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은행, 다시 지역 품으로] (5) 지방은행의 미래

"첫 월급이 50만 원이었던가? 한때 하루 18시간씩 일하고 이제 사정이 좋아졌지만, 입사 후 지금까지 은행의 행복한 시절을 못 봤죠." 1997년 지방은행에 입사한 김지환(가명) 씨 얘기다. 외환위기로 위태롭던 은행은 정부 소유로 넘어갔고, 지금은 정부 주도로 민영화가 추진 중이다. 과연 민영화는 지환 씨와 지방은행에 행복한 미래를 가져올까.

경남은행 민영화도 지방은행의 앞날을 내다보는 관점에서 추진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로선 누가 경남은행을 인수할지부터 어떤 형태로 경영이 될지도 불투명하다.

◇"지역밀착 잃지 않아야" = 지방은행이든 시중은행이든 가장 쉬운 성장 방법은 인수합병(M&A)이다. BS금융(부산은행), DGB금융(대구은행), 기업은행이 경남은행을 인수하려는 논리다. 하지만 지방은행 수가 줄면, 독과점 문제가 제기된다. 금융 소비자의 선택권이 줄어드는 것이다. 여러 지방은행이 경쟁하면 개인이나 기업 고객은 금리 등 조건을 따져 선택할 폭이 넓다. 지역 상공인 중심의 경남은행 인수추진위원회는 타지역 금융기관의 인수에 이 같은 우려도 제기한다.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 중인 홍정효 경남대 경영학부 교수. /박일호 기자

현재 독자 경영을 하는 지방은행은 전북·부산·대구은행 3곳이다. 경남·광주은행은 우리금융지주, 제주은행은 신한금융지주 안에 있다. 앞으로 지방은행은 지속 가능한 성장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성장 전략을 어떻게 짜느냐는 은행장을 비롯해 경영진에게 중요한 과제다.

지역밀착은 잃어선 안 되는 지방은행의 공적 역할이자 정체성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1년 말 기준 지역별 예금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비율을 보자. 지방은행이 있는 지역은 경남·울산 58.9%, 부산 53.3%, 대구·경북 60%, 광주·전남 56.9%, 전북 56.7%로 나타났다. 반면 지방은행이 없는 지역은 인천·경기 39.9%, 대전·충남 43%, 충북 50%, 강원 48.3%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 때문에 강원이나 충청권에는 지방은행을 다시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와 관련, 금융기관 여신운용규정에도 지방은행이 매해 신규 대출의 60% 이상을 의무적으로 지역 중소기업에 하게 돼 있다.

경남대 경영학부 홍정효 교수는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지방은행은 정부 규제와 상관없이 지역 중소기업 대출 등을 확대하면서 지역사회 자금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지방은행이 지역 기반을 버릴 수는 없다는 말이다. 지역사회 공헌도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홍 교수는 "경남은행이 청년 취업자 70~80%를 지역 안에서 뽑고, 문화예술 분야에서 지출하는 예산도 상당히 많은 편"이라며 "그런데 시중은행이나 타지역 은행이 경남은행을 인수하면, 본사가 있는 지역으로 돈이 몰려 경남 지역민이나 기업, 문화예술 등이 아닌 다른 지역 사람들이 혜택을 보는 역차별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점포 확장도 성장의 한 모습이다. 홍 교수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저금리 기조로 은행의 수익성 기반이 취약해진 모양새다. 국내 시장은 성숙 단계인데, 달리 말해 은행의 경쟁이 심화해 더는 얻을 게 없어진 상황"이라며 "지방은행이 서울에 점포를 내고, 거래 사업장이 해외로 나가면 외화 거래도 하면서 점포까지 따라나가는 모습이다. 국내 시장에서 정체된 은행 산업의 돌파구를 역외에서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영화 이후 화두는 '경영' = 민영화가 성공하면 경영이 관건이다. 금융당국이 금융회사를 통제하고 있지만, 현재 경남은행에 내부 견제를 위한 사외이사, 감사 제도 등이 있듯이 앞으로 제도 정비도 필요해 보인다.

사금고화 문제 등을 낳으면서 산업자본이 무너져 금융자본도 함께 무너진 외환위기 이후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금지하는 금산분리 원칙이 강하게 자리 잡았다. 은행법으로 지방은행은 15%, 시중은행은 9%로 산업자본 소유에 방화벽을 쳐 놓은 셈이다.

홍 교수는 "과연 대기업, 은행 경험이 많은 금융기관, 전문 경영인 가운데 누가 지방은행을 운영하는 게 나은지 고민해야 한다"면서 "민영화 이후 은행이 잘 굴러갈 수 있느냐는 경영진 몫이다. 금융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상황에서 재교육 등으로 직원의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 인프라, 전산 싸움이다. 은행이 인터넷뱅킹 등에 연간 수천억 원을 쏟아부어야 하는데, 경남은행은 그동안 정부 통제로 비용 절감 등을 따지면서 투자에 제약이 있었을 것이다. 계속 이러면 시대 흐름에 못 따라간다"며 "민영화 후에는 이런 족쇄가 풀려 경쟁을 통해 은행을 키울 수 있다. 누가 인수 주체가 되든 지점 확대나 지역밀착 전략 등으로 외형은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요즘 젊은 세대는 인터넷뱅킹 등을 쓰고 창구를 활용하지 않는다. 동네마다 깔린 점포는 효율성 면에서 줄이고 지역밀착형 ATM(자동 금융거래 단말기) 등으로 최적화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 은행 창구에도 흔히 텔러가 없는 모습이다. 텔러도 앞으로는 고객 자산 관리나 기업 여신, 외환 등 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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