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대학가에서 커피전문점 운영하는 백정임 씨

젊음이 가득한 대학가. 점심때라기엔 조금 이른 시간.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테이크아웃 커피 가게 앞으로 향한다. "밥은 먹었고?" 메뉴를 고르는 학생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백정임 사장. 아직 밥을 먹지 않았다는 말에 아무리 바쁘더라도 밥은 꼭 챙겨 먹으라고 말한다.

"예쁘잖아요. 딸 같고 아들 같고."

5년째 경남대학교 앞에서 커피를 파는 백정임 씨. 60대 초반의 나이에도 이른 아침부터 가게 문을 열고 학생들 맞을 준비를 한다. 그냥 커피 파는 아줌마가 되고 싶었다면 애초에 가게를 열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백 씨는 세 가지 목표를 가지고 이 일을 시작했다.

"첫 번째 목표는 카페 일을 하면서 남은 생을 사회를 위해 봉사하며 사는 것이에요. 또 하나는 오래 산 인생 선배로서 젊은 학생들에게 상담을 통해 도움을 주는 것이고, 마지막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이에요."

   

백 씨가 가게를 오가는 학생들이 자식 같아 한 마디씩 말을 붙이면, 학생들도 어머니를 대하듯이 곧잘 고민을 털어놓곤 한다. 갓 성인이 돼 모든 점에서 서툰 것이 많은 학생들과 5년째 대화하다 보니 안타까운 점도 많다.

"요즘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참 마음이 아파요. 취업은 해야 하는데 정작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고, 심지어 왜 학교를 다니는지 모르는 학생도 많아요.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학생들을 볼 때는 안 됐지요. 또 모든 학생이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고마운 것을 잘 모르는 학생들도 있어요. 잃어버린 지갑을 보관해준다든지 휴지를 빌려준다든지, 작은 것들이지만 내가 베푸는 호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요. 감사하다는 인사면 충분한데도 당연한 듯 넘어가면 상처를 받을 때도 있죠."

하지만, 반대로 백 씨가 안타까운 마음에 건네는 조언들을 받아들여 잘 성장한 학생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그녀가 쑥스러운 듯 한쪽 벽면에 걸린 액자를 보여줬다. 거기에는 회사 면접을 가야 하는데 입고 갈 옷이 변변찮아 고민하던 자신에게 백 씨가 정장을 선물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편지를 보낸 주인공은 지금 서울에 있는 큰 디자인 회사에 다니고 있다.

이런 학생들과 인연 덕분에 가게 수익금으로 5년째 장학금도 주고 있다. 하지만 장학금을 받은 학생 중에 찾아오기는커녕 연말에 카드 한 장 써준 학생이 없다며 섭섭한 마음도 살짝 내비쳤다.

백 씨는 커피 가게를 차리기 전까지 회사에 다니다 퇴직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경쟁에서 살아남고자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는 그녀. 이제는 30대가 된 두 자녀가 모나지 않고 반듯하게 자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이 쉽지 않을 나이에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을까.

"원래 커피를 좋아했어요. 퇴직하고 일을 하지 않으면 병에 걸리기도 쉽고 나태해지죠. 그래서 커피 가게를 차려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교육을 받았어요. 요즘 노인들 일자리가 없다고들 하는데 자기 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회사 다닐 때 높은 자리에 있었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나요? 눈높이를 낮추면 제빵, 비누공예, 서예 등 힘 안 들이고도 배울 수 있는 일도 많아요. 물론 이런 재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에서 홍보가 부족한 탓도 있죠. 정보화 사회라고 하지만 컴퓨터가 익숙하지 않은 어른들이 인터넷으로 일일이 찾아보기 어렵죠."

매일 아침 일어나서 할 일이 있고 갈 곳이 있어 신이 나고 힘을 낼 수 있다는 백 씨. 그녀는 바쁜 가운데도 틈틈이 봉사활동을 하며 처음에 세운 목표를 하나하나 실천하고 있다. 앞으로 목표 또한 지금처럼 나누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건강이 좋지 않아 가게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하다못해 이웃을 위해 커피를 내린다든지, 저 운전 잘하거든요? 주위 어르신이 병원 갈 일이 있을 때 운전을 해준다든지 작은 일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때까지 베풀고 살고 싶어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내가 필요한 곳이 있으면 언제든 달려가는 '네발 자전거'가 되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칠 즈음 한 학생이 가게로 들어왔다. 스스럼없이 대하는 모습에 사장님과 친하냐고 물었더니 그 학생이 대답했다. "친한 정도가 아니죠. 제 어머님이세요. 어머님." 백 씨는 흐뭇한 미소로 언제나 그렇듯 사랑이 가득 담긴 커피를 테이크아웃 잔에 담아 학생에게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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