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계급 비정규직] (3)기아차 광주공장 40대 비정규직

"비정규직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정규직이 없을 순 없겠죠. 기업도 살아야 하니."

지난 7월 19일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만난 김기영(가명·48) 씨가 대뜸 한 말이었다. 기업 처지에서 보면 그는 정말 착한(?)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김 씨는 40대 자동차 완성차 사내 하청노동자로서는 드물게 대학까지 나왔다. 이른바 '먹물' 든 이라서 그럴까? 자신이 비정규직이면서도 비정규직이 필요하다니….

이런 의아함은 김 씨의 다음 얘기에서 다소 풀렸다.

김 씨는 "기업도 이윤을 추구해야 하고,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가 있지 않겠나.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일정한 비정규직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같이 심한 차별은 조금 줄었으면 한다. 기업도 사람을 생각해주면 그렇게 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2공장에서 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쏘울(soul) 차량 앞문을 차체에 달고 있다.

◇IMF구제금융, 그에게 직격탄을 날리다 = 김 씨는 1965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났다. 1984년 광주로 와서 86년 광주 한 사립대 일어일문학과에 입학했다. 1990년 대학을 졸업하고 광주 한 관광업체 통역·가이드로 입사했다. 당시 돈벌이도 쏠쏠했다고 한다. 92년 12월 결혼했다.

그런데 1997년 말 IMF구제금융이 왔다. 그 여파는 혹독했다. 일본 관광이 워낙 줄어 그가 일하던 업체도 어려움을 겪었다. 급기야 6개월 치 임금도 못 받는 상황이 왔고, 업체는 결국 문을 닫았다. 아내와 한 아이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그는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해 2001년 친구들과 소규모 관광업체를 차렸다.

하지만 가계 경기는 여전히 최악이었고, 원화가 워낙 떨어져 엔화가 너무 비싼 상황에서 일본 관광객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결국 업체 문을 닫았다. 빚만 남은 상황에서 지인을 통해 2004년 기아차 광주공장 1차 사내 하청 직원으로 입사했다. 90년대 잘 나가던 일본관광 가이드는 2000년대 중반 그렇게 제조업 비정규직 노동자가 됐다.

◇"광주에서 기아차 1차 사내 하청업체는 선호 직장" = 광주공장에서는 카렌스와 카렌스 새 모델(1공장), 쏘울(1공장, 2공장 일부 생산), 스포티지(2공장)와 봉고 트럭·버스·군수 차량(하남공장)을 생산한다. 김 씨는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 하나를 들려줬다.

"자동차 공장 내 비정규직은 이른바 1차, 2차 협력업체 직원으로 나뉜다. 1차는 직접 생산 공정이나 직접 생산 공정과 바로 연결되는 라인 공정을 맡은 사내 하청업체 직원을 이른다. 현대모비스와 같이 부품 공급업체 소속 비정규직이거나 청소·식당·경비 업무를 맡은 이들은 2차 업체 직원이라고 한다. 1차 사내 협력업체 직원은 2차는 물론이고 웬만한 영세 중소기업보다 임금 수준이 더 높고 정규직으로 전환될 꿈을 꿀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광주 사람들은 기아차 1차 직원으로라도 서로 들어오려고 한다."

이렇듯 광주에서는 자동차 공장 사내 하청업체도 선호 직장 중 하나였다. 노동계에서는 불법 파견으로 판정받은 자동차 사내 하청노동자의 정규직화를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으로 여기지만 임금 수준만 보면 기아차 1차 사내 하청 직원은 영세 사업장 정규직보다 높았다.

   

◇입사 9년간 2800만 원가량 임금 상승 = 물론 이런 차별을 좁히는 과정이 그냥 이뤄진 것은 아니다.

그는 2004년 한 사내 하청업체 지게차 운전노동자로 입사했다. 조립에 쓰일 부품을 전해주는 게 그의 일이었다. 입사 초기 몇 년간 주야 2교대에 월 4회 이상 특근을 했는데도 연 2400만 원을 받았다. 입사 9년이 지난 올 3월 초부터 근무형태가 주간 연속 2교대로 바뀌었고, 지난해 연 5200만 원을 받았다. 두 아들의 아버지인 그는 아내와 맞벌이를 하면서 먹고사는 데는 별문제가 없다고 했다.

기아차 노조(금속노조 기아차지부)는 자동차 완성차로는 유일하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은 노조로 이뤄져 있다. 금속노조 방침에 따라 2009년 '1사 1노조'(한 기업에 정규직·비정규직 관계없이 하나의 노조로 묶음)로 형태 전환을 하면서 광주, 경기도 광명 소하리, 화성공장 비정규직 조합원이 지회별 분회를 두고 있다. 또한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조합원에 대한 교섭도 함께 담당한다. 사내 하청노동자 기본급 인상이 해마다 정규직과 비율이 같거나 정규직보다 다소 높았던 해도 있었다. 여기에 장기근속 사내 하청노동자는 정규직에게 주는 성과급의 80% 수준까지 올랐다고 했다. 기본급 인상과 성과급 지급은 사내 하청노동자 임금수준이 오른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현대차와 마찬가지로 기아차에서도 2010년 7월 현대차 비정규직 최병승 씨의 불법 파견 대법원 판결 이후 임금 상승 폭은 더 컸다고 했다.

◇"처음 접한 자동차 공장은 정말 삭막했다" = 광주공장은 비정규직이라고 함부로 하대하는 경우는 적다고 했다. 지역사회 정서상 '형님, 동생' 하는 문화가 여전하다고 했다. 반면 자동차 공장 내 문화는 정말 삭막해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가이드로 일할 때는 여성 직원도 많고 하니까 서로 도와주고 분위기도 부드러웠다. 그런데 이곳은 같은 부서라도 자기 공정이 아니면 관심이 없고, 자기 공정을 두고 누가 뭐라고 하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가장 힘든 게 인간관계였고, 너무 다른 조직 문화였다. 지금은 직접 생산 공정으로 일이 바뀌었지만 지게차 운전할 때 3년가량 정말 나 혼자였다."

비정규직? 그는 끝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비정규직 양산은 당연히 회사에 더 큰 책임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정규직 양보 없이 과연 비정규직이 없어질지 의문이다. 그런데 정규직이 이런 양보를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취재 자문: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한국노동운동연구소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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