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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살자' 엄마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동네사람]컴퓨터 무료수리하는 김동숙 씨

문정민 기자 minss@idomin.com 2013년 10월 07일 월요일

아침 7시. 남편 출근준비 도우랴, 아이들 어린이집 보내랴, 시끌벅적 요란한 하루가 시작된다. 오전 9시. 남편·아이들을 보내고 잠시 한숨 돌릴 즈음, 황급히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뒷산으로 걸음을 옮긴다. 1시간 후 집에 돌아오기 무섭게 설거지·빨래 등 밀린 집안일을 해치우고 짬 내어 미리 장까지 봐둔다.

오후 3시. 아이들이 올 시간, 다시 전쟁이다. 씻기고 밥 먹이고 같이 놀아주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밤 10시. 눈꺼풀을 비비며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면 슬며시 일어나 거실 한 편 조그마한 방으로 향한다. 정적이 감도는 어둠 속에서 컴퓨터 팬 돌아가는 소리만 귓전을 울리는 곳. 본격적인 하루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고장 난 컴퓨터 무료로 손봐주고 있어요. 백업·포맷해 기본 프로그램을 깔아주는 것은 물론, 부품 해체 때 내부 청소까지 해주죠."

15년째 아내와 엄마로서 삶을 살고 있는 김동숙(창원시 진해구 용원동·44) 씨는 밤이 되면 여느 주부와 다른 일상을 보내고 있다. 각종 나사와 드라이버가 널려 있는 방에서 컴퓨터를 분해·조립하는 등 보통 여성이라면 엄두도 못 낼 기계와 씨름하고 있는 것. 부팅이나 인터넷이 되지 않거나, 시스템이 다운되는 등 먹통이 된 컴퓨터를 고치고 있자면 시곗바늘은 어느새 새벽 2시를 가리킨다. 아침부터 남편 뒷바라지와 육아·살림에 피곤할 법도 한데 말 그대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옷·구두·가방·화장품 등 패션과 미용에는 관심이 없어요. 신기하게도 전자제품·자동차에 더 흥미를 느끼죠. 어렸을 때부터 전자시계를 곧잘 해체하고는 했어요. 최근에도 고장난 전기밥솥 내부를 뜯어 봤죠. 이왕 버릴 것 구조나 살펴 놓으면 다음에 혹시 또 고장이 났을 때 원인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남자·여자를 떠나 컴퓨터에서만큼은 자타공인 전문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동숙 씨.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했던 그가 컴퓨터 관련 쪽으로 길을 잡은 건 강렬했던 첫 만남 때문이다. 대학에 갓 들어간 20살 무렵, 키보드만 두드리면 신기한 세상이 펼쳐지는 기계에 마치 신세계를 만난 듯 한눈에 반해버렸던 것. 24살 젊은 나이에 컴퓨터 학원을 운영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이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 워드·엑셀 등 주로 사무 관련 프로그램을 익히고 가르치는 데에 집중했지, 동숙 씨도 컴퓨터 속속들이 알지 못했다.

"기계적 결함이 있을 때마다 AS업체에 맡겨 해결하다 보니 수리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가는 거예요. 안 되겠다 싶어 직접 고쳐보기로 작정했죠. 그때부터 소프트웨어·하드웨어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파기 시작했어요."

관련 서적을 독파하다시피 하며 수많은 컴퓨터를 분해하고 조립한 동숙 씨. 학원을 접고 10여 년간 가정을 꾸리는 데만 전념했던 그이지만 그때 익힌 실력은 여전히 손 끝에 살아 있다. 기회가 되면 남을 도우며 살고 싶었던 동숙 씨가 작년 8월부터 직접 실천에 옮기기 시작하면서 그를 찾는 전화가 하루에 몇 통씩 울리고 있는 것. 1년여 간 동숙 씨 손을 거쳐 간 컴퓨터만 150대가 넘는다. 그것도 몇 만 원을 호가하는 부품 교체 값만 빼고는 모든 비용을 무료로 처리했다. 한마디로 재능기부하고 있는 셈.

무조건 부품을 교체하는 것보다 이상이 생긴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최소한으로 비용을 줄이는 데 주안을 둔다. 깔끔하게 수리된 컴퓨터를 건네면서 어디를 어떻게 고쳤고, 유용한 백신 프로그램은 무엇인지 등을 적은 메모도 잊지 않는다.

"과연 내가 제대로 잘 고쳤을까 궁금할 때가 있어요. 저한테 다녀간 사람들이 아무 이상 없이 잘 쓰고 있다고 문자라도 줬으면 했죠. 하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인 것 같아요. 컴퓨터가 이상이 있으면 저한테 다시 연락 올 법도 한데, 조용한 걸 보면 아무 탈 없이 잘 쓰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어요."

무료로 수리를 받는 대신 과일·음료수·빵 등을 챙겨 오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때마다 손사래를 치는 동숙 씨. '더불어 살자'라는 말을 새기며 산다는 그가 진정 바라는 것은, 그저 감사하다는 진심 어린 말 한마디 아닐까. 수리된 컴퓨터가 잘 돌아갈 때 가장 뿌듯하다고 말하는 동숙 씨는 오늘도 홀로 어두운 밤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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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부 기자입니다. 유통.공공기관 담당하고 있습니다. 제보나 문의 내용 있으면 010-2577-1203 연락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