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문화융성, 분권이 먼저다

문화 분권 실현을 위한 각 지자체 문화재단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문화 분권에 대한 논의는 지난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 때에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러나 지방분권을 내세운 참여정부는 정치·사회·경제 관련 중앙 권한 이양에 초점을 맞춰 문화 분권에 소홀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한류 콘텐츠와 문화산업 육성에 많은 예산을 투입한데다 문화·체육·관광을 포괄하는 '지역문화 발전방안'을 제시하는 등 문화분권에 대한 철학 있는 정책 접근을 이뤄내지 못했다.

특히 문예진흥기금 운용 예산 배분기준으로 인구, 예술인 수, 예술활동건수, 공연장 수, 사업별 평가 같은 유사항목을 중복 적용해 기금이 수도권에 집중되는 빌미를 제공했다. 인구가 많으면 예술인 수가 많고, 예술활동 건수도 많을 수밖에 없으니 자연스레 수도권으로 예산이 집중된 것이 당연했다.

지역을 중심으로 한 문화 분권 움직임은 상당부분 이런 문화정책의 불균형에 따른 소외감이 만들어 냈다. 박근혜 정부는 '문화융성'을 핵심 국정 과제로 내세우고, 임기 내 문화재정 2% 달성을 공약하는 등 문화예술 진흥에 힘을 쏟는다는 방침이라, 문화 분권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문화융성'을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로 꼽은 박근혜 정부는 지난 7월에 문화융성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위원회로 출범시키고 8월 한 달간 지역별 문화현장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제주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주지역 문화현장 토론회' 모습. /연합뉴스

지역간 불균형 낳은 정부주도 문화정책

문화 분권 요구는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위원장 김동호)가 지난 8월 한 달 동안 전국을 돌며 펼친 '문화현장 토론회'에서 쏟아져 나왔다.

오동욱 대구경북연구원 박사는 "그동안 정부의 지역문화 정책은 많은 재원과 노력에도 지역과 주민이 안은 문제 해결에는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현재의 협력적 분권 체계에서 문화정책은 전반적으로 수도권과 지역 간, 그리고 지역 간 불균형을 가져왔다"며 "재원이 정부 주도로 일률적으로 공급되다 보니 지역 특성을 고려한 재원 공급이 미흡했다"고도 진단했다. "이러다 보니 문화정책이 지속성과 일관성 있게 진행되지 않았고, 지역 특성을 살리는 독자적 문화정책 발전은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이다.

최현묵 수성아트피아 관장 역시 "중앙, 지방, 민간으로 이어지는 원 웨이 시스템(One Way System)은 시대착오적 방식이다"며 "시대변화에 따라 형성된 다양한 문화정책 전달체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지역의 권한과 의견이 반영된 시스템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승환 충북대학교 교수는 "현재 문화정책은 국가주의 담론을 내재하고 있다"면서 "한국문화의 지배와 피지배구조를 해체하고, 경향의 이분법을 철폐하며, 문화예술 내부식민지를 없애려면 지역이 문화적으로 평등한 진정한 지역문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예산집행·정책입안 지역 중심으로 가야"

전문가들은 문화 분권을 실현하려면 문화정책 입안과 실천의 발상부터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남송우 부산문화재단 대표는 "문화융성(분권)을 일구려면 다양한 문화의 씨앗들이 자라는 각 지역 현장으로부터 문화정책의 입안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는 국가 문화정책의 입안과 실행이 중앙정부나 정부산하 기관으로부터 정해진 사업을 각 지역 문화재단이나 단체들이 위탁받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지역 실정과 현실과는 동떨어진 부분이 많다.

남 대표이사는 따라서 "이제는 지역에서 그 지역 정체성이 맞는 문화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정책 기획 단계부터 지역이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문화정책 입안과정에서 하향시달식 방법은 빠른 시간안에 각 지역으로부터 정책 입안이 상향조정 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문화 정책이 서울에서 활동하는 현장예술가, 문화기획자, 문화관련 연구자들의 논의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지역 중심 정책 입안을 위한 선결과제는 예산 배분 기준의 변화다.

남 대표이사는 이에 대해 "중앙정부가 지역문화예산을 배분하면서 예산뿐만 아니라 사업내용도 정해 배분하는 현재 시스템은 모든 지역문화를 하나의 체제 속에 통제해, 그 지역 문화 다양성을 억제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정책적 논의를 통해 각 지역문화 정체성에 바탕한 특성화 사업예산을 늘려 실질적으로 그 지역의 문화정체성 확립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면서 "예산을 통합 예산으로 바로 지역 문화재단에 지원해 각 지역 현실에 맞는 문화진흥 사업들이 독자적으로 펼쳐질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4월 열린 경남문화재단과 부산문화재단 간 상호교류 협약체결식 모습. 이날 협약을 통해 두 재단은 지역문화주권 확보와 분권실현을 위한 경남·부산 학술연구 시스템 마련 등에 협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경남문화재단

문옥배 당진문예의 전당 관장 역시 "정부에서 사업추진방식을 세분하여 지침으로 규정되어 내려오는 사업은 지역 현장성 결여가 문제로 발생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지역기획사업은 지역문화환경을 기반으로 한 기획사업으로 성과를 내는 비율이 높으므로, 사업추진방식이 지역현장성을 충분히 반영하도록 변경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는 곧 지역문화재단의 기획 권한이 확대될 수 있는 지원사업 추진방식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오재환 부산발전연구원 지역재창조연구실장은 이에 대해 "문화예술지원금을 지역재단이나 중간매개조직에 포괄예산으로 내려주고, 이를 민간 단위의 자율적인 예산 집행 구조로 개선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분권에 대한 논의 경남은 아직

경남에서도 문화 분권 움직임에 대한 싹을 틔우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경남문화재단은 지난해 4월 지역 문화 분권 노력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부산문화재단과 상호 교류·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양해각서에서 두 재단은 '지역 문화주권 확보와 분권 실현을 위한 학술연구 시스템 마련'에도 합의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합의내용이 이행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경남도가 추진한 문화예술 관련 기관 통폐합 작업으로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생긴 데 따른 것이다.

아직은 조직 내 화학적 융합을 온전히 이루지 못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더욱이 양해각서가 구속력이 없어 경남문화재단 시절 대표이사가 맺은 협약을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된 이상 원장이 이행할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 내릴 수도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내부에서도 감지된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 관계자는 "문화 분권과 관련된 논의가 큰 틀에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지만, 이들 논의 역시 지역별로 수용 가능한 범위와 한계가 있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면서 "지역문화재단 협의체 안에서도 논의를 주도하는 지역 재단과 지역 실정에 맞게 관망하는 재단들이 있는 만큼 앞으로 더 활발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