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수단에서 기간산업으로‘변신


21세기 국가기간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문화산업은 “문화가 돈이 된다”는 관점, 즉 경제적인 교환가치로 보는 관점에 기초하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고부가가치’, ‘대박’, ‘원 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use)’ 따위의 문화산업과 쌍을 이루는 단골 수식어가 그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돈이 되는 문화’에 대한 이와 같은 공감대(.)는 불과 최근 몇 년 사이에 형성된 것이다. 사실 ‘문화산업(Cultural Industry)’에 대한 이해도 시대에 따라, 정권에 따라 그 내용이 달랐다.
1947년 최초로 ‘문화산업’이란 용어를 사용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문화산업을 “표준화되고 대량생산되는 상업적인 문화”로 정의하고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만들고 향유하는 문화로서의 대중문화와는 구별해서 사용했다. 그들은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책을 통해 문화산업을 자본주의 사회체제를 선전 또는 선동하고,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대중의 욕구를 조작하는 반계몽적인 것으로 보고 비판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까지는 이와 같은 비판적인 시각이 우세했다. 사실 그때까지는 문화산업이란 곧 상업적인 ‘대중문화’를 가리켰고, 정부의 문화산업정책도 대중문화의 부정적인 측면을 완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새마을운동이 전국을 강타하던 60년대 중반부터 80년대말까지 이어졌던 이른바 ‘건전문화’에 대한 담론은 대중문화에 대한 정부의 부정적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1972년의 유신체제는 대중문화에 대한 규제 근거를 마련해주었다. 당시 정부는 1975년 6월에 ‘공연정화대책’을 발표하고 긴급조치 9호와 함께 222곡을 금지곡으로 지정하는 한편 모든 가요음반에 “어허야 둥기둥기"로 시작하는 소위 ‘건전가요’를 수록하도록 강제했다. 이러한 박정희 정권의 대중문화정책은 ‘세종대왕’, ‘이순신장군’, ‘태권도’로 요약되는 전통문화진흥정책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당시 정부는 각종 사회문제의 원인을 대중문화로 대표되는 서구의 물질만능주의와 일본의 저질대중문화에서 찾았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정신문화와 윤리를 강조하는 전통문화를 내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문화정책전문가인 임학순 박사는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당시 문화의 ‘건전성’에 대한 기준은 객관적인 지표나 사회적 합의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에 의하여 설정되는 경향이 많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를테면 반공과 국가주도 경제발전 전략, 유신헌법수호 등에 기여하는 문화예술은 건전한 문화로 인식된 반면에, 사회주의나 통치체제에 비판적인 민중주의 등에 바탕을 둔 문화예술은 불건전한 문화로 인식되어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는 것이다.
한편 전두환 정권은 1986년 ‘제6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 문화부문 계획’에서 ‘문화의 국가발전 동력화’를 정책목표의 하나로 제시했고, 보통사람 노태우 정권은 1990년 ‘문화발전 10개년 계획’을 세웠다.
이들 정권도 대중문화 중심의 문화산업을 부정적으로 본 것은 사실이지만, 문화산업을 고급문화를 쉽게 확산시키는 매체로 이해했기 때문에 부분적인 지원 대상으로 삼았다. 물론 이때까지는 문화산업의 경제적인 측면은 고려되지 않았다.
오늘날과 같은 문화산업개념은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특히 1993년 영화 <쥬라기공원>이 1년 동안 150만대의 자동차수출과 맞먹는 이윤을 내면서 ‘문화전쟁’에 관한 논란이 급속히 확산됐고, 언론은 일제히 영화.애니메이션.패션 등의 고부가 문화산업을 특집으로 연재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1990년대는 ‘밀레니엄’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정부는 1994년 문체부 안에 ‘문화산업국’을 설치했고, 1997년 10월에는 ‘문화비전 2000’을 발표하며 “문화의 세기가 오고 있다”는 구호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문화산업에 대한 실질적인 정책지원은 김대중 정권에서부터 시작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2월 대통령 취임사를 통해 문화산업을 21세기 기간산업으로 제시하는 한편, ‘새문화정책’(1998년 10월), ‘문화산업진흥 5개년 계획’(1999년), ‘문화산업비전 21’(2000년), ‘콘텐츠코리아비전 21’(2001년) 등을 발표하면서 문화의 경제적 가치를 한층 강조했다.
이와 같은 문화산업에 대한 현 정권의 전폭적인 지원은 세계경제구조의 변동에 적응하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IMF라는 경제위기 속에서 탄생했다는 현정권의 태생적인 배경에 기인한 탓도 있다(정권 초기에 열풍이 불었던 ‘신지식인’, ‘벤처기업’에 관한 담론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우리나라에서의 문화산업 논의가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열광적이고, 또 일방적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http://culture.mus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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