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꽃무릇(석산)

가을 깊어지면 곳곳에서 축제 소식이 들려 옵니다. 올 추석은 내내 '산청세계한방의약엑스포' 행사장에서 한약향기와 산 숲 가득 핀 가을꽃들과 지냈습니다. 약초판매장의 부스 하나를 받아 운영하면서, 쏟아져 나오는 진기한 약초들을 원도 없이 만났습니다. '400년 전 허준 선생이 꿈꾼 미래가 이렇게 실현되는구나' 생각하며 감격에 젖기도 했는데요. 축제장 후문에서 허준길을 따라 기체험관으로 오르다 보니 온갖 가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구절초, 산부추. 참취. 꽃무릇….

지금쯤 하동 쌍계사와 고창 선운사 경내를 온통 붉게 물들였을 꽃무릇이 여기서도 군데군데 피어났습니다.

뿌리가 잘 번져 몇 년 후면 언덕에 가득 피어날 꽃 숲을 상상하며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수선화과의 외떡잎식물 '꽃무릇' 상사화·이별초로도 자주 불리는 이 아름다운 꽃의 별명은 잎과 꽃이 절대 만날 수 없는 특성 때문에 붙여졌습니다. 그 특성이 잘 드러나는 '상사화'라는 분홍색 꽃이 따로 있음에도 자주 상사화로 혼동되어 불리며 '영원화엽불변화'라는 긴 이름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붉디붉은 꽃빛과 십 수개의 꽃술이 만들어내는 꽃모양은 마치 천수보살의 수많은 팔을 연상케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주로 절 경내에 많이 핍니다. 어느 절이든 9월에 가면 가장 많이 피는데요. '스님과 처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슬픈 사랑의 전설'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무리지어 피어나서 더욱 아름다운 이 꽃무릇은 모양만큼이나 쓰임새도 좋아서 '석산'이라는 약명으로도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꽃무릇은 꽃이 지면 알뿌리를 약재로 쓰는데요. 거담·이뇨·소종·가래·기침·임파선염·암·종기·치루 등 많은 병증을 완화하고 치료하는 좋은 약재입니다. 동의보감촌에 잘 어울리는 꽃인데요. 종기에는 생뿌리를 찧어 붙이기도 합니다. 뿌리에 유독한 알칼로이드성분이 있어서 많이 먹으면 구토 증상을 보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뿌리는 또 양질의 전분을 함유하고 있어서 독성을 제거한 후 전분을 채취해서 쓰기도 하고, 꽃잎은 차를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허준이 스승 유의태의 시신을 해부했다는 해부동굴을 지나 산부추 가득 피어 있는 길을 오르며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환을 깨닫습니다. 올가을은 꼭 산청한방엑스포에 오셔서 넘쳐나는 꽃들의 향기와 다양한 한방 체험을 즐기며 지친 심신을 치유하는 시간을 보내시면 어떨까 제안하면서 제 시 '꽃무릇'을 한 번 소개해 봅니다.

'가을이 익어가는 구월/ 섬진강 물길 공들여 깎아놓은 불일폭포 아래/ 국화향 꽃잎 모으고 가을잎 합장하는 쌍계사엔/ 부처님 불타는 가슴// 붉디 붉은 들꽃으로 피었네// 석산. 석산./ 가부좌 틀고 참선하다 그만 꽃이 되어버린/ 천수보살 수 없는 팔, 긴 꽃잎/ 하늘을 떠안고 피어 있더라.// 연둣빛 꽃대 햇빛 받아 비늘 일면/ 아래로 아래로 세상을 위해/ 촛대 같은 눈물 흘려 줄 것도 같은/ 빠알간 꽃무릇 석산이 피어/ 쌍계사 중생들/ 마악 해탈하고 있더라.'

/박덕선(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대표)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