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계급 비정규직] (5) 굴뚝농성 7년 뒤 한국지엠 창원공장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일하는 김영광(가명) 씨는 부평공장에서 만난 사내 협력업체 노동자 이파란(가명) 씨와 1981년생(32) 동갑내기다. 부평과 창원에 각각 있지만 이들 모두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청춘을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로 보냈다.

더군다나 두 사람 모두 비정규직 노조(지회) 조합원인 점도 같다. 하지만 최근 처지를 보면 영광 씨가 더 힘겹다.

파란 씨는 그나마 비정규직이지만 다시 공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공장 안에 동고동락했던 조합원도 여러 명 된다. 하지만 영광 씨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지난 8월 14일 근로계약기간이 끝났다. 해당 업체에서는 한 달 정도 재계약하고 다시 얘기하자고 했고, 영광 씨는 거부했다. 일정 기간 공장 밖에서 머물다 다시 들어오는 형태로 5년 넘게 이 공장에서 수차례 재계약을 맺어 기간제 법에 규정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달라고 요구했다. 영광 씨가 말하는 무기계약직은 이른바 현대차나 기아차 사내 하청노동자가 말하는 정규직 전환, 그러니까 원청업체 사원증을 받는 지위가 아니다. 사내 하청업체 소속 무기계약 직원을 원하고 있다.

그는 재계약이 만료된 뒤에도 한 달 보름 넘게 매일 출근하고 있다. 월·수·금요일은 출근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에게 계약해지(해고) 부당성을 알리는 선전물을 나눠주고 있다. 한국지엠 창원공장 내 비정규직 노조(금속노조 지엠대우창원비정규직지회)는 조합원과 지회장 3명이 2006년 50여 일간 고공농성을 하고서 83명의 정규직 전환을 이뤄냈다. 하지만 당시 핵심 집행간부는 모두 복직을 못 했고 노조는 사실상 붕괴했다. 극히 일부 조합원을 제외하고는 자취를 감췄다. 창원비정규직지회는 금속노조 내 사고지회로 돼 있다. 영광 씨는 사실상 홀로 싸워야 한다. 업체는 출근하는 그에게 계약 기간이 끝나 더는 사원이 아니라며 월급을 주지 않는다.

올 2월 말 대규모 불법 파견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한국지엠 창원공장 앞에서 지난 6월 21일 민주노총 경남본부와 금속노조 경남지부, 금속노조 지엠대우창원비정규직지회 비상대책위원회가 '대법원 판결 준수와 창원 공장 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회견과 함께 비정규직지회는 비정규직 4명이 법원에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이시우 기자

그는 조만간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예정이다. 그런 과정에서 그가 속한 업체는 단기 계약직 9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정규직 노조는 그가 처한 상황을 조사했지만 9월 중순 집행부 선거 등이 겹쳐 그와 따로 얘기한 적은 없었다.

요즘 그는 세상을 향해 문득문득 화가 난다고 했다. 하루하루 돈을 벌지 않으면 생활이 어렵다는 그. 그는 이런 상황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그의 20살 시절로 돌아가 본다.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인문계 고교를 나와서 1년 정도 쉬었다. 그는 "놀았다"고 표현했다. 그 뒤 친척이 있는 인천에 가서 지하철과 기차 출입문을 만드는 안산 시화공단 내 한 중소기업에 다녔다. 거기에서도 나와 아르바이트도 하고 이래저래 방황도 좀 했다. 그에게 20대 초반은 '꿈이 없었던 시기'였다.

그러고서 산업체 병역 특례병으로 지원하고자 인천에 있는 사설 기술학원에 다녀 전기용접 자격증을 땄다. 병역 특례병을 했던 형의 친구들로부터 '창원에는 특례병을 뽑는 업체가 많다'는 얘기를 듣고 지원했다. 2005년 3월 STX중공업에 배관을 납품하는 업체로 들어갔다.

병역 특례를 마치고 한 달 정도만 쉬고 곧바로 2008년 2월 한국지엠 창원공장 사내 하청업체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이후 2년 6개월 동안 한 업체에서 일했다. 근로계약은 9개월, 7개월, 4개월짜리로 계약 만료 뒤 일주일에서 보름 가까이 쉬거나 길 때는 2개월가량 쉬고서 다시 공장으로 돌아왔다. 연락은 늘 업체에서 먼저 왔다. "다시 들어오라"고.

그런데 2010년 8월 업체 사장은 "현대차에서 판결 하나가 나와서 (2년 넘게 일해서) 문제가 될 수 있다. 미안하지만 (다른 사내 하청업체로) 옮겨야겠다"고 말했다. 당시 창원공장 비정규직들은 '우리도 정규직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를 잠시 품었지만 말 그대로 잠시뿐이었단다.

다른 업체로 옮기고서도 이런 식의 단기계약이 반복될 뿐이었다. 올해 8월 중순 계약기간이 만료될 때까지 5년 6개월간 그가 창원공장에서 맺은 근로계약은 무려 여덟 번이었고, 최장기간이 11개월이었다.

2005년 3월 창원을 처음 찾았을 때 그는 "물가는 비싸지만 정말 깨끗하고 잘 정돈된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전북보다 정말 일자리가 많은 곳"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그는 요즘에는 "정나미가 떨어진다"고 표현했다. 그래도 더 살기 좋은 곳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로 지낸 시간들은 그런 첫 인상을 지우기에 충분했다. 오히려 희망을 품기 어려운 곳이라고 했다.

"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는 기아나 현대차보다 훨씬 임금이 적다. 해마다 시급으로 최저임금에서 100∼200원 웃도는 정도고, 주야 2교대에 2번 정도 빼고 다 주말 특근을 해도 연 3000만 원 조금 넘는다. 그래도 지난 5년 6개월간 연차도 거의 안 쓰고 정말 열심히 일했다. 업체 사장은 열심히 하면 다들 챙겨준다고 했는데, 가식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지엠 창원공장은 부평과 달리 사내 하청 노동자 절반 이상이 3∼9개월 단기 계약직이다. 20대 중반이나 40대 중반이나 호봉 차이가 없어 비슷한 임금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볼 수나 있을까."

취재 자문: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한국노동운동연구소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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