루탄(직격탄)을 가슴에 맞아 21살 나이로 숨진 이석규 씨 등 노동열사 5명을 기리고 있다.

"그들이 어떤 세상, 어떤 일터를 바랐을까."

대형 플랜트를 만들고자 안벽으로 향하는 수천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 물결을 보며 그 질문은 왠지 초라해졌다.

취재 자문: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한국노동운동연구소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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