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계급 비정규직] (1) 노동자는 하나일 수 있을까
요즘 한국의 노동조합에서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말이 성립될까? 국민 대다수는 "비정규직 문제가 정말 문제다"라고 늘 말한다.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각종 분석 기사는 1997년 말 IMF구제금융 이후 15년 넘게 숱하게 나왔다. 이 기획취재는 그토록 많은 이들이 이 문제를 잘 알면서도 왜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여기에서는 자동차·조선·기계산업 등 제조업, 유통업과 아르바이트 등 민간 서비스산업, 공공부문, 특수고용직 노동자 등 다양한 산업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실제 어떻게 사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이와 함께 캐나다에서 두 번째로 큰 상급 노조단체인 Unifor(전 CAW, CEP)를 방문해 캐나다 사례와 한국의 그것을 비교해본다. 이 기획기사는 매주 월∼수요일 22회에 걸쳐 싣는다.
이 씨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언제 잘릴 지 몰라 늘 불안한 고용상황, 정규직보다 훨씬 적은 임금도 참기 어려웠지만 정말 참기 어려웠던 때는 모멸감과 자괴감을 느낄 때라고 했다. 같은 라인에서 일하던 40대 후반 정규직 노동자가 이 씨에게 "어이, 비정규직!"이라 부르며 하대했을 때 정말 참기 어려웠다고 했다. 이 씨에게 비정규직은 단지 임금만 적게 받는 이가 아니라 일상적인 차별과 모멸감을 참아야 하는 슬픈 존재였다.
◇비정규직 노동자 확산, 자본과 정부 탓으로 돌릴 수 있나 = 캐나다 지엠 오샤와(Oshawa) 공장 노조를 대표하는 유니포(Unifor) 로컬(Local) 222 론 스바즐렌코(Ron Svajlenko) 의장(지부장)은 "몇 년 전 인근 자동차 부품업체 공장을 미국 미시간주로 옮기려 했다. 그때 우리 조합원들은 회사(지엠)에 '만약 저 부품업체가 미국으로 옮기고, 미국에서 나오는 부품을 쓴다면 우리는 파업이라도 불사하겠다'고 해서 물량 이전을 막았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그런 일이 있어도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똑같이 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 정규직 노동자(regular laborer)와 비정규직(irregular) 노동자는 계층을 넘어 계급으로 분류될 정도로 차별이 심각하다고 지적된 지 오래다. 만약 한국 완성차 노조가 캐나다 지엠 오샤와 공장 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행동을 했다면 한국의 비정규직 상황은 지금과 같았을까?
금속노조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 한 조합원은 "2007년 9월 초 사내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서 점심 때 식당 근처에서 설립을 알리는 유인물을 돌렸다. 그때 원청업체 노무담당자와 사내 협력업체 협의회 간부들이 격렬하게 막았고 폭행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극히 일부 정규직 노동자를 제외하고는 노조 간부조차 그 상황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에서 비정규직 존재는 노조가 있는 대공장 노동자의 완벽한 고용 방패막이"라며 쓴웃음을 짓던 한 노조 활동가가 기억나는 대목이다.
◇비정규직 다소 줄었다지만 = 한국비정규직센터는 전체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2000년 8월 58.4%에서 꾸준히 줄어 올 3월 현재 45.9%로 추정했다. 또한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률은 2.1%라고 했다. 정규직 노동자 20.6%의 10분의 1이다. 정규직 노동자 중심으로 이뤄진 국내 노조들은 형식적으로 산업별 노조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교섭은 여전히 기업별로 이뤄진다. 교섭 결과물인 단체협약은 공장 밖 다른 사업장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단체협약이 해당 기업에만 적용되는 기업별 노조 체계인 한국에서 이 단체교섭에만 매몰된 현재 노조운동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실상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파트타임(시간제)을 제외한 전체 임금노동자의 14%가 최저임금 이하를 받고,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40.3%가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상황은 오늘도 계속된다.
취재 자문: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한국노동운동연구소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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