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기독교를 개신교와 동일시한다. 틀렸다. 기독교는 신교와 구교로 구별된다. 앞의 것을 흔히 개신교, 뒤의 것을 가톨릭 혹은 천주교라고 부른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외쳐 탄생한 게 신교였단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정적인 이유는 면죄부 판매로 상징되는 부패였다. 교회의 크기가 곧 믿음의 크기이던 시절, 교황 레오 10세가 교회 증축에 필요하단 이유로 신도들에게 돈을 받고 죄를 사해줬다. 그렇듯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교황에게 일개 신부였던 루터가 반기를 든 게 종교개혁의 시작이었다.

개혁파들은 교황에게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던 가톨릭과 달리 오직 성경만이 신의 권위를 대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급속도로 교세를 확장해 온 개신교는 세계 인구의 약 3분의 1을 확보해 가톨릭보다 월등히 많은 신도 수를 자랑하고 있다. 표현에서 볼 수 있듯 분명 전자가 새 것이고 후자가 낡은 것이니 수적으론 지난 수백 년간 새 것이 낡은 것을 압도해 온 셈이다.

달리 말하면 보수와 진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가급적 지금 이대로' 살자는 게 보수요, '가능한 앞으로' 가보자는 게 진보다. 종교개혁과 신대륙 개척은 당시로 봐선 대단히 진보적인 도전이었고 모두 신교도들이 만든 역사였다. 서구의 많은 나라는 각종 사회 문제에 대한 완고한 입장을 들어 '가톨릭=보수'라는 등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왔다. 그러던 가톨릭이 '교회의 현대화'를 모토로 내걸었던 1960년대 '제2차 바티칸 공회' 이후 달라졌다. 세상과 적극적인 소통에 나선 것이다. 특히 타 종교를 인정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자는 결의는 말 그대로 혁명적인 변화였다.

지난 22일 지중해 사르디니아 섬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탄광 노동자들의 작업모를 쓰고 가톨릭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교황은 이날 시민과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잃으면 인간 존엄도 잃는다"고 말했다. /AP 연합뉴스

이후 가톨릭은 세상일에 무관심하지 않았다. 특히 비유럽국가들에서 그랬다. <문명의 충돌>의 저자 새뮤얼 헌팅턴이 남미와 아시아 국가들의 잇단 민주화, 즉 '민주화 제3의 물결'의 주요 원동력 중 하나로 가톨릭 교회의 역할을 언급할 정도였다. 실제 엘살바도르의 로메로 주교와 필리핀의 신 추기경 그리고 남아공화국의 투투 주교 등 많은 가톨릭 사제가 남이 가지 않던 길을 앞장서 걸어 왔다. 낙태와 안락사, 피임 등에 대한 입장에서 볼 수 있듯 교리상으론 여전히 보수지만 진보적 자세를 견지해 온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정의구현사제단을 필두로 민주화 시기는 물론, 민주화 이후에도 세상이 혼탁하다 싶을 땐 어김없이 가톨릭 교회가 나섰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사제단의 시국성명과 거리미사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신임 교황의 행보도 그 영향이 컸다. 앞서 언급한 대로 교황의 권위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무신론자를 상대로 신을 믿지 않아도 양심대로 살면 된다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는 그 울림이 매우 컸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이들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우연인지 최근의 각종 지표를 보면 가톨릭 신자 수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반면 개신교도의 숫자는 현저히 줄고 있다. 비록 그 속도는 더디지만 세상과 소통하며 변화의 길을 택한 '진보적' 보수가 민심을 얻어 온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고 보면 내세우는 주의·주장보다 훨씬 힘이 센 건 세상에 대한 자세와 태도가 아닐까 싶다.

보수를 넘어 '수구적' 자세로 세상과 담 쌓아온 이 땅의 자칭 진보들, 그래서 갈수록 그 세가 늘기는커녕 소수로 전락하고 있는 진보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 아닐까. 수식어는 생각보다 훨씬 힘이 세다. '보수적' 진보와 '진보적' 보수, 누가 더 많은 이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김갑수(한국사회여론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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