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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후유증에 우리금융지주 품으로

[지방은행, 다시 지역 품으로] (3) 새로운 출발

이동욱 기자 ldo32@idomin.com 2013년 09월 30일 월요일

한국 금융의 현대사를 보면 1997년과 2008년 변곡점이 있다. 아시아 외환위기와 세계 금융위기다. 97년 외환위기로 지방은행도 하나 둘 자취를 감췄다. 경기·충청·충북·강원·제주은행이 현재 하나·신한 등 시중은행에 넘어가거나 시중은행과 합쳤다. 은행 인수·합병은 그야말로 대세였다.

경남은행 역시 독자생존이냐 합병이냐 선택을 해야 했다. 1998년 동남은행 합병 제의를 거절했던 경남은행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논의한 끝에 부산은행의 합병 제안도 물리쳤다. 독자생존의 길이 시작됐다.

◇외환위기의 그림자 = 경남은행은 91~95년 '제2 창업운동'을 편다. 점포 관리와 자금 조달 등 효율성을 높이려는 취지였다. 지방은행이 처음 시도한 경영혁신 운동으로 주목할 만했다. 95년에는 21세기에 대한 고민을 담아 중장기 경영 전략인 'challenge(도전) 21'을 시작한다. 고객 만족과 경영 효율화 등이 기본 이념이었다.

점포 확장세도 눈에 띈다. 출장소는 91~96년 38개가 새로 들어섰고, 서울 점포도 7개를 늘려 모두 10개가 됐다. 96년 홍콩에는 은행 두 번째 해외 사무소가 문을 연다. 96년 점포는 161개인데, 현재 167개와도 비슷한 규모다.

아울러 금융계에서 업무 경계는 점점 사라졌다. 은행이 보험업, 증권업도 하면서 업무 영역이 넓어진 거다. 여기에 발맞춰 96년 (주)경남파이낸스가 세워진다. 자본금 100억 원은 경남은행이 43%, 지역 상공인이 57%를 부담했다. 공공 금융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역 고객의 요청을 안았고, 자금난을 겪는 중소기업의 숨통이 트이게 했다.

이런 빛도 잠시였고, 외환위기 그림자가 드리웠다. 97년 말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8% 미만인 은행이 구조조정으로 문을 닫아야 했다. 전국 부실은행 5곳이 퇴출당했지만, 경남은행은 당시 전국 최고 수준인 12.27%로 이 대상에서 빠졌다.

   
  1998년 8월 10일 김혁규 도지사가 '내 고장 은행 주식 갖기 통장'에 가입하는 모습./경남은행 40년사  

그러나 이 흐름을 완전히 피해갈 수는 없었다. 주요 고객인 기업이 잇따라 쓰러졌고, 위기는 빠르게 은행을 덮친다. 98년 10월 경남은행은 은행감독원으로부터 경영 개선 권고를 받는다. 98년은 834명 직원이 명예퇴직한 해였다. 한 해 전과 비교해 인력 33.3%를 감축한 셈이었다. 적자 점포와 역외 점포 등도 문을 닫아 168개이던 점포는 146개로 줄었다. 중국 청도사무소 폐쇄를 시작으로 뉴욕과 홍콩 사무소도 차례로 문을 닫는다.

◇버팀목이 되어준 지역민 = 앞날을 보기 어려운 상황에도 임직원 1690명은 경영 개선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먼저 1000억 원 유상증자에 들어간다. 당시 주식 주당 가격이 1500원이었으나 액면가에도 못 미쳤다고 한다.

98년 '내 고장 은행 주식 갖기 통장'이라는 상품이 선보였다. 도지사, 시장, 지역 상공회의소 회장 등이 힘을 싣고 많은 지역민이 동참했다. 그해 12월 30일 1000억 원 유상증가는 성공한다. 납입 자본금 2470억 원, 주주 4만 5000여 명. 경남은행은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음해인 99년 경남은행의 새 비전은 '지역 경제를 선도하는 은행'이었다. 3월 경남도 금고를 유치한다. 일반회계 지방비 4000억 원 규모였다. 도청이 1981년 부산에서 창원으로 옮겨온 이후 줄곧 추진한 사업이 결실을 거둔 것이다. 창립 30년 만이기도 했다. 이어 약 6000억 원 규모인 울산시 금고도 다시 유치했다.

이로써 외환위기에도 경남은행은 99년 6월 총수신이 6조 원을 돌파했다. 역시 지역민과 지자체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또 이때 자본금 1500억 원 유상증자가 한 차례 더 성공한다. 99년 6월 30일이었다. 잇따른 유상증자에 비관적인 전망이 짙었으나 임직원이 지역 곳곳에서 거리 캠페인을 벌이거나 투자 설명회를 열었고, 지역민은 한 번 더 경남은행에 신뢰를 보낸 것이다.

그럼에도 경영 환경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2000년 11월 경남은행은 경영협의회를 열어 공적자금 지원 요청을 의결한다. 이후 금융감독원이 경남은행 실적과 경영 실태 등을 평가한 결과 자기자본비율은 4.90%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예금보험공사와 삼일회계법인 등이 자산과 부채 실사를 거쳐 산정한 공적자금 투입 규모는 3528억 원.

그해 12월 책임자급을 포함해 174명이 또 명예퇴직으로 회사를 떠난다. 아울러 주식이 모두 소각돼 주식가치가 0이 되는 '완전감자'가 됐다. 은행 주식을 보유했던 주주 4만 8000여 명은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경남은행은 지역민에게 큰 빚을 지게 됐다.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지분을 소유한 한빛·평화·광주·경남은행, 하나로종합금융이 금융지주회사로 2001년 하나로 묶인다. 우리금융지주(주) 설립이었다. 이렇게 정부가 주인인 형태로 새 출발을 했다. 경남은행은 곧바로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해 자회사인 경남파이낸스를 청산하고, 적자이거나 실적이 안 좋은 18개 점포를 폐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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