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2013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 가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건물 외벽은 색이 바랬다. 곳곳에 페인트칠도 거칠거칠하게 일어나있다. 한눈에 봐도 건물은 낡았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쾨쾨한 냄새까지 올라온다. 하지만, 규모는 입이 쩍 벌이질 정도다. 지하 1층 지상 5층인 이 건물의 면적은 8만 4376㎡. 한 층의 높이는 6.5m로 키가 1m 63cm인 기자의 약 4배나 된다. 옛 청주연초제조창이다. 이 공장이 있는 충북 청주시 내덕2동은 지금도 담배공장 마을로 불린다.

◇버려진 공장, 예술로 채우다 = 2013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지난 11일 옛 청주연초제조창에서 시작됐다. 10월 20일까지다.

해방 직후인 1946년 11월, 경성전매국 청주연초공장이 문을 연 이곳은 2004년 1월 완전히 폐쇄됐다. 한때 해마다 담배 100억 개비를 생산하고 2000~3000명이 일하던 곳에서 2013년 현재 55개국 1188명 작가의 600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옛 담배공장이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기자가 자동차에서 내린 곳은 1층 주차장. 담뱃잎을 쌓았던 물류창고가 비엔날레를 찾는 관람객의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건물 외벽을 감싼 것은 폐 현수막을 잘라서 만든 높이 32m 길이 100m 규모의 조각보. 한범덕 청주시장과 청주시와 청원군 주민 3만여 명이 폐 현수막 2만 5000장을 모아 80만 개의 천조각으로 분리하고 나서 바느질로 1004개의 조각보를 만들었다.

2013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옛 청주연초제조창 모습. /김민지 기자

올해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주제는 '익숙함 그리고 새로움'이다. 공예의 과거·현재·미래를 엿볼 수 있으며 공예의 실용화와 대중화 가능성도 점쳐볼 기회다. 전시 감독은 한국인 박남희(여·43) 씨와 일본인 가네코 겐지(64) 씨다.

2층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회색빛 콘크리트 속살이 그대로 노출된 벽과 마주한다. 담배를 찌고 말렸던 훈증실과 제조·실험실이 있었던 곳이다. 그래서일까. 60여 년 세월에 밴 담배냄새는 코를 간질이고 거칠고 투박한 공장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변광섭 청주시 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은 "층당 높이가 6.5m가 돼 천장이 높고 기둥 사이 간격이 9m가 돼 공간이 넓다"면서 "건물이 단단하고 정교한 것이 특징이다"고 설명했다.

◇꼭 봐야 할 작품 뭐가 있을까 = 기획전 1 '운명적 만남, 머더 앤드 차일드(Mother and Child)'와 초대국가관 '독일 현대 공예'전이 열리는 2층을 먼저 짚어보자. 한동안 정지해 있던 무채색 건물이 공예를 만나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신상호는 전시공간인 옛 청주연초제조창을 보고 작품 '명상'을 만들었다. 얼굴을 형상화한 단순한 형태와 어둡고 무거운 느낌의 색이 특징. 건물 밖 한가운데 세워진 '자동장치'는 산업폐기물로 만든 것이다.

조안나 바스콘셀로스는 포르투갈의 국민 작가다. 한국식 표현으로 치면 '그를 모르면 간첩'이랄 정도로 잘나간다. 그의 작품 '발키리 3'은 북유럽 신화 속 주신 오딘을 섬기는 싸움의 처녀에서 따온 것. 손뜨개한 니트, 공장제 직물 등을 이용해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운 작가만의 판타지를 만들어냈다.

포르투갈 국민 작가 조안나 바스콘셀로스 작품. 손뜨개한 니트, 공장제 직물 등으로 만들었다.

도슨트(전시해설가)가 루빈(중국 남경예술학원 교수)의 작품을 가리키며 "비엔날레가 끝날 때쯤이면 서서히 본래의 모습이 사라지다 원래의 흙 상태로 환원될 것입니다"고 말한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순간, 아주 미세하게 도자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루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사라지는 조형작품을 선보인다. '독일 현대 공예'는 올해 한·독 수교 130주년, 광부·간호사 파독 50주년을 맞아 열리는 것. 공예의 실용성과 내구성, 단순함이 특징이다.

담배를 말던 3층 궐련실은 기획전 2 '현대공예에 있어서 용도와 표현', 국제공예공모전, 국제사업관 등이 열린다. 버나드 리치, 한스 코퍼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루시 리(1902~1995·영국), 10년 동안 동판을 두드리며 한 작품을 완성한 하시모토 마사유키(66·일본)의 작품이 눈에 띈다. 국제산업관에 전시된 세계 3대 유리장인 마리오 마시(이탈리아)의 샹들리에는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눈부시다.

중국 작가 루빈의 작품. 시간의 경과에 따라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앞서 말한 대로 옛 청주연초제조창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크다. 한 도슨트의 말을 빌리자면 2~3층을 둘러보면 1만 보 이상은 걷게 된다. 다행히도 전시장 군데군데 휴게실과 의자가 있으니, 힘들면 잠시 쉬었다 가도 좋다.

어른 1만 원·청소년 4000원·어린이 3000원. 20인 이상 단체 할인. 문의 070-4917-9303, 9304. www.okcj.org

버려진 공장의 재탄생, 국내외서 화제

지난 1946년 설립된 옛 청주연초제조창(충북 청주시 상당구 상당로 314)은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담배공장이었다. 하지만 산업 지형의 변화에 따라 1999년 먼저 담배원료공장이 폐쇄됐고, 이어 2004년 제조공장마저 문을 닫으면서 완전히 가동이 중단됐다. 이후 약 10년 동안 방치되면서 이곳은 우범지대로 전락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옛 청주연초제조창 활용방안을 논의하게 됐다.

청주시는 2010년 KT&G 소유의 옛 청주연초제조창 부지와 건물을 350억 원에 사들였다. 시는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건물을 그대로 살리는 방향으로 리모델링을 최소화한 다음 2011년 9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를 처음 개최했다. 변광섭 청주시 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은 "제6회까지는 청주 예술의 전당 광장에서 열렸다. 2011년부터 예술과 공장이 만난 아트 팩토리 형태로 비엔날레가 열리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꽤 좋았다"면서 "옛 건물을 활용한 도심재생으로 국내외 전문가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황해도 해주지방 민간 가마에서 제작된 백자, 해주요 컬렉션 모습.  

1층은 주차장, 2·3층은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4~5층은 디자인센터로 활용할 예정이다. 또 앞으로는 국립현대미술관 분원(수장보존센터)이 들어서 2015년 개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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