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은행, 다시 지역 품으로] (1) 내 고장 돈은 지방은행으로

정부가 가진 경남은행 지분에 대한 매각이 본격화했다. 경남은행이 과연 지역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경남은행은 2001년 정부가 소유한 우리금융지주 자회사로 편입됐다. 정부의 우리금융 민영화 시도는 이번이 네 번째다. 지역에 뿌리 내린 지 40여 년 된 경남은행이 설립부터 성장 과정에서 지역과 어떻게 호흡해왔는지, 또 지방은행의 앞날은 어떤 모습일지 다섯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경남은행 역시 지방은행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1960년대 후반은 경제 개발에 대한 열망이 어느 때보다 큰 시기였다. 때마침 정부도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산업 고도화와 수출 증가를 과제로 내세웠다. 하지만 내수 자금 확충이 시급했다. 국내에서 돌 자금이 부족하면 개발도 어려웠다. 그러면서 지방은행의 필요성도 커진다.

1967년 1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국회에 밝히는 정책 방침인 연두교서에서 "지역적 자본을 집대성해 그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내자 동원의 극대화를 위해 지방은행의 설치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다. 지역에서 돈을 모아 지역 발전을 위해 투자하고, 국내에서 쓰는 자금 규모도 키워 개발의 토대로 삼겠다는 얘기였다. 사실상 지방은행 역사의 시작점이었다.

이후 이른바 '1도(道) 1은행' 정책이 세워지고 1967년부터 시·도마다 지방은행이 들어선다. 경남은행은 10개 지방은행 가운데 아홉 번째로 설립된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로 인수·합병을 거쳐 현재 경남·부산·대구·광주·전북·제주 등 6곳이 남아 있다.

1970년 10월 30일 신축 이전한 경남은행 창동 본점의 당시 모습. '지방 돈은 지방은행으로!'라고 적힌 펼침막이 건물 윗부분에 걸려 눈길을 끈다. /경남은행 40년사

◇누구보다 절실했던 지역 기업인 = 경남은행 설립에는 지역 기업인이 중심이 됐다. 현재 지역 상공인이 경남은행 지역환원을 외치는 데도 이 같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1960년대 후반 마산과 울산은 공업 도시로 자리를 잡고 있었고, 마산에는 한일합섬, 경남모직, 한국철강 등 토착 대기업도 있는 상황이었다.

마산을 중심으로 경남에는 새로운 산업시설을 짓고 운영하는 데 금융 지원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 지역 금융 구조는 열악했다. 마산에는 9개 금융회사의 10개 지점밖에 없었다. 총 예금액이 60여억 원이었는데, 마산에 있는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고 한다. 또 많은 중소기업이 까다로운 금융회사를 피해 금리가 높은 사금융으로 자금을 끌어 쓰는 형편이었다. 이 때문에 지역 상공인은 지역 토박이 은행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꼈다.

<경남은행 40년사>에 따르면 1968년 12월 마산상공회의소 최재형 회장, 조인규 경남개발주식회사 대표이사, 박승일 고려모직주식회사 전무이사, 이원길 진일기계공업사 사장(마산상공회의소 부회장), 최찬열 마산상공회의소 부회장 등 5명이 가칭 '주식회사 경남은행 설립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경남은행 준비위는 같은 달 두 번째 회의를 열어 발기인 11명을 선출했다. 준비위원 박승일·이원길·조인규·최재형을 포함해 고진규(삼성라디에타공업사 사장), 김용국(대한제분공업사 사장), 송창복(태극합승주식회사 대표이사), 정광철(동양산업주식회사 대표이사), 조규훤(유신실업유한회사 사장), 최위승(마산무학주조장 사장), 한경영(제일지업사 사장) 등이다.

이로써 경남은행 설립은 구체화한다. 같은 해 10월 부산은행이 마산에 지점을 설치하려 하자 지역에서 경계심이 커진 것도 설립을 서두르게 된 배경이었다.

◇'내 고장 돈은 지방은행으로' = 발기인으로 참여한 최위승 무학그룹 명예회장은 <경남은행 40년사> 인터뷰에서 "바쁜 시간을 쪼개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도 힘든 줄 몰랐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그만큼 지역은행의 설립이 절실했다"며 "지역에서 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중소기업으로서 겪는 문제 외에도 지역적 박탈감이라는 이중고를 견뎌야 한다. 그런 면에서 지역 토박이 은행은 지역 기업인들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라고 했다.

1970년 4월 15일 마산대학(현 경남대) 강당에서 경남은행 창립총회가 열린다. 주주 260명 중 73명이 참석했다. 이틀 뒤 경남은행은 금융통화운영위원회에서 은행 신설 본인가를 받았다. 같은 해 5월 22일 자본금 3억 원, 임직원 54명으로 오동동 임시 본사에서 개업식이 진행된다. 이날 초대 최희열 은행장(전 서울은행 상무이사)은 "지역사회 자금을 집대성해 지방 경제 발전을 금융 면에서 뒷받침함으로써 지역 내의 기업을 지원 육성하고 아울러 임직원 일동은 사명감과 긍지를 갖고 개척자 정신을 발휘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개업 축하금 10만 원을 예금해 제1호 고객으로 등록됐다. 첫날에만 수많은 고객이 몰려 예금액이 2억 6800만 원을 넘어섰다. 설립 자본금과 맞먹는 규모였다. 같은 해 10월에는 새로 지은 창동 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부터 내건 영업 활동의 구호가 '내 고장 돈은 지방은행으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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