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MBC <무한도전>을 안 보기 시작했다. 재미없다기보다는 왠지 불편함이 컸던 거 같다. 돌아보면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미국 뉴욕에서 진행한 '싸이 특집'이 주요 계기였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가수 싸이와 깜짝 만남을 넘어 '강남스타일' 뒷이야기를 전하고 함께 공연까지 펼치며 대박을 쳤지만 <무한도전>이 친분을 활용해 싸이의 명성에 '묻어가려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무한도전. 말 그대로 불가능해 보이는 무언가에 용기 있게, 멈춤 없이 도전해나가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지하철과 달리기 시합, 목욕탕 물 퍼내기 같은 '소박한' 과제에서 출발해 어느새 음악 콘서트, 레슬링, 봅슬레이, 카레이싱 등 보통 사람은 평생 경험 한 번 해보기 힘든 영역까지 넘나드는 존재가 되었다. 뺏고 뺏기고 쫓고 쫓기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방불케 하는 각종 추격전·심리전 또한 <무한도전>만의 전매특허였다. 과연 한계란 있을까, 경외감마저 들 정도였다.

이젠 그러나 그 '끝'이 보이는 듯하다. <무한도전>이 최종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 결국 그것은 국내는 물론 세계가 우러러 보는 '1인자'의 자리 아니었을까. <무한도전>의 시작과 업그레이드는 늘 같은 패턴이었다. 처음엔 '강변북로 가요제'(2007년)라는 동네 잔치급 가요 경연으로 시작했지만 하나 둘 국내 최고의 뮤지션들이 얼굴을 드러내더니 급기야는 싸이, MC 해머, 보아, 지드래곤, 이적 등과 '함께 노는' <무한도전>이다.

지난해 12월 22일 방영된 <무한도전> '싸이 특집'의 한 장면. 싸이(왼쪽)와 <무한도전> 멤버 노홍철이 미국 뉴욕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미국의 중심, 세계의 중심 '뉴욕'은 최종 목적지를 상징하는 도시다. 싸이와 합동공연뿐만이 아니라 요리 경연, 달력 만들기, 서바이벌 게임 등도 진화를 거듭하다 뉴욕으로 향했다. 맨손으로 시작해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국내를 넘어 끝내는 세계를 제패하는 한 자본주의 기업의 성공 스토리를 빼닮았다고 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기자는 지금 <무한도전>을 욕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의 피할 수 없는 숙명에 대한 이야기다. KBS <1박 2일>, MBC <무릎팍도사>의 몰락에서 보듯 잠시 주춤하거나 익숙해지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방송 세계고 현실 세계다. 경쟁 프로그램의 '무한도전'을 물리치기 위해선 계속 새롭거나, 더 독하게 더 화려하게 더 글로벌하게 방송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무한도전>은 경이로울 만큼 뛰어난 실력으로 '적들'의 추격을 따돌려왔다. 늘 새로웠고, 형식과 내용을 베낀 수많은 아류작을 탄생시켰다. <무한도전>은 전설이자 신화였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을 때 남은 건 내리막길뿐이다. 최근 갈수록 자주 '어디서 본 듯한' 특집이 쏟아지는 건 우연이 아니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보다 게스트의 명성이나 외형적 규모, 영상미, 뜬금없는 자기과시 등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 역시 한계에 다다랐다는 징후다.

<무한도전>을 보면 얼마 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가 떠오른다. 죽지 않으려면, 밀리지 않으려면 그 끝이 어디든 무조건 엔진을 '무한' 가동해야 하는 설국열차. 어쩌면 <무한도전>은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 가혹한 현실 세계의 운명을 자신의 흥망성쇠로 '온몸으로' 풍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마지막 모습이 어떠할지, 너무 추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어떤 모습이 되든 우리는 예의를 잊어선 안 된다. <무한도전>은 전무후무한 당대 최고의 방송 프로그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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