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계급 비정규직] (6) 자동차산업 비정규직 쟁점과 해법

# 올 4월 16일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2공장 앞에서 사내 하청노동자인 김모(37) 씨가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내 자식에게는 비정규직을 물려줄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그는 이곳 비정규직노조(금속노조 기아차지부 광주지회 비정규직분회) 조직부장을 맡았다.

스포티지 생산라인을 증설하면서 광주공장 2공장은 400여 명의 신규 인력을 충원했고,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노조는 사내 하청노동자 우선 고용을 요구하며 2개월 넘게 천막농성을 했다. 이런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정규직 노조는 정규직 채용 시 일정 비율로 조합원 자녀 우선 고용에 합의했다. 김 씨는 분신 전 분회 간부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몸에 기름을 끼얹었다.

# 지난 7월 15일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 하청노조(금속노조 현대차 아산사내하청지회) 사무장이던 박모(34) 씨가 집에서 목을 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개인적인 문제가 원인이라는 일부 지적도 있지만 일반 조합원이던 그가 비정규직 노조 간부를 맡으면서 상당한 부담으로 느끼고 힘겨워했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박 씨는 유서에서 "저 때문에 그 꿈과 희망을 찾는 끈을 놓지 마시고 꼭 이루시길"이라는 당부를 남겼다.

여기에다 7월 16일에는 아산공장에 설치한 분향소를 사측이 철거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강한 반발을 샀다.

#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최병승(37), 천의봉(32) 씨가 철탑농성을 풀고 지난 8월 8일 땅으로 내려왔다. 지난해 10월 17일 23m 높이 송전철탑에 올라간 지 296일 만이었다.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사무장인 천 씨는 철탑을 내려오면서 "이렇게 길어질지 정말 몰랐다. 현대차가 불법 파견을 인정하는 그날까지 내려가서도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지난해 7월 대법원으로부터 정규직으로 최종 확정 판정을 받은 최 씨는 1일 현재 55일째 출근을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사측은 올 1월 9일 자로 최 씨에게 정규직 인사발령을 낸 상태라서 '징계해고 사유'에 해당한다며 출근을 종용하고 있다.

앞선 예처럼 올해도 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을 하다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다른 이는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져 오던 철탑 고공농성과 같은 극단적인 투쟁도 계속됐다. 자동차 완성차 비정규직 투쟁은 이처럼 올해도 과격했다.

딱 여기까지가 TV 카메라 앵글에 비친 한국 자동차 비정규직 문제이다. 이 앵글을 걷어치우면 무엇이 남을까?

◇불법 파견의 덫에 걸린 한국 자동차 완성차 3사 = 앵글을 걷어내면 우선 1998년 제정돼 개정을 반복한 근로자 파견법(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나온다. 한국은 독일이나 캐나다와 같은 이른바 유럽 일부와 북미 국가들과 달리 노동법상 규제가 상당히 강하다. 파견법에는 제조업 내 파견업체를 통한 노동자 투입을 원천적으로 금지해놓았다. 문제는 정부와 사용자의 법 운용과 적용이다.

고용노동부는 자동차 완성차 3사 사내 하청업체 상당수를 불법 파견이라고 판정한 지 오래다. 한국지엠 창원공장만 하더라도 이미 2005년 직접 생산 공정 사내 도급업체 대부분이 불법 파견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이는 3사 모두 비슷한 상황이다.

한국지엠 부평공장 정문 맞은편에서 본 공장 전경.

대법원은 2012년 7월 현대차 사내 하청업체 직원이던 최병승 씨에 대해 그가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라고 최종 판결했다. 올해 2월 말에는 2005년 고용부가 불법 파견이라고 판정한 한국지엠 창원공장 6개 사내 하청업체와 닉 라일리 전 한국지엠(당시 지엠대우) 사장이 파견법을 위반했다며 벌금형을 내렸다. 강화된 파견법대로라면 불법파견으로 판결된 업체 소속 직원은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지엠은 이 판결 뒤 어떤 공식적인 견해도 밝히지 않았다.

◇불법 파견 해마다 교섭 대상으로 = 불법 파견 해소와 정규직 전환 문제는 이들 3사 정규직 노조가 보충교섭이나 특별 교섭 형태로 심심찮게 교섭 의제로 올린다. 하지만 그 결과는 올해 한국지엠 노사 단체협상이 잘 보여줬다. 사실상 "노력한다"는 이른바 립서비스 수준에 그쳤다.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가 올해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마련한 자료에 따르면 사내 하도급 업체 노동자는 울산공장에 6011명, 아산공장에 1195명, 전주공장에 1084명이다. 이중 식당청소경비 등 간접공정에 종사하는 도급업체 직원을 제외한 직접 생산공정에서 일하는 이들은 5744명이다. 2012년 5월 비정규직노조와 정규직노조, 금속노조가 현대차 사측과 불법파견 관련 특별교섭을 하며 사측이 1700명이 넘는 사내 하청 노동자를 신규 채용 형태로 정규직 사원으로 뽑고, 그 뒤부터 사측이 직접 고용하는 계약직 노동자 규모를 늘리면서 직접 생산공정 사내 하청 규모는 다소 줄었다.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김상록 정책부장은 "현대차 울산공장은 비정규직 문제로 이미 세 차례 국정감사를 받았다. 여기에다 정규직 노조는 단체협상과 직접 연관되는 형태로는 교섭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특별 교섭 초기 전체 생산 공정에 있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라고 요구했다. 사측은 3500명에 대해 단계적인 (정규직) 신규 채용을 최종 안으로 내놓았다. 교섭이 벽에 부딪히자 우리 (비정규직) 조합원이라도 우선 정규직화하라는 수정안을 냈다. 하지만 이것조차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사측은 여전히 자기 기준대로 3500명 신규 채용하고, 그것도 고마운 것 아니냐는 태도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올 6월 중순 재개된 특별교섭은 9월 초 교섭 진전이 없어 중단된 상태다.

김 정책부장은 "결국 비정규직 스스로 이를 타개해야 하는데 2010년 25일간 공장 점거 투쟁, 296일간 고공농성에도 사용자는 제자리다"며 무력감을 느낀다고 했다.

지난 7월 20일 현대자동차 울산 3공장 맞은편 명성주차장 앞에서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현대차 비정규직 사태 해결을 요구하며 공장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사측은 소화분말을 뿌리며 이를 막았다. /이시우 기자

◇"정규직, 비정규직 문제에서 간접 고용 확대로 초점 바꿔야" =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광주지회 비정규직분회 최훈 분회장은 "기아차노조는 금속노조 대규모 사업장에서 유일하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은 노조로 묶여있다.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 단체협약 적용은 각각 다르다. 임금도 다른 사업장보다는 올랐다고 해도 정규직이 오른 만큼 비정규직도 올라 근본적인 차별 시정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금속노조가 비정규직 해소 방안으로 내세운 '1사 1노조' 원칙도 현장에서는 효과적이지 않은 셈이다.

7·8월 두 차례 현대차 비정규직 희망버스를 기획했던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 박점규 집행위원은 "자동차산업 비정규직 문제를 보는 틀을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 집행위원은 "IMF 구제금융 이후 자동차와 조선산업이 먼저 사내 하청 등 간접 고용 노동자를 확대했다. 그러면서 간접 고용 형태는 제조업을 넘어 서비스업, 공공부문 등 거의 전 산업으로 퍼졌다. 자동차산업은 불안정한 현재 고용 상황에 원죄가 있는 셈이다. 특히 기아차와 한국지엠 모두 현대차의 비정규직 해법을 보고 그들도 방향을 정할 것이기에 현대차 문제는 자동차산업, 한국 제조업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이다"고 전제했다. 이어 그는 "현대차 정규직은 곧 1∼2년마다 1만 명 가깝게 정년퇴직한다. 그럼 이 빈자리는 누가 채울까? 지금 형태라면 사내 하청을 포함한 다양한 간접고용 노동자로 채워질 것이다. 다시 국내 전 산업으로 이런 고용형태가 확대된다. 이걸 막자는 거다. 원청업체에 안정적인 일자리로 고용 형태를 바꾸라고 하지 못하면 더 심한 고용불안 시대를 맞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지엠 부평공장 내 범퍼 부분을 조립해 직접 생산라인으로 옮기는 작업을 맡은 사내 하청 사업장 모습. 이곳은 한 화학회사에서 채용한 하청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어 이른바 사내 하청 2차 직군으로 분류된다.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이도 있었다. 이상호 전 한국비정규직센터 연구위원(현 김제남 국회의원실 보좌관)은 "독일 금속노조에 가입된 폴크스바겐에도 비정규직은 있다. 독일은 노동자 파견이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견직을 수용할 때는 그 비율과 노동조건을 노사가 미리 정한다. 폴크스바겐 전체 노동자의 5% 정도가 파견직이다. 동일임금 동일노동 원칙에 따라 파견노동자 처우를 정규직 수준에 맞춘다"며 "현대차 등 전체 자동차 비정규직 노조는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달라는 측면이 강하다. 오히려 사측에 교섭 해태 빌미로 제공했다고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 위원은 비정규직 노조가 포함돼 공정한 인선 기준을 노사가 잡고, 정규직 전환 시기를 2016년보다 한두 해 정도 연장해 사측에 여유를 주되 사내 하청노동자의 정규직 전환뿐만 아니라 비슷한 규모로 신규 정규직 채용을 포함해 청년층 고용을 함께 늘려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 현대차가 최근 늘린 직접 고용 계약직(촉탁직) 형태 노동자보다는 신규 인력을 1년 계약직, 2년까지 계약연장, 3년째 정규직화하는 형태로 고용 방향을 잡아 직접 고용직을 늘리고, 정규직은 노조가 나서서 편법적인 연장근로가 더는 안된다는 점을 사측에 분명히 보여주도록 연장근로를 일정하게 포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를 통해 신규 채용을 늘릴 것을 제안했다.

취재 자문: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한국노동운동연구소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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